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흐르는 물처럼, 바위처럼 단단하게
동네 아이들 웃음소리가 꽃망울 터지는 봄의 향연처럼 들린다. 줄지어 서 있는 나무숲 사이로 하늘은 불타는 빨강과 주황이 어우러져 환상의 조화를 이룬다. 이른 아침 집앞에서 자전거 패달 굴리는 소리가 들린다. 문을 빼꼼 열고 보니 앞집 아이가 세발 자전거를 타고 쾌 속력으로 질주한다. 스티브는 잠이 덜 깬듯 하품을 하며 뒷짐지고 느릿하게 아들 뒤를 따른다. 콜드섹(Cul-De-Sac)에 위치한 우리집은 차가 들락거리지 않아 동네 아이들 놀이터로 안성 맞춤이다. “굿 모닝! 지금 할 수 있을 때 즐겨요(Enjoy while you can).” 내가 새벽 인사를 건네자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I am doing my best)”라고 손을 흔든다. 누굴 닮았는지, 우리 애들은 어릴 적엔 별나고 흥분 잘하는 하이퍼(Hyper)들이라서 안정성을 고려해 그 때도 콜드섹이 있는 집에 살았다. “애들은 와 잠도 안 자고 이리 설치노?” 어머니는 아이들 자전거 꽁무니 따라다니며 땀을 닦았다. 그 때가 좋았다. 참 좋았다. 미친듯 사업하고 밤잠 설치며 애들 셋 키우는 일은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축복받은 날들이다. 그 시절은 강물처럼 흘러갔다. 모든 것은 흐른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변하지 않는 것은 없고 흘러가지 않는 것은 없다고 시간의 힘을 역설한다. 그리스인들은 두가지 시간 개념을 갖고 있었다.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 (Kairos)’의 시간이다. 제우스의 막내 아들 ‘크로노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자신의 자녀를 다 먹어 치웠던 신의 이름이다. ‘크로노스’는 일상을 집어삼키는 시간, 허둥대며 쫓기듯 보내는 시간, 일을 더 빨리 처리하도록 재촉 받는 시간을 말한다. 독일어 재촉하다의 ‘헷첸(hetzen)’은 ‘미워하다’라는 뜻의 ‘하센(hassen’에서 유래했다. 기한 내에 처리하도록 재촉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속박하고 미워하는 행위와 같아서 ‘크로노스’는 자신을 증오하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카이로스’는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을 의미하는 ‘꼭 알맞은 순간’을 뜻한다. 살면서 마주치는 작고 큰 순간을 포착하고, 각 순간의 의미를 되새기며, 보다 깊이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을 의미하는 시간 개념이다. 카이로스적 시간 개념은 삶의 질을 높이고 인생의 본질적인 의미를 찾는 데 필수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일상적으로 접하는 다양한 경험들의 의미를 재조명하게 해주며, 궁극적으로는 자기 성찰의 기회를 마련해 준다. 카이로스를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을 느낄 확률이 높아진다. 시간은 공평하다. 어떻게 쓰냐에 따라 인생의 판도가 달라진다. 순간은 두 번 오지 않는다. 순간은 손에 잡히지도 잡을 수도 없다. 순간은 영원을 잉태한다. 카이로스 앞머리는 머리카락이 풍성해 제때 잡으면 쉽게 붙잡힌다. 뒤통수에는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간 뒤에는 잡을 수가 없다. 타임캡슐은 그 시대를 대표하는 기록이나 물건을 담아서 후세에 온전히 전할 목적으로 고안한 용기다. 내 타임캡슐은 빈 통이다. 시대를 위한 업적도 역사의 족적으로 남길 기록도 없다. 카이로스의 시간은 생명의 기적들을 내게 선물했다. 최선을 다해 사는 자녀들, 손자와 손녀들은 내가 남기는 소중한 타임캡슐이다. 흐르는 물처럼 유연하게, 단단한 바위처럼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기를.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카이로스적 시간 시간 개념 카이로스 앞머리
2026.04.14. 1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