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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조선족동포경제인협회 창립, 미나 리 초대회장 취임

 뉴욕조선족동포경제인협회 초대회장 뉴욕조선족동포경제인협회 창립 초대회장 취임

2025.06.24.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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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청소년단체 파바월드 강태흥 초대회장 별세

한인 사회 올드타이머인 강태흥씨가 지난 6일 심장질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1세.     강씨는 한인타운 청소년 봉사단체 파바월드를 설립, 초대회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강씨는 지난 1973년 도미했다. 파바월드를 통해 한인 2세들의 뿌리 교육은 물론이고 장학금 지원, 해안 및 그리피스파크 청소 등을 하며 한인사회를 위해 일했다.   장례식은 10일 오후 5시 레이크우드 지역 가주장의사에서 진행된다.   ▶연락: (562)622-9393 장열 기자·[email protected]부고 청소년단체 초대회장 강태흥 초대회장 설립 초대회장 한인타운 청소년

2024.07.09.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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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민회 명칭 변경 및 초대회장 선출

 강원도민회 초대회장 강원도민회 명칭 초대회장 선출

2024.02.22.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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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아 석 미주총연 초대회장, ‘한글 간판 달기 주도’…타운 초석 다진 여장부

한인 사회에서 소니아 석(1917~1997) 여사는 ‘애국 할머니’로 통했다. 중앙일보 본국지 1972년 10월4일자 기사에서 찾은 석 여사는 그렇게 한마디로 표현돼 있다.   자서전 '맨발의 소니아 석'에는 애국심을 엿볼 수 있는 일화가 있다.   석 여사가 캐딜락을 처음 산 건 1964년이었다. “나는 DMV에 신청한 ‘KOREAN’ 번호판을 캐딜락에 달고 다녔다. 항상 한국을 소개하고 싶었다. 뒷창문에는 태극기도 붙였다.”   석 여사는 16살 때 첫 운전대를 잡았던 인물이다. 고향인 평안남도에서 최초의 여성 운전사였다. 남자들을 제치고 운전대를 잡을 정도니 강단 있던 여성이다.   미국에 온 건 1948년이다. 30대 초반이었다. 집안을 살리기 위해 장사를 하느라 공부를 하지 못했던 것이 늘 아쉬웠다.   그래서 선택한 게 유학이다. 영어 한마디 못해도 끈기로 버텼다. 노스캐롤라이나 장로교 대학원(1949년), 몬터레이 시립대학(1952년), 샌프란시스코 주립대(1955년) 등에서 국제무역 등을 공부하며 미국 생활에 정착했다.   석 여사는 유학 도중 한국 전쟁을 겪었다. 자서전에서 그는 “피란민들의 울부짖는 모습이 연일 보도됐다”며 “그때부터 나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배웠고 오늘까지 계속 기도한다”고 적었다.   이는 석 여사가 고국은 물론 미주 한인사회를 위해 많은 것을 나누게 되는 계기가 됐다.   그는 1962년 부동산 업계로 뛰어 들었다. 한인 최초의 브로커 자격증과 감정 평가사 자격을 취득했다. 큰 돈을 만지기 시작했다. 24시간이 부족할 정도였다.   자서전에는 “가주한국외환은행 지점, 한인회관, 대한항공 등을 위해서는 좋은 조건으로 건물이나 땅을 사주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그렇게 번 돈을 한인 사회에 다양한 방법으로 환원했다.     LA의 한인 인구가 3000명가량 될 때다. 석 여사는 한인센터 이사로 한인 사회를 위해 첫 봉사를 시작했다.     그는 한인타운의 초석을 다진 인물이다. LA지역 올림픽 길에서 미국인이 운영하는 업소들을 돌며 한글 간판을 붙이라고 설득하고 다녔다.   미국인 업주들은 당연히 반대했다. 석 여사는 그때 일을 이렇게 적고 있다.   “미국 사람들이 호통을 쳤다. 그러나 나는 이게 너희 장사를 잘해주기 위해 하는 것이니 기다려 보라고 설득했다. (중략) 미국 간판을 우리말로 바꾸어 쓰기 시작할 무렵부터 올림픽길이 한인타운의 면모를 더해갔다.”   이후 미주총연합회 초대 회장, LA한인회장(1971년) 등에 선임됐다. 이듬해 전국체전에 참여할 미주선수단의 초대 단장을 맡아 고국 땅을 밟기도 했다. 그는 미국 정계와도 가까웠다. 닉슨 대통령 행정부 시절 공화당 가주유산위원회 부회장(1972년), LA시 커미셔너(1976년), 공화당 가주지구당 부위원장(1981년) 등을 맡아 한인 사회의 정치력을 다져갔다.   세계적인 테마파크였던 애너하임 디즈니랜드 내 ‘스몰 월드’에 최초로 한국 인형을 넣은 것도 석 여사가 한 일이다. 그가 일평생 한국과 한인 사회를 위해 한 일을 제한된 지면에 모두 담기엔 부족할 정도다. 그만큼 많은 씨앗을 뿌렸다. LA에서 한인으로서는 지난 1971년 처음으로 치과를 개업한 장기열 박사가 석 여사의 장남이다.   석 여사는 80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삶의 행적에는 ‘애국’ 한 단어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장열 기자 [email protected]초대회장 소니아 올림픽길이 한인타운 미주 한인사회 한글 간판

