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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먼저 인간이 되라

“예술가가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   이 가르침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으며 컸다. 만고의 진리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여기서 ‘인간’이란 물론 ‘좋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훌륭한 사람, 빼어난 인간, 성공한 사람, 완벽한 인간, 아름다운 사람을 뜻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예술가가 꼭 윤리적인 성인군자이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예술가와 세상의 윤리 도덕의 관계는 늘 골치 아픈 문제였다. 역사적으로 그래왔다. 창조적인 예술가는 일반적 모범 인간이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기인, 괴짜, 별종, 미치광이라고 손가락질하면서도 예술가니까 그러려니 너그럽게 용서하며 지내왔다. 실제로 반듯한 모범생이 뛰어난 작가로 성공하는 예는 많지 않다.   하지만, 요즘 세상은 예술가에게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도덕군자이기를 요구한다. 그런 기대에서 빗나가면 가차없이 비판하고 냉엄하게 단죄한다. 그 단죄의 칼날이 무자비하게 준엄할 때도 많다. 예를 들어, 친일파, 미투, 공산주의자, 블랙 리스트 등 칼날은 정말 무섭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한번 찍히면 살아남지 못한다. 노벨문학상에 가장 가깝다던 고은 시인 같은 이도 한 방에 가는 걸 보면….   물론 한국만 그런 건 아니다. 플라시도 도밍고 같은 거물도 한 방 맞고 재기하지 못하는 걸 보면 미국에서도 그런 모양이다.   그런데, 예술세계를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고, 옳고 그름을 무 자르듯 명쾌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비정한 단죄의 칼춤으로 날아가 버린 예술적 성취가 생각보다 많아 당황스럽다. 여기서 하나하나 예를 들 필요는 없겠지만, 역사를 바르게 정리하자면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인데, 제대로 거론하고 평가조차 하지 못하는 예들이 많은 것이다. 이건 정말 문제다.   단죄의 빌미가 되는 죄목을 냉정하게 살펴보면, 어느 한 시기의 잘못이거나, 한 인간의 극히 한 부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것도 재수 없게(?) 들켰기 때문에 칼날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일부분의 허물로 한 인간 전체를 단죄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지나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친일파 낙인이 찍힌 안익태 작곡의 애국가에서 일본 냄새를 맡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운보 김기창의 바보 산수나 예수의 생애 그림에서 왜색을 느끼지 못한다. ‘한번 친일파는 영원한 친일파’라는 논리는 우습다.   친일파가 그린 영정이나 친일파가 만든 동상이라는 이유만으로 멀쩡한 작품을 철거하고 새로 만드는 어처구니없는 일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그나마 새로 만든 것이 철거한 친일파의 작품만 못할 때의 허망함이란….   그런데, 그 준엄한 단죄는 도대체 누가 하는가? 기준은 무엇인가? 미투의 경우는 피해자가 있으니까 그나마 납득할 만한 성토와 고발이 가능하겠지만, 친일파 단죄는? ‘친일인명사전’을 만든 ‘민족문제연구소’가 하는가?   문득 떠오르는 성경 말씀 “누구든 죄 없는 자가 돌을 던지라!”   좀 다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한국 현대의학계의 거목 장기려 선생이 창씨개명으로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다. 이에 대해 함석헌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창씨개명을 한 장 선생이 여전히 사람을 살리는 의사인 한, 장기려는 나의 친구입니다. 하지만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더라도 사람을 살리지 못하는 의사라면 장기려는 나의 친구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창씨개명을 거부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충실하지 못한 함석헌은 장기려의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줄임)… 잠깐 욕됨을 참고 더 많은 사람을 구하는 길을 택하세요.”   -손흥규 ‘청년 의사 장기려’에서   먼저 사람이 되라는 말씀과 함께 용서와 관용에 대해서 생각한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친일파 단죄 친일파 낙인 거목 장기려

2025.07.10.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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