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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100년의 세월, 고원 박사를 기리며

올해는 시인 고원 박사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국내외적으로 명망 있는 시인이며, 번역가이고 영문학자이셨으며 또한 민주화 운동가이시기도 했던 고원 박사는 지금부터 꼭 100년 전인 1925년 12월 8일, 충청북도 영동군 학산면 산골에서 태어나셨다.   그해 1925년은 20세기 한반도 최악의 홍수라는 을축년 대홍수가 있었던 해였다. 일제의 식민지 만행이 극심했던 1920년대를 지나 1930년대의 만주사변, 1940년대 태평양 전쟁, 이어서 해방과 분단, 1950년대 한국전쟁- 그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원 박사는 전주로, 서울로, 런던으로, 뉴욕으로 장소를 넓혀가며 학업에 매진하셨고 뉴욕 NYU에서 비교 문학 박사 학위를 받으셨다.   공부를 마친 뒤에 선생은 뉴욕과 LA에서 대학 교수로 재직하시며 활발하게 문학 활동을 펴나가셨는데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김지하 시인을 구출하기 위한 국제적 연대활동을 전개하는 등 유신독재와 권위주의에 반대하는 인권, 민주화 운동을 벌이시기도 하였다.     내가 LA에서 고원 박사를 만나 길지 않은 세월 동안이나마 가깝게 교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원로 민주화 운동가로 존경했던 분이기도 했지만 충청북도 영동이 매체가 된 연유도 있었다. 내가 한국전쟁 때 피난을 떠나 중학교까지 다녔던 곳이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이었는데 고원 박사의 출생지 영동군 학산면과는 매우 인접한 곳이었다.   2001년 ‘고향이 어딥니까?’라는 수필집을 만들어 출판 기념회를 하는 자리에 선생이 기꺼이 서평을 허락해 주신 일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내 고향은 영동”이라고 말씀을 하시는 바람에 얼마나 반가웠었는지 모른다. 당시 LA문화원장으로 나와 있던 분도 마침 영동 출신이어서 세 분이 자주 만나 고향이야기와 세상이야기를 나누며 친밀감을 더해 갔었다. 선생은 평소 성품이 매우 친화적이며 유머가 많으신 분이었다.   2008년 1월, 83세의 일기로 돌아가신 뒤 정찬열씨 등 후배 문인들이 고원기념사업회를 만들어 해마다 고원 문학상을 선정하고 문학세계를 출판하는가 하면 영동에 고원 박사 시비를 설립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오는 19일에는 LA에서 고원 박사 탄생 100주년 행사를 연다고 한다.   인연은 돌고 도는 것이라더니 지금 나는 선생이 LA로 옮기시기 전에 사셨던 뉴저지 리빙스턴에서 20여 마일 떨어진 곳에 와서 살고 있다. 여기서 이곳의 친구로부터 선생이 이곳에 계실 때 교회와 커뮤니티에 얼마나 많은 봉사를 하셨으며 아드님은 미국교회 목사로, 따님은 주류 TV방송의 유명작가로 성공시키기는 등 자녀들을 얼마나 훌륭하게 키우셨는지를 전해 듣고 있다.   또 다른 100년이 되기까지, 고원 박사님이 품으셨던 고향과 고국에 대한 한없는 애정, 그리고 평생을 그리셨던 인간사회의 사랑과 정의, 인권과 자유에 대한 목마름이 얼마나 채워져 나갈 것인지, 간절한 소원을 가져볼 뿐이다.  김용현 / 언론인열린광장 세월 고원 고원 박사 고원 문학상 충청북도 영동군

2025.12.11.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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