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 마음이 복잡하게 뒤엉키는 일을 겪게 마련이다. 그럴 때 나는 어릴 적 부르던 동요를 속으로 흥얼거린다. 그러면 동심으로 돌아간 듯 편안해진다. 들끓던 마음도 잔잔해지고, 혈압도 내려간다. 그러니까, 내게는 동요 흥얼거리기가 마음 다스리기의 한 방법인 셈이다. 어렸을 때 익힌 노래는 그렇게 평생을 간다. 동요 ‘고향의 봄’도 내가 자주 웅얼거리는 노래 중의 하나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곳에서 살던 때가 그립습니다.” 삼팔따라지의 자식으로, 마땅한 고향이 없는 내게 이 노래의 장면은 이상향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유달리 강하게 각인된 모양이다. 그리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노래에 묘사된 집이 내 대학시절 스승님의 생가(生家)라고 한다. 그래서 내게는 한층 더 특별한 노래가 되었다. 사실 이 노래는 나이 좀 먹은 한국인이면 누구나 아는 국민동요쯤으로 인정받던 명곡이다. 일제강점기, 만주나 연해주 등을 떠돌던 동포들이 두고 온 고향을 그리는 심정을 표현했다고 한다. 그래서 타향살이에서 부르면 가슴 밑바닥부터 뭉클해져 온다. 이원수(1911~19881) 작사, 홍난파(1897~1941) 작곡의 이 노래는 1926년에 발표되었다. 그러니까, 올해 100주년이 되는 것이다. 이를 기념하여 이 노래의 무대인 경남 창원시가 ‘고향의 봄 창작 100주년 기념사업’을 벌이기로 하고, 축제처럼 다양한 문화행사를 계획한 모양이다. 널리 알려진 국민동요의 무대이니 자랑할 만한 일이라 여겨진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애국적(?)인 시민단체들이 반대하며 들고 일어난 것이다. 이유는? 작사가, 작곡가가 친일파이기 때문이라는 것…. 이원수와 홍난파는 모두 일제강점기 때 친일행적이 있어,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친일파로 등재돼 있다. 이와 관련해 창원시는 “작가의 친일 행적을 기리려는 것이 아니다. 서정동요 ‘고향의 봄’의 정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시민과 함께하는 문화자원으로 확산시키고, 문화도시 창원의 정체성을 세계로 알릴 계획이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시민사회단체들은 ‘기념사업 반대 시민대책위’를 결성해 활동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친일파의 작품과 관련해 행사를 벌이는 것은 부적절하며 교육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 소식을 접하니 갑자기 마음이 복잡하게 소용돌이치며 답답해진다. 아니, 그렇다면, 그동안 내가 친일파의 노래로 마음을 다스려왔단 말인가? 그런데, 도대체 이 노래의 어디에서 친일 냄새가 난다는 말인가? 그렇게 해롭고 나쁜 노래라면 애당초 금지했어야지, 왜 학교에서 어린아이들에게 가르쳐 평생 가슴에 박히게 했는가? 대답 없는 질문이 꼬리를 문다. 따지고 보면, 친일파 논쟁은 고약한 구석이 참 많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단죄되어야 할 친일파인가를 판단할 기준도 애매하고, 한때의 잘못을 이유로 한 예술가가 이룬 평생의 업적을 단죄하고 지워버리는 것이 옳은 일인가, 도대체 어떤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단죄하는가에 대한 대답도 마땅치 않다. 애당초 칼로 무 베듯 자를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는 친일파, 공산주의자, 미투 가해자는 치명적인 죄인이다. 