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 수치가 아니던 시절은 행복했다.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곳은 서로 돕고 기대며 산다. 대구로 이사 오기 전 초등학교 3학년까지 초가집이 버섯처럼 옹기종기 붙은 삼거리 마을에 살았다. 스물 남짓한 집들은 담장이 허름해 내 집, 남의 집 경계가 없었다. 어느 집 쌀통에 쌀이 얼마나 남았는지, 끼니를 걸러야 하는 집이 누구인지 안다. 저녁 때쯤 굴뚝에서 연기가 나지 않는 집을 향해 ‘새끼들 데불고 밥 묵으라 오라 캐라’라고 소리쳤다. 굶는 사람이 없었다. 학교 가는 길은 행복했다. 꼬부라진 논둑길 따라 요리조리 논밭 사이를 달리면 보자기로 싼 양은 도시락은 달그락 소리를 냈다. 측백나무가 담장처럼 둘러처진 교문 앞에 장군처럼 버티고 있는 커다란 바위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큰 바위 얼굴(Great Stone Face)’은 주홍글씨로 유명한 너세니얼 호손이 1850년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미국의 작은 마을에 큰 바위 얼굴이라 불리는 바위산이 있었다. 어니스트는 어린 시절부터 큰바위 얼굴을 닮은 위대한 인물이 나타난다는 전설을 믿고 기다린다. 재력가, 장군, 성공한 정치가를 만났지만 탐욕과 권력 명예욕에 찌든 것에 실망한다. 노년기에 든 어니스트는 마을에서 설교자로 존경 받는 인물이 되고 사람들은 어니스트가 큰 바위 얼굴을 닮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니스트는 자신보다 훌륭한 인물이 나타날 것이라고 겸손하게 말하고 그 사람을 기다린다. 사람 얼굴은 천차만별이다. 인생이란 대본에는 각기 살아온 세월의 모습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태어날 때는 비슷해 보이지만, 세월이 산천을 다스리듯 무엇을 보고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나이 들면 생김새와 얼굴 모양이 달라진다. 미술이나 문학은 숟가락 얹지만 무식이 탄로날까 전전긍긍하는 것이 음악이다. 시골에선 풍금에 맞춰 종달새처럼 따라 부르면 됐다. 건반이 두개나 고장 나도 목소리 높여 힘차게 노래를 불렀다. 도시로 전학해 피아노의 맑고 명쾌한 소리에 주눅 들어 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했다. 촌티가 탄로날까 노이로제(?)에 시달렸다. 풍금 소리는 어머니 젖무덤에 잠들 때처럼 포근하고 따스했다. 소복 입은 어머니 한숨소리 같아서 잊히지 않는 날들에 슬픈 날개를 달아준다. 피아노는 고통과 아픔을 장엄한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고 풍금은 슬픔의 강물 따라 생을 떠돈다. 우리집 그랜드 피아노는 장식용이다. 애들에게 어릴 적 피아노 바이올린 풀룻 기타 등 렛슨을 시켰지만 연습을 안해 렛슨비만 날렸다. 전인교육 시킨다고 콘서트 오페라 뮤지컬 미술전시회를 주말이면 끌고 다녔다. 그나마 아들이 집에 오면 악보 없이 피아노 치는 걸 보며 ‘잔디밭에도 민들레 꽃은 핀다’로 위로받는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 가는 것이다.’-앙드레 말로 꿈은 사라지지 않는다. 찬란한 수식어와 빛나는 경력 없이도, 힘든 세상과 절망에 굴복하지 않고 버티면 진실 하나로 살아갈 용기를 가진다. 애들이 그리우면 피아노의 먼지를 닦는다. 그리고 유년의 풍금소리를 듣는다. 세월이 가도 풍금은 유년의 기억 속에 감꽃처럼 밤하늘을 밝힌다. 슬프고 외로울 때면 풍금소리 들으며 찔레꽃 향기로 마음의 바다에 배를 띄운다. 건반이 몇 개 없어져도, 생의 페달을 밟을 때마다 주눅들지 않고, 내 모습 그대로 살아가기를, 기억은 흔적으로 남아 바람개비로 유년의 강가를 맴돈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큰바위 얼굴 풍금 소리 가도 풍금
