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엔 입국자 없고 자진 출국자만 모여
━ 원문은 LA타임스 7월27일자 “A border transformed by crackdown, tariffs” 기사입니다. 미·멕시코 국경 인근의 사막 지대를 따라 100도(화씨)가 넘는 무더위 속을 걷는 후안 오르티즈는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있었다. 배낭 속에는 이 지역을 건너려는 이민자들을 위해 준비한 생수병이 가득 들어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지역으로 오는 이민자들이 없어 생수병을 준비할 필요가 없는 날이 많아졌다. 약 2년 전만 해도 오르티즈는 텍사스 엘패소 인근의 이 위험한 사막 지대에서 하루에 수십 명의 이민자들을 마주하곤 했다. 그러나 이젠 그 수가 급감했다. 바이든 대통령 임기 말부터 이민자 수가 줄기 시작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에는 수십 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민자들에게 이제 희망이 없습니다”라고 오르티즈는 말했다. 고요한 사막에는 그의 발걸음 소리와 국경순찰대 헬리콥터의 소리만이 들렸다. 엘패소를 중심으로 한 국경지대는 오랫동안 위험과 기회의 공간이었다. 미국행을 꿈꾸는 이민자들이 매년 수만 명씩 국경을 넘었고, 때로는 연방 요원을 피해 도망쳤으며, 때로는 망명을 요청하기 위해 직접 그들을 찾기도 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전면적인 망명 금지 조치, 대규모 추방 작전, 전례 없는 국경의 군사화는 이 지역의 풍경을 크게 바꿔 놓았다. 엘패소 건너편 멕시코 시우다드 후아레스에서는 예전의 활기찬 이민자 쉼터들이 이제는 텅 비어 있다. 그곳엔 트럼프 집권 이후 미국 입국이 막혀 멕시코에 발이 묶인 이들, 혹은 공포심에 스스로 미국을 떠난 이민자들만이 남아 있다. 베네수엘라인 마이콜드 자파타(22)는 한때는 운이 좋았던 이민자였다. 지난해 CBP One 앱을 통해 미국으로 입국할 수 있었다. CBP One 앱은 이민자 90만명이 입국 시점에 망명신청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자파타는 엘패소에서 조경일을 하며 번 돈 대부분을 고국에 보내고, 가끔은 친구들과 스테이크를 먹거나 워터파크에 가기도 했다. 그러나 그를 불안하게 했던 것은 다가오는 이민 재판이었다. 트럼프 집권 이후, 자파타는 단순한 출석 재판에서도 이민 당국이 체포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는 플로리다의 악명 높은 ‘악어 알카트라즈’ 구치소나, 최근 미국이 추방자를 보내고 있는 엘살바도르, 남수단 같은 먼 나라로 보내질까 두려워했다. 그에게는 위치 추적 전자팔찌가 채워져 있었기 때문에 재판을 결석할 수도 없었다. 결국 그는 소지품을 배낭에 넣고, 꿈을 접은 채 미국.멕시코 국경 다리를 걸어 남쪽으로 향했다. 그는 남미로 돌아갈 예정이며, 어머니가 살고 있는 콜롬비아로 갈 생각이다. “다시 돌아가야죠. 이번에도 일하면서 가게 될 겁니다.” 현재 자파타는 후아레스 시내의 작은 쉼터 ‘오아시스 데 미그란테’에서 머물고 있다. 그곳에서 비슷한 선택을 한 또 다른 베네수엘라인 리처드 오소리오(35)를 만났다. 오소리오는 남편이 구금되자 미국을 떠났다. 그는 노인 돌봄 일을 해왔으며, 자신도 곧 체포될 것 같아 “두려움에 사로잡혔다”고 말했다. 에콰도르 출신의 에디 랄바이(18)는 작년에 다섯 살 조카와 함께 뉴저지에 있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후아레스까지 도착했다. 하지만 멕시코 당국에 의해 미성년자 보호시설에 구금됐고, 조카 가엘은 아직도 시설에 남아 있다. “견뎌내려 해도 너무 힘들다”고 그는 말했다. 개신교 목사인 프란시스코 곤살레스 팔라시오스는 후아레스에서 이민자 쉼터를 운영하며, 신앙 기반의 쉼터 네트워크를 이끌고 있다. 그는 최근 몇 달 사이에 쉼터 입소 이민자 수가 1400명에서 250명으로 급감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폐지한 미국국제개발처(USAID) 자금에 의존하던 쉼터나 비영리단체들도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해 있다. 팔라시오스 목사는 “이제는 플랜 A인 미국 이민을 포기하고, 플랜 B를 찾으라”고 이민자들에게 말한다. “여기에서 머물며 일을 시작하세요. 신이 도울 것입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은 후아레스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자동차 부품 등 미국 수출용 제품을 생산해온 후아레스의 공장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큰 타격을 입었고, 수천 명이 해고됐다. 무역단체 INDEX 후아레스의 부회장 마리아 테레사 델가도 사라테는 현재 공장 종사자 수가 과거 34만 명에서 30만8000명으로 줄었다고 밝혔다. 자동차 부품 조립공장에서 일하던 후아레스 주민 후안 부스토스(52)도 최근 일자리를 잃었다. 그는 “지금은 예전처럼 일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국경을 사이에 둔 미국 쪽도 마찬가지다. 뉴멕시코 산타테레사에서 산업단지를 운영하는 제리 파체코는 “수많은 기업들이 투자 계획을 철회했다”고 전했다. 그가 운영하는 산업단지 인근에는 군사 구역이 새로 설정됐다. 뉴멕시코 200마일, 텍사스 63마일에 걸친 이 구역에는 트럼프 대통령 지시에 따라 국방부가 약 9000명의 현역 병력을 배치했다. 이 구역을 넘는 이민자들은 군에 의해 체포되어 불법 침입 혐의로 기소된 후 이민 당국에 인계되고 있다. 이 지역은 사실상 군사화된 이민 단속 지역이 된 셈이다. 정찰기 U-2가 상공을 비행하고 있으며, 인근 포트 블리스(Ft. Bliss) 기지에는 5000명 수용 규모의 신규 구금 시설이 건설되고 있다. 미국은 멕시코 정부에도 국경지대 이민자 유입을 막도록 압력을 가했고, 멕시코 군대는 단속을 강화했다. 이로 인해 2023년 후아레스 이민자 구금소 화재로 40명이 사망하고 27명이 부상하는 참사가 발생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르티즈는 이전에 물을 나르던 지역이 현재는 군사시설 구역이 되었다고 말했다. 최근 그곳에 있는 급수 탱크를 확인하러 갔다가 국경순찰대에게 “군사 지역 무단 침입” 경고를 받았다. 백악관에 따르면 6월 한 달 동안 국경 전역에서의 이민자 단속 건수는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하루 중 가장 적은 날에는 국경 전역에서 단 137명만이 체포됐다. 하지만 오르티즈는 이 같은 저조한 이민 추세가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미국에는 일자리가 너무 많고, 남쪽엔 가난과 폭력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는 엘패소라는 이름조차도 16세기 스페인 탐험가들이 이곳을 무역 경로의 관문으로 삼으며 붙인 이름이라고 강조한다. “인간의 이동은 본능입니다. 이민을 완전히 막는 것은 결코 불가능합니다.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말이죠.” 글=케이트 린디컴출국자만 입국자 이민자 쉼터들 이민자 90만명 멕시코 국경
2025.07.30. 18: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