2023.09.2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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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최대 한인 경제인단체 성장 이끈 큰 어른…장우상 월드옥타 초대회장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 초대 회장을 역임한 장우상 명예회장(사진)이 이달 초 세상을 떠난 사실이 뒤늦게 전해졌다. 향년 97세.   LA에 있는 유족들은 고인의 유지에 따라 16일 가족장을 치른 뒤 18일 본부 사무국 등에 별세 소식을 알렸다.   옥타LA 전·현직 회장들과 회원들도 본부 옥타의 연락을 받고 뒤늦게 별세 소식을 접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월드옥타의 전신인 ‘세계해외교포무역인연합회’를 1981년 창립해 2년간 회장을 맡아 이끌었고, 이후 월드옥타가 68개국 143개 지회에 7600여 명의 회원을 둔 최대규모 재외동포 경제인단체로 성장하는데 ‘큰 어른’ 역할을 했다.   1970년 미국에 이민해 무역업을 시작한 고인은 ‘재미한인무역협회’ 회장을 맡고 있던 1980년 회원들과 함께 세계 한인 무역인 네트워크를 구축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듬해 고국 수출상담회인 ‘서울교역전’에 참가한 16개국 101명의 한인 무역인을 중심으로 세계해외교포무역인연합회를 탄생시켰다.   초창기에는 정부 보조금 없이 회원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협회를 운영하다가 1994년 상공자원부(현 지식경제부)에 사단법인으로 정식 등록하면서 재정이 나아졌고, 단체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국산 섬유와 철강을 수입해 미국에 팔았던 고인은 65세 되던 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월드옥타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보여주면서 후임 회장들에게 애정 어린 조언을 쏟아냈다.   고인은 2021년 5월 열린 제22회 세계대표자대회 및 수출상담회 개회식 때도 온라인으로 참가하는 등 변함없는 ‘월드옥타 사랑’을 보여줬었다.삶과 추억 경제인단체 초대회장 장우상 명예회장 한인 무역인 세계 한인

2023.08.1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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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뉴저지한인회 김상진 초대회장 소천

뉴저지한인회 김상진 초대회장이 타계했다.   뉴저지한인회는 12일 “주 커미셔너 체어맨과 뉴저지한인회 초대회장을 역임한 김상진 박사께서 소천했다”고 발표했다.   입관식은 16일(토) 오후 3시 가주 로즈힐 메모리얼파크에 있는 Hua Yuan Hall of Wisdom Chapel에서 열린다. 주소는 3890 Workman Mill Rd, Whittier, CA 90601.   김 초대회장의 유족은 부인 권혜령, 장녀 김유진, 차남 김건우 등이다. 문의 201-945-9456(뉴저지한인회)부고 뉴저지한인회 초대회장 뉴저지한인회 초대회장 뉴저지한인회 김상진 김상진 박사

2022.07.12. 17:18

어거스타호남향후회 초대회장에 양해솔

  조지아주 어거스타호남향우회의 초대 회장에 양해솔 향우가 추대됐다.     어거스타호남향우회는 지난 7일 첫 정기총회를 열고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     어거스타호남향우회 창립식과 초대회장 취임식은 오는 7월 16일 어거스타 더블트리힐튼 호텔에서 미주각 지회 회장단들과 어거스타 동포들을 초대해 개최할 예정이다.   양해솔 향우는 피닉스 대학교에서 병원행정학 석사 취득후 에모리 대학병원 암병동에서 디렉터로 근무했고, 애틀랜타 호남향우회 수석 부회장으로 활동해 왔다. 2021년에는 전라남도 정부로부터 세계호남인의 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박재우 기자초대회장 양해솔 초대회장 취임식 양해솔 향우 애틀랜타 호남향우회

2022.05.10. 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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