2026.02.03. 13:14
우리 애들은 자수성가(?)했다. 영어보다 한국어가 능숙한 어머니 탓에 스스로 살길을 찾아 나선 때문이다. 유치원 다닐 때는 떡국 모양으로 종이 오려 알파벳 적어 놓고 한석봉 어머니 흉내를 냈다. 초등학교 3학년까지 간당간당 그런대로 숙제를 도와줬는데 그다음부터는 감당이 안 됐다. 애들은 눈치가 백단이다. 외국인(?) 엄마의 영어와 수학 실력을 재빠르게 눈치채고 더는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반면에 미술 숙제는 신나게 함께 해치웠다. 화랑을 열고부터는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주중에는 사업에 몰두해 내 도움을 아예 포기하고 아이들은 각자도생하기에 이르렀다. 그래도 어미 된 양심에 주말에는 미술관 박물관 관람, 전시회와 뮤지컬 공연을 함께 다녔다. 지식은 나이 들어도 깨우칠 수 있지만 인성교육은 여린 싹부터 물 주고 잘 가꾸어야 올곧게 자란다. 어머니는 청춘에 홀로 되셨다. 아버지가 남긴 토지를 지키기 위해 머슴이나 일꾼보다 몇배나 더 열심히 밭고랑을 매시던 어머니. 오랜 농사일로 어머니 오른손은 휘어졌다. 땅은 자식의 앞날을 지켜줄 담보라서 목숨 걸고 지켜야 했다. ‘우리 희야 대학 갈 때는 땅콩밭 팔아 등록금 대야지’ 하시며 혼자 미소 짓던 어머니! 땅은 어머니의 희망이고 나는 어머니의 꿈이었다. 설날이 오면 삼만이 아재가 방앗간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가래를 뽑아 지게에 지고 왔다. 뽀얀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가래떡 냄새를 맡으면 하얀 날개 달린 백설공주가 되어 하늘로 날아오른다. 소복 입은 어머니는 샛별이 잠을 깨고 먼동이 틀 때까지 곧은 자세로 앉아 동글납작하게 떡을 써신다. 삐딱하게 몇 줄 썰다가 스르르 잠이 들면 찔레꽃 만발한 꽃길 거니는 꿈을 꾼다. 날이 밝으면 아재 손 잡고 하얀 찔레꽃잎처럼 가냘프게 썬 가래떡을 집집마다 돌린다. 형편이 안돼 설음식을 넉넉하게 준비하지 못하는 이웃은 “두 봉지 드려라”고 말씀하신다. 한치도 어긋남 없이 가지런히 썬 떡을 보며 동네 아낙들은 “한석봉 엄마가 따로 없네”라고 칭찬했다. 고생하시는 어머니가 안쓰러워 도우려고 하면 “공부해라. 그래야 큰 사람이 된다”고 말씀하셨다. 너새니얼 호손 단편소설 ‘큰 바위 얼굴’의 주인공 어니스트는 어머니로부터 바위 언덕에 새겨진 얼굴을 닮은 아이가 자라 훌륭한 인물이 될거라는 전설을 듣는다. 세월이 흘러 부자와 장군, 정치인과 시인들을 만났지만 그들은 큰 바위 얼굴에 새겨진 사람들이 아니였다. 어느날 어니스트의 설교를 듣던 시인이 이 사람이 바로 ‘큰 바위 얼굴’이라고 외친다. 진실하고 겸손하게 살아온 사람의 발자취는 큰바위 얼굴에 새겨진 형상을 닮는다. 돌은 시간의 역사를 기록한다. 한 인간의 삶을 세월 속에 담아낸다. 모진 풍파와 시련을 견딘 흔적을 새긴다. 인고의 날들을 이겨낸 어머니의 삶은 그리움의 언덕 너머 큰 바위 얼굴로 굳건히 서서 내 삶을 돌아보게 한다. 가지런히 가래떡 썰던, 손가락마저 휘어진 손으로 어머니는 큰 바위에 글을 새긴다. 사는 것이 힘들어도 흔들리지 말고, 가지런히 두손 모으고 차근차근 살라고, 비바람 몰아치는 날에는 큰 바위 얼굴에 주름진 모습이 둥근 달로 떠오른다. 이기희 / Q7 Editions 대표·작가이 아침에 어머니 바위 큰바위 얼굴 한석봉 어머니 어머니 오른손
