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도 여전히 봄처럼
나는 해가 질 녘, 노을빛에 취해 맨해튼을 걷고 있었다. “와우 너 옷 멋지게 입었다.” 뒤에서 백인 여자가 말을 걸었다. 그 여자를 쳐다보니 엄청 멋쟁이다. “너야말로 멋지게 옷을 입었네.” 내가 말하자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우리 만나서 차라도 마시면 어때? 네 전화번호 줄 수 있어?” 적극적으로 나에게 말 거는 그녀에게 전화번호를 줬다. 혹시 레즈비언이 아니냐? 조심하라는 엉뚱한 소리 하는 남편 말을 무시하고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그녀는 디자이너로 은퇴했다. 오래전 유대인 의사 남편과 이혼했다. 그녀의 이혼 사유는 남편이 부인과 아이들보다 부모와 형제를 먼저 챙기는 것을 참다가 헤어졌다고 한다. 개인 사정이야 어떻든 간에 나는 그녀에게 꽤 흥미를 느꼈다. 그녀는 긍정적인 분위기를 발산하는 매력적인 싱글이다. 옷 하나하나를 신경 써서 겹겹이 입었다. 자신의 스타일을 창조한 차림새다. 그 여자 자체가 예술 작품이다. “너 너무 매력적이라서 남자들이 추근대면서 따라오지 않아?” “나는 욕망이 없어. (I have no desire.)” 헌신하면 헌신짝 된다는 말이 있다. 직장 다니며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하느라 외모를 가꾸지 않는 젊은 여자들이 있다. 애쓰며 돈 벌어다 준 부인에게 고마움은커녕 외모를 지적하며 창피해하는 철없는 남편들이 많다. 나이 든 여자들은 귀찮아서, 살이 쪄서 굳이 애쓸 필요가 있을까? 라며 포기한다. 편안한 삶에 안주하다 보면 마음도 습관적으로 편안한 것만을 추구하게 된다. “여자가 로맨스를 잃으면 여자로서 매력이 없어진다.”라고 말하던 친정아버지 말씀이 떠오른다. 건강 챙기며 96세까지도 여자 친구가 많았던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 병상에 누워 영원히 살 줄 알았다는 듯이 “내가 왜 이렇게 됐니?” “그래도 아버지는 원하는 삶을 원 없이 살았잖아. 죽음을 우리가 어찌할 수 없잖아. 받아 드려야지요.” 내 요 주둥이가 아파서 누워 있는 아버지에게 철 좀 들으라는 식으로 한마디 했다.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이 다 죽어도 본인만은 영원히 사는 줄 착각한다. 죽을 때 죽더라도, 죽는 순간까지 몸을 가꾸고 자신을 성장시키며 살다 가고 싶다. ‘늙기 전에는 젊음이 좋은지 모른다. 죽기 전에는 삶도 고마운지 모른다.’ We should not give up. 이수임 / 화가·맨해튼여자 친구 친정아버지 말씀 여자 자체
2025.11.13. 17: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