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를 일기로 지난달 29일 별세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국가 장례식’이 오는 9일 ‘워싱턴DC 국립 대성당’에서 엄수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을 카터 전 대통령에 대한 국가 애도의 날로 지정했으며, 이날은 뉴욕증시도 일제히 휴장하기로 했다. 조지아주 플레인스 자택에서 숨진 카터 전 대통령의 시신은 오는 4일과 5일 조지아주 애틀랜타 소재 카터센터에 1차로 안치된다. 이후 6일 항공편으로 워싱턴DC로 이송, 의회 의사당 중앙홀에 일시 안치될 예정이다. 9일 엄수될 국가 장례식에는 전현직 미국 대통령이 참석한다. 다만 카터 전 대통령 생전에 그를 신랄하게 비판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참석할지는 미지수다. 장례식에서는 바이든 대통령과 카터 전 대통령의 손자이자 카터센터 이사회 의장인 제이슨 카터, 카터 집권 시절 부통령이었던 고 월터 먼데일의 아들인 테드 먼데일, 고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카터와 1976년 대선서 맞대결)의 아들 스티븐 포드 등이 추모사를 할 예정이다. 카터 전 대통령 시신은 이후 군용기 편으로 플레인스로 옮겨져 안장된다. 한편 바이든 대통령은 카터 전 대통령에 경의를 표하는 차원에서 9일 연방정부 기관과 행정부 부처들의 임시 휴무를 결정했다. 다만 국가안보와 그 외 다른 공적인 필요에 따라 정상 가동해야 할 조직과 근무 인원은 각 부처 및 기관 수장의 재량에 따라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김은별 기자대통령 카터 대통령 국장 카터센터 이사회 대통령 시신
2024.12.31. 20:37
지미 카터 전 대통령 부인 로잘린 여사(사진)가 향년 96세로 별세했다. 카터 센터는 성명을 통해 로잘린 여사가 지난 19일 오후 조지아주 플레인스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영면했다고 밝혔다. 성명에 따르면 지난 5월 치매 진단을 받은 로잘린 여사는 지난 18일 호스피스 케어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월부터 자택에서 호스피스 케어에 들어간 카터 전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로잘린은 내가 성취한 모든 일에서 동등한 파트너로 필요할 때 현명한 조언과 격려를 해줬다. 로잘린이 세상에 있는 한 나는 누군가 나를 사랑하고 지지한다는 사실을 항상 알았다”고 말했다. 부부가 마지막으로 함께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결혼 77주년을 맞은 지난해 9월 고향 플레인스에서 열린 연례 땅콩 축제였다. 직설화법으로 유명한 로잘린 여사는 카터 대통령 재임(1977~1981년) 동안 각료 회의에 참석하고 해외 순방을 다니는 등 가장 활동적인 영부인 중 한명으로도 알려져 있다. 퇴임 후 부부는 애틀랜타에 비영리 싱크탱크인 카터 센터를 설립했으며 아프리카 등 수십 개국의 의료 및 농업 프로젝트를 후원했다. 생전에 정신 건강 문제에 대한 인식 제고와 개혁을 위해 힘쓴 로잘린 여사는 1991년 남편과 함께 예방접종 프로그램인 ECBT(Every Child By Two)를 창립하기도 했다.대통령 카터 카터 대통령 대통령 부인 여사 별세
2023.11.19. 19:08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만난 건 2001년 여름이었다. 무주택 저소득층을 위한 집짓기 운동 ‘해비타트’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기 위해 부인 로잘린 여사와 함께 내한한 그를 인터뷰했다. 충남 아산 현장에서 그는 숙련된 솜씨로 나무를 자르고 망치질을 했다. 무더위에 연신 땀을 훔치면서도 연장을 놓지 않는 77세 전직 대통령 모습은 인상 깊었다. 그는 1994년 김일성 북한 주석과 만난 이후 김영삼 당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이 무르익었는데, 김 주석의 사망으로 회담이 중단된 데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통일을 위해 필요하다면 북한을 다시 방문하고 싶다며 열정을 보였다. 카터는 재임 기간(1977~81년) 인기가 없었다. 미국인은 그에게 연임 기회를 주지 않았다. 재선에 도전한 80년 대선에서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 후보가 44개 주에서 이겨 당선됐다. 기록적인 대패였다. 스태그플레이션과 테헤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이 결정타였다. 1932년 이후 48년 만에 단임 대통령으로 불명예 퇴임했지만, 그는 과거에 집착하지 않았다. 카터센터를 세워 저개발국 선거 참관인 봉사, 질병 퇴치, 인권 증진 등 민주주의 확산과 사회 문제 해결을 소명으로 삼았다. 다시 그의 소식을 접한 건 2021년 여름이었다. 카터 부부가 사는 조지아주 플레인스에서 결혼 75주년 기념식이 열려 하객이 몰렸다는 기사였다. 카터는 백악관에서 나와 인구 700명의 고향 마을로 돌아왔다. 1961년 손수 지은 집에서 그대로 산다. 저택이라고 생각하면 오산. 방 2개짜리 집은 2년 전 시세가 약 21만 달러였다. 백악관을 나온 뒤 전에 살던 곳으로 돌아온 유일한 미국 전직 대통령이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당선 전 살던 곳으로 돌아오는 일은 드물다. 빌 클린턴은 퇴임 후 아칸소 대신 뉴욕에 자리 잡았다. 버락 오바마와 도널드 트럼프도 시카고나 뉴욕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당선 전보다 퇴임 후 더 웅장하고 고급스러운 주택에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카터는 다른 대통령처럼 수백만 달러씩 사례하는 고액 강연이나 기업 이사회 활동을 하지 않았다. “백악관 생활을 경제적으로 이용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대신 그 힘을 세상을 바꾸는 데 쓰려고 했다. 그래서 퇴임 후 더 존경받았다. ‘가장 위대한 전직 대통령’이란 별칭도 얻었다. 그가 적극적 치료 대신 호스피스 관리를 받기로 했다고 알리자 응원이 답지하고 있다. 자신에 대한 ‘추모’를 생전에 들을 수 있게 됐다. 병원에서 사투를 벌이는 대신 집에서 가족과 이별을 준비하는 마지막 역시 선도적이다. 박현영 / 워싱턴특파원J네트워크 대통령 카터 대통령 카터 전직 대통령 카터 부부
2023.02.26. 15: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