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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로드 길 내고 세운 포트무디가 밴쿠버의 중심이 될 뻔한 사연

 메트로 밴쿠버의 평온한 주거 도시 '포트무디'는 한때 밴쿠버를 제치고 지역의 중심지로 우뚝 설 뻔했던 원대한 과거를 품고 있다. 19세기 중반 군사 요충지로 첫발을 뗀 이곳은 대륙 횡단 철도의 종착지 후보로 낙점되며 대도시로의 도약을 꿈꿨던 역사의 현장이다.   포트무디의 시작은 1850년대 후반의 철저한 군사 전략에서 비롯됐다. 당시 서부 캐나다의 중심지였던 뉴웨스트민스터가 남쪽으로부터 공격받을 상황에 대비해 보급 항구를 확보하려는 계획이 세워졌다. 이에 따라 뉴웨스트민스터와 버라드 인렛 끝자락을 잇는 노스로드가 뚫렸고 도로 건설에 참여한 노동자들이 정착하며 오늘날의 도시 기틀을 닦았다.   가장 큰 변화는 1879년에 찾아왔다. 캐나다 연방이 동부와 서부를 잇는 철도 건설을 추진하면서 포트무디를 전국 철도망의 서부 종착역으로 낙점한 것이다. 이 소식에 포트무디는 메트로 밴쿠버 최초의 부동산 투기 열풍에 휩싸였다. 1885년 단돈 15달러에 거래되던 토지가 불과 1년 만에 1,000달러까지 치솟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1886년 몬트리올에서 출발한 첫 여객 열차가 포트무디에 도착하며 도시의 전성기가 열리는 듯했다. 하지만 철도 회사가 종착역을 신생 도시인 밴쿠버로 연장하기로 결정하면서 포트무디의 원대한 꿈은 한순간에 멈췄다.   지리적으로도 포트무디는 독특한 풍경을 자아냈다. 하천에서 유입되는 민물 양이 많아 겨울철이면 바닷물이 다른 지역보다 쉽게 얼어붙었다. 기온이 급격히 떨어졌던 1930년대와 40년대에는 포트무디 주민들이 얼어붙은 바다 위를 걸어 정유소로 출근하거나 심지어 자동차를 몰고 얼음 위를 이동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산업 측면에서도 포트무디는 캐나다 와인 역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1970년대 전국적인 인기를 끌며 와인 대중화를 이끈 '베이비 덕(Baby Duck)'이 바로 이곳에서 탄생했다. 헝가리 출신 이민자 앤드류 펠러가 1960년대 포트무디에 터를 잡고 시작한 와이너리 사업은 이후 성장을 거듭해 현재 펠러 에스테이트(Peller Estates)와 웨인 그레츠키 에스테이트(Wayne Gretzky Estates) 등을 생산하는 대형 와인 기업으로 발전했다.   또한 포트무디는 '밴드테일드 비둘기'의 주요 서식지로 알려져 있으며, 이 새는 도시 공식 상징에도 포함돼 있다. 남서부 BC는 캐나다에서 이 종을 관찰하기 가장 좋은 지역으로 꼽힌다. 포트무디는 비록 밴쿠버와 같은 대도시로 성장하지는 못했지만 군사와 교통 그리고 산업의 발상지로서 메트로 밴쿠버 형성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체크포인트 · 이것만은 꼭]   포트무디가 철도 종착역 지위를 밴쿠버에 내준 역사는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오늘날의 쾌적한 주거 환경을 지켜낸 신의 한 수가 됐다. 만약 계획대로 대규모 물류 허브가 들어섰다면 지금의 울창한 숲과 평온한 해안가는 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 부동산 시장에서 주목할 대목은 과거 노스로드 주변의 개발 축이 현대의 스카이트레인 에버그린 라인과 맞물리며 다시금 도시 재생의 중심축으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밴드테일 비둘기 보호 구역인 피전 코브 주변은 연방 정부의 환경 규제가 엄격해 인근 토지 이용이나 개발 계획을 살필 때 생태 보존 구역 설정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이런 역사적 맥락을 짚어보면 포트무디가 왜 다른 위성 도시들과 달리 저밀도 전원 풍경을 고집하는지 이유가 명확해진다.     밴쿠버중앙일보편집국노스로드 밴쿠버 한때 밴쿠버 밴쿠버 최초 캐나다 와인

2026.03.23.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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