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마당] 시의 영토
절벽 밑으로 깊고 넓은 강이 검푸른 빛을 뿜어내고 있어 그 절벽을 따라 난간도 없는 길을 걷고 있었지 앞에 가던 사람들이 갑자기 발만 땅에 심고 몸을 강 위로 던지는 거야 나도 모르게 그들 위로 넘어지자 우리는 모두 빗금을 그으며 허공에 매달려 한 덩어리가 되어 흔들거렸지! 내 위를 덮친 한 치과의사가 내 왼쪽 어금니를 시원하게 스케일링하기 시작했어. 난 내 치아 사이의 통증과 시원함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쾌감까지 즐기고 있었지! 갑자기 그 치과의사는 치아 사이에서 뻗어 나온 주사기를 내 손에 쥐여주며 척수를 빼라고 지시하는 거야 ‘얼마나요’ 하고 물으니 ‘그냥 이렇게’ 하며 주사기를 통해 척수를 허공에 흩뿌리는 거야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요’ ‘계속 계속’ 그 주사기는 신들린 듯 허공에서 춤을 추고 ‘그만’ 하는 소리 없는 내 고함 에코만 울리네! 정명숙 / 시인글마당 영토 치아 사이 왼쪽 어금니 모두 빗금
2024.02.02. 1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