일단 걸리면 끝장이다. 그 무자비한 칼날에 참 많은 문화예술계의 인재들이 날아갔다. 광복 80주년이 지났지만, 이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해결은커녕 거론조차 되지 않는다. 답답하다. 그나저나, 나는 이제부터는 무슨 노래로 복잡한 마음을 다스려야 하나?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친일파 동요 친일파 논쟁 친일파 공산주의자 동요 흥얼거리기
2026.02.19. 20:12
아내는 나더러 친일파라고 한다. 내 나이 또래끼리 일본말 몇 마디 주고받았다고 친일파로 본다면 너무 성급한 판단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일본 먹을거리는 좋아했다. 특히 팥고물이 든 말랑말랑한 찹쌀떡을 좋아했다. 요즘도 간장, 참기름, 메밀국수, 어묵 같은 식품은 일제를 선호한다. 그러나 나는 일본 군국주의는 싫어한다. 소름이 돋는다. 북한에서 소학교 때 군국주의 표상인 일본군 오장(伍長)이 훈육 주님이었다. 별명이 ‘마무시’ 살모사였다. 작은 키에 얼굴이 까맣고 표독하게 생겼다. 까만 안경에 군모와 긴 일본도를 차고 장화를 신고 위세를 부렸다. 하루는 우리 4학년 반이 공부 시간에 약간 떠들었다. “너희들 떠들지 말라고 했지. 내가 너희들을 잘못 가르쳤으니 내가 벌을 받아야 한다. 나를 때려라” 하며 정강이를 걷더니 급장에게 회초리를 가져오라고 했다. 급장이 회초리를 들고 머뭇거리니 그것을 빼앗더니 급장의 바지를 올리라고 했다. 그는 힘껏 내려치며 이렇게 때리라고 했다. 애들이 자지러졌다. 한 학생, 두 학생, 삼십여 명이 때리니 선생의 정강이 살이 터지더니 피가 나오기 시작했다. 살모사는 살모사다. 부동의 자세로 서 있었다. 여학생들은 모두 때리는 척했다. 남학생 가운데 장난을 좋아하는 놈들은 힘껏 때렸다. 요즘 이런 방식으로 학생을 훈육하는 선생은 없을 것이며, 만약 그런 선생이 있다면 아동학대로 처벌 대상이 될 것이다. 군국주의는 온갖 비행과 범죄를 저질렀다. 그 가운데 유명한 것이 위안부다. 나도 기억한다. ‘데이신 다이’, 정신대(挺身隊)란 이름으로 어린 처녀들을 기차로 태워가는 사진을 신문 기사에서 가끔 보았다. 그들은 가난한 집의 딸로 군수품 공장에서 일하여 돈벌이 가는 줄 알았다. 이제는 ‘forgive and forget’, 용서하고 과거를 잊을 때라고 생각한다. 하루속히 일본과의 관계를 정상화해야 한다. 나는 요즘 NHK 방송을 자주 시청한다. 매시간 뉴스를 보내주고 관광 안내와 음식을 소개해준다. 나는 일본 밥상 차림이 마음에 든다. 맛있는 반찬 서너 너덧 가지로 깔끔하게 차린 일인 분 밥상을 말한다. 몇 년 전 한국을 방문했었다. 전남 영광에서 한정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네 사람씩 점심상을 차려주는데, 두 부부가 마주 앉았다. 지지고 볶은 30여 가지의 반찬이 나왔다. 물김치와 찌개는 같은 그릇에서 넷이 먹어야 했다. 그 많은 음식을 반의반도 먹지 못한 것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을 보았다. 어마어마한 낭비다. NHK 방송에서 특히 나의 눈길을 끈 것은 장인 정신이다. 한 메밀 소바 음식점을 소개했다. 텃밭에서 손수 메밀을 심고 길러서 수확하여 가루를 만들어, 매일 점심으로 200그릇만 만들어 판매한다. 모든 작업을 성실하고 정직하게 한다. 정성을 들인다. 하나도 정성, 둘도 정성, 셋도 정성이다. 나는 친일이나 반일도 아니고 친정성(親精誠) 파다. 윤재현 / 전 연방정부 공무원열린 광장 친일파 사람씩 점심상 남학생 가운데 메밀 소바
2022.12.23. 1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