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7일은 여고 동창 김(박)윤정의 전시회 오프닝 날이었다. LA에 위치한 샤토 갤러리가 매년 개최하는 ‘1세대 원로 작가 기획전’이었다. 전시회 제목은 ‘잠시 머물다 가는 삶: 대자연과 인간’이다. 미전역과 한국에서 온 여고 동기 20여명이 축하해 주려고 모였다. 전시장은 오랜만에 만난 동기들로 축제 분위기였다. 졸업 후 64년 만에 처음 만난 친구도 있고, 10년, 20년 만에 만난 친구도 있었다. 윤기 흐르던 단발머리 소녀들이 부스스한 은발에 주름진 얼굴로 만나 “너 누구 아니냐? 하나도 안 변했다”라며 하얀 거짓말을 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호텔 로비에서부터 왁자지껄 반가움에 목소리가 커졌고,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호텔을 흔들었다. 밀린 이야기들이 끊이지 않았다. 팔순이 넘은 나이를 잊고 여고 시절로 돌아갔다. 이날 오지 못한 친구 몇 명이 한 팀이 되어 며칠 후에 전시장에 온다고 한다. 그때 또 한바탕 반가움에 난리가 날 것 같다. 식사 후 오프닝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샤토 갤러리로 향했다. 전시장에 가서도 작품 감상 대신 그동안의 안부를 물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뉴욕에서 새벽 비행기를 타고 온 친구는 “무리했지만 오프닝에 올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친구의 새로운 작품도 보고, 못 보던 친구들도 만나니 너무 좋다”고 했다. 전시회에 오지 못한 친구들을 위해서 작품들을 일일이 찍어 단톡방에 올렸다. 전시회의 주인공은 오프닝에 온 손님들과 친구들에게 작품 설명을 하랴, 기자들과 인터뷰하랴 정신이 없었다. 그녀는 학창시절 햇살처럼 밝고 매력적인 소녀였다. 외동딸로 부모의 사랑을 흠뻑 받아 천진난만했다. 성격이 쾌활하고 명랑해서 친구들 사이에 인기도 많았다. 여고 졸업 후 서울대 미대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친 후 UC 버클리에서 리전트 펠로십을 받아 석사과정을 마쳤다. 버클리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남편은 핵융합 전문가로 김영삼 대통령 시절 한국에 나가서 조국에 봉사했다. 그녀는 샌디에이고 시티 칼리지에서 26년간 교수로 있다 은퇴하고 지금은 작품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그들 부부는 샌디에이고에 넓은 터를 잡아 크고 멋진 집을 지었다. 집 옆에는 개인 스튜디오가 있고, 집과 연결된 과수원에는 각종 과일나무가 있다. 특히 아보카도 나무가 많아 수확 철에는 친지들과 이웃에 나누어 준다. 그녀는 도예작가다. 조각에 가까우리 만치 큰 작품과 설치 작품이 많다. 열정적으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전시회를 수도 없이 많이 했다. 장소현 평론가는 “전시회 ‘잠시 머물다 가는 삶: 대자연과 인간’은 형태와 재료에 대한 작가의 끊임없는 실험 정신, 예술과 자연, 그리고 덧없음 사이의 관계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를 보여준다”고 표현했다. 그녀와는 여고 동창이라는 관계 외에도 특별한 인연이 있다. 우리 가족은 88올림픽이 끝나고 그해 겨울 미국에 왔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나면 여유 시간이 많았다. 도예가의 나라 후손답게 나는 도자기에 관심이 많았다. 집과 가까운 글렌데일 칼리지에 입학하여 2년간 도자기 만드는 공부를 한 적이 있다. 그때 그녀와 자주 통화했다. 그녀는 나에게 진심을 다해 가르쳐주었다. 그렇게 열심인 교수에게서 배우는 학생들은 복이 많다고 생각했다. 한번은 샌디에이고에 있는 그녀의 집에까지 가서 가르침을 받았다. 나는 도자기 만드는 재미에 푹 빠졌다. 낮에 진흙으로 도자기를 빚은 후 유약을 발라 가마(kiln)에 넣으면, 다음 날 아침 학교에 가서 완성된 작품을 보게 된다. 그런데 너무 보고 싶어서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밤이라 무서워서 남편이 퇴근하면 졸라서 학교로 달려갔다. 그때 가마에서 막 꺼내 놓은 작품을 보고 와서야 잠을 이룰 수 있을 정도였다. 내 인생 중 가장 행복했던 시절 중 하나로 기억한다. 많은 친구가 그녀의 전시회에 참석한 것은 단지 축하만이 목적은 아니었다.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초대전을 여는 그녀의 뜨거운 창작 열정이 우리에게도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올해 백수를 맞는 여고 선배 노라노(노명자) 패션 디자이너도 모교의 경운 박물관에서 백수 기념 전시회를 열었다고 한다. 친구도 100세까지 전시회를 열 수 있기를 바란다. 부라보 김윤정! 배광자 / 수필가문예마당 부라보 김윤정 친구들 사이 전시회 오프닝 작품 활동
2026.04.23. 18:32
공자의 제자 증자(曾子)는 말했다. “나는 날마다 세 가지에 주안점을 두고서 나를 살핀다. 다른 사람과 일하면서 최선을 다했을까? 친구들과 사귀면서 믿음을 사지 못한 일은 없었을까? 배운 것을 다 익히지 못했으면 어쩌지?” 『논어』 ‘학이편’ 제4장의 말이다. 사람이 매일 하는 일이라는 게 따지고 보면 직장에서 남과 더불어 일하고, 여가엔 친구와 어울리고, 뭐가 됐든 날마다 새로운 것을 익히는 것 외에 별다른 게 없다. 증자는 우리 삶이 본래 그러함을 간파하고 반성할 항목을 셋으로 잡은 것 같다. 반성을 게을리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직장에서는 남에 대한 배려가 없이 제 이익만 챙기는 얄미운 사람이 되고, 친구들 사이에서는 신망이 없는 사람으로 찍히게 된다. 그리고 날마다 나타나는 새로운 정보를 간과하면 서서히 도태당한다. 증자의 시대나 지금이나 직장 내의 화목, 친구 간의 신의, 그리고 자기계발을 위해 끊임없이 반성하며 정진해야 한다는 점에서 세상은 사실 달라진 게 없다. 반성은 부끄러움을 낳고, 부끄러움은 겸손을 낳고, 겸손은 평화를 낳고, 평화는 행복으로 직결된다. 반성이 행복으로 향하는 첫 관문인 것이다. 김병기 /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필향만리 삼성 제자 증자 화목 친구 친구들 사이
2023.03.27. 2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