2023.01.29. 15:30
우리 애들은 자수성가(?)했다. 영어보다 한국어가 능숙한 어머니 탓에 스스로 살길을 찿아나선 때문이다. 유치원 다닐 때는 떡국 모양으로 종이 오려 알파벳 적어 놓고 한석봉 어머니 흉내를 냈다. 초등학교 3학년까지는 간당간당 그런대로 숙제를 도와줬는데 그 다음부터는 감당이 안됐다. 애들은 눈치가 백단이다. 외국인(?) 엄마 영어와 수학 실력을 재빠르게 눈치채고 더 이상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반면에 미술 숙제는 신나게 함께 해치웠다. 화랑을 열고부터는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주중에는 사업에 몰두해 내 도움을 아예 포기하고 아이들은 각자도생 하기에 이르렀다. 그래도 어미 된 양심에 주말에는 미술관 박물관 관람, 전시회와 뮤지컬 공연을 함께 다녔다. 지식은 나이 들어도 깨우칠 수 있지만 인성교육은 여린 싹부터 물 주고 잘 가꾸어야 올곧게 자란다. 어머니는 청춘에 홀로 되셨다. 아버지가 남긴 토지를 지키기 위해 머슴이나 일꾼보다 몇배나 더 열심히 밭고랑을 매시던 어머니. 오랜 농삿일로 어머니 오른손은 휘어졌다. 땅은 자식의 앞날을 지켜줄 담보라서 목숨 걸고 지켜야 했다. ‘우리 희야 대학갈 때는 짐실 땅콩밭 팔아 등록금 대야지’ 하시며 혼자 미소 짓던 어머니! 땅은 어머니의 희망이고 나는 어머니의 꿈이였다. 설날이 오면 삼만이 아재가 방앗간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가래를 뽑아 지게에 지고 왔다. 뽀얀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가래떡 냄새를 맡으면 하얀 날개 달린 백설공주가 되어 하늘로 날아오른다. 소복 입은 어머니는 새벽별이 잠을 깨고 먼동이 틀 때까지 곧은 자세로 앉아 동글납작하게 떡을 써신다. 삐딱하게 몇 줄 썰다가 스르르 잠이 들면 찔레꽃 만발한 꽃길 거니는 꿈을 꾼다. 날이 밝으면 아재 손 잡고 하얀 찔레꽃잎처럼 가냘프게 썬 가래떡을 집집마다 돌린다. 형편이 안돼 설음식을 넉넉하게 준비하지 못하는 이웃은 “두 봉지 드려라”고 말씀하신다. 한치도 어긋남 없이 가지런히 썬 떡을 보며 동네 아낙들은 “한석봉 엄마가 따로 없네”라고 칭찬했다. 고생하시는 어머니가 안쓰러워 도우려고 하면 “공부해라. 그래야 큰 사람이 된다”고 말씀하셨다. 너새니얼 호손 단편소설 ‘큰 바위 얼굴’의 주인공 어니스트는 어머니로부터 바위 언덕에 새겨진 얼굴을 닮은 아이가 자라 훌륭한 인물이 될 거라는 전설을 듣는다. 세월이 흘러 부자와 장군, 정치인과 시인들을 만났지만 그들은 큰 바위 얼굴에 새겨진 사람들이 아니였다. 어느 날 어니스트의 설교를 듣던 시인이 이 사람이 바로 ‘큰 바위 얼굴’이라고 외친다. 진실하고 겸손하게 살아온 사람의 발자취는 큰바위 얼굴에 새겨진 형상을 닮는다. 돌은 시간의 역사를 기록한다. 한 인간의 삶을 세월 속에 담아낸다. 모진 풍파와 시련을 견딘 흔적을 새긴다. 인고의 날들을 이겨낸 어머니의 삶은 그리움의 언덕 너머 큰 바위 얼굴로 굳건히 서서 내 삶을 돌아보게 한다. 가지런히 가래떡 썰던, 손가락마저 휘어진 손으로 어머니는 큰 바위에 글을 새긴다. 사는 것이 힘들어도 흔들리지 말고, 가지런히 두 손 모으고 차근차근 살라고, 비바람 몰아치는 날에는 큰 바위 얼굴에 주름진 모습이 둥근 달로 떠오른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어머니 바위 큰바위 얼굴 한석봉 어머니 어머니 오른손
2023.01.17. 14:50
초등학교 시절, ‘큰 바위 얼굴’이라는 글을 교과서에서 읽었다. 반세기 전쯤의 일이다. 어느 골짜기에 성자의 모습을 닮은 큰 바위가 있었다. 소년 어니스트는 어머니로부터 이 지방에 큰 바위 얼굴을 닮은 훌륭한 인물이 나타날 것이라는 전설을 듣는다. 소년은 커서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은 기대를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큰 바위 얼굴처럼 될까 생각하면서 살아간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 지방 출신 돈 많은 부자, 싸움 잘하는 장군, 말 잘하는 정치인, 글 잘 쓰는 작가를 만났으나 큰 바위 얼굴처럼 훌륭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어니스트의 설교를 듣던 시인이 ‘저 사람이 바로 큰 바위 얼굴’이라고 소리친다. 어린 나는 이 야기로부터 깊은 감명을 받았다. 미국에 건너와 살게 되었다. 어릴 적 읽었던 글이 생각날 때마다 뉴햄프셔주 화이트마운틴에 있다는 큰 바위 얼굴을 가보고 싶었다. 그러던 중, 큰 바위가 폭풍으로 인해 무너져버렸다는 뉴스를 보았다. 2003년 5월이었다. 안타까웠다. 몇 년이 지난 2009년 1월, 큰 바위 얼굴이 한국에서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전남 영암 월출산에서 발견됐다는 기사였다. 사진작가 박철이 발견했단다. 그 해, 도보 국토종단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박철 작가를 만났다. 큰 바위 얼굴을 발견하던 날의 얘기를 들었다. 산에 홀린 사람처럼 30년 넘게 월출산 사진을 찍어오던 어느 날 정오 무렵, 천황봉에 올라 건너편 구정봉을 바라보는데 그 큰 바위가 홀연히 사람 얼굴 형상으로 눈앞에 나타나더란다. 놀라움과 감동이 그대로 전해왔다. 누만 년 동안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모습을 그 시간 그에게 드러내 보인 것이다. 국토종단 중 아내와 함께 월출산 천황봉에 올랐다. 맞은편 구정봉을 바라보았다. 큰 바위 얼굴이다. 머리, 이마, 눈, 코, 입이 또렷하다. 턱에서 정수리까지 길이가 101m. 세계 최대 크기다. 미국에 있던 바위가 사라진 후, 그보다 일곱 배가 넘은 큰 바위 얼굴이 대한민국에서 새롭게 발견되었다는 사실이 예사롭지 않다. 큰 바위 얼굴은 하늘이 열린 날, 태양이 불러낸다. 하늘의 기운을 받아 세상을 이끌어갈 큰 사람의 등장을 예고하는 징후로 보인다. BTS를 비롯 한국문화가 세계를 리드하는 현상이 그 증거가 아닐까. 월출산은 남한의 금강산이라 부른다. 기암괴석으로 덮인 아름다운 산이다. 박철 사진작가는 백번도 넘게 그 산을 오르내리며 사진을 찍어온 사람이다. 평생 큰 바위 얼굴을 흠모하여 살아온 어니스트 소년이 결국 큰 바위 얼굴이 되었듯이, 월출산 큰 바위 얼굴이 그에게 모습을 보여준 것은 한 사진작가의 정성에 대한 보답이 아니었을까. 새해가 시작되었다. 한 가지 일에 오래 정성을 쏟으면 하늘이 감동한다. 올해는 우리 땅 큰 바위의 기운을 받아 모두가 큰바위 얼굴이 되면 좋겠다. 큰 바위 얼굴 닮은 사람이 많을수록 좋은 게 아닌가. 월출산 큰 바위 얼굴이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일깨워주고 있다. 정찬열 / 시인이 아침에 바위 얼굴 큰바위 얼굴 사람 얼굴 월출산 천황봉
2022.01.12. 20:10
초등학교 시절, ‘큰 바위 얼굴’이라는 글을 교과서에서 읽었다. 반세기 전쯤의 일이다. 어느 골짜기에 성자의 모습을 닮은 큰 바위가 있었다. 소년 어니스트는 어머니로부터 이 지방에 큰 바위 얼굴을 닮은 훌륭한 인물이 나타날 것이라는 전설을 듣는다. 소년은 커서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은 기대를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큰 바위 얼굴처럼 될까 생각하면서 살아간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 지방 출신 돈 많은 부자, 싸움 잘하는 장군, 말 잘하는 정치인, 글 잘 쓰는 작가를 만났으나 큰 바위 얼굴처럼 훌륭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어니스트의 설교를 듣던 시인이 ‘저 사람이 바로 큰 바위 얼굴’이라고 소리친다. 어린 나는 이 야기로부터 깊은 감명을 받았다. 미국에 건너와 살게 되었다. 어릴 적 읽었던 글이 생각날 때마다 뉴햄프셔주 화이트마운틴에 있다는 큰 바위 얼굴을 가보고 싶었다. 그러던 중, 큰 바위가 폭풍으로 인해 무너져버렸다는 뉴스를 보았다. 2003년 5월이었다. 안타까웠다. 몇 년이 지난 2009년 1월, 큰 바위 얼굴이 한국에서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전남 영암 월출산에서 발견됐다는 기사였다. 사진작가 박철이 발견했단다. 그 해, 도보 국토종단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박철 작가를 만났다. 큰 바위 얼굴을 발견하던 날의 얘기를 들었다. 산에 홀린 사람처럼 30년 넘게 월출산 사진을 찍어오던 어느 날 정오 무렵, 천황봉에 올라 건너편 구정봉을 바라보는데 그 큰 바위가 홀연히 사람 얼굴 형상으로 눈앞에 나타나더란다. 놀라움과 감동이 그대로 전해왔다. 누만 년 동안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모습을 그 시간 그에게 드러내 보인 것이다. 국토종단 중 아내와 함께 월출산 천황봉에 올랐다. 맞은편 구정봉을 바라보았다. 큰 바위 얼굴이다. 머리, 이마, 눈, 코, 입이 또렷하다. 턱에서 정수리까지 길이가 101m. 세계 최대 크기다. 미국에 있던 바위가 사라진 후, 그보다 일곱 배가 넘은 큰 바위 얼굴이 대한민국에서 새롭게 발견되었다는 사실이 예사롭지 않다. 큰 바위 얼굴은 하늘이 열린 날, 태양이 불러낸다. 하늘의 기운을 받아 세상을 이끌어갈 큰 사람의 등장을 예고하는 징후로 보인다. BTS를 비롯 한국문화가 세계를 리드하는 현상이 그 증거가 아닐까. 월출산은 남한의 금강산이라 부른다. 기암괴석으로 덮인 아름다운 산이다. 박철 사진작가는 백번도 넘게 그 산을 오르내리며 사진을 찍어온 사람이다. 평생 큰 바위 얼굴을 흠모하여 살아온 어니스트 소년이 결국 큰 바위 얼굴이 되었듯이, 월출산 큰 바위 얼굴이 그에게 모습을 보여준 것은 한 사진작가의 정성에 대한 보답이 아니었을까. 새해가 시작되었다. 한 가지 일에 오래 정성을 쏟으면 하늘이 감동한다. 올해는 우리 땅 큰 바위의 기운을 받아 모두가 큰바위 얼굴이 되면 좋겠다. 큰 바위 얼굴 닮은 사람이 많을수록 좋은 게 아닌가. 월출산 큰 바위 얼굴이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일깨워주고 있다. 정찬열 / 시인이 아침에 바위 얼굴 큰바위 얼굴 사람 얼굴 월출산 천황봉
2022.01.09. 17: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