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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훌륭한 의사, 통일운동가의 꿈

세계적인 인공관절 전문의이자 통일운동가 오인동 박사가 지난 6월19일 오후 9시 40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5세.   “집에서 아들, 딸과 함께 임종을 지켜보는 가운데 고통 없이 평안한 표정을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라는 유가족의 연락을 받고, 나는 한참 동안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마침 6.25 한국전쟁 발발 75주년을 앞두고 통일에 관한 글을 쓰던 중이어서 한층 상실감이 컸다. 고인께서는 지난 몇 년간 되풀이되어온 남북 간의 극한 대립을 얼마나 아파하셨을까.   언제부턴가 한국 사회에서는 통일을 부담스러운 단어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조사에 따르면, 한국 국민 3명 중 1명이 북한과 통일할 필요가 없다고 응답했다. 2030세대는 절반 가까이 통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젊은 세대일수록 세월이 갈수록 통일과 멀어져가고 있다.   이런 현실을 생각하면 고인께서 생전에 강조하던 말씀이 아프게 떠오른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분단의 멍에를 져야 한다는 당위성과 책임감이 있다. 이 멍에를 내려놓지 않고는 그 누구도 자유로워질 수 없다. 부정하려 해도 달아날 길 없는 우리의 숙제다. …남과 북이 한발씩 굳게 딛고 균형을 이루어 서면 모국의 앞날이 창창하리라 믿는다.”   오인동 박사의 삶은 두 개의 큰 줄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훌륭한 의사의 삶이고, 다른 하나는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실천적 통일운동가의 삶이다. 아픈 사람을 치유하는 의사와 분단된 조국의 아픔을 고쳐보려 애쓰는 통일운동가의 삶은 다른 것 같지만, 결국은 하나다. 그 바탕은 진한 사랑과 평화다. 그이는 사랑을 실천한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오인동 박사는 1939년 황해도 옹진에서 태어나, 가톨릭 의대를 졸업하고, 1970년 미국으로 와서, 정형외과 전문의가 되어 큰 성공을 거두며, 하버드대학 조교수, MIT 강사 등을 역임했다. 특히, 인공고관절 수술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으며 의학계에 큰 족적을 남긴 자랑스러운 한국인이었다.   한편, 1992년 재미한인의사회 방문단으로 북한을 방문했을 때, 그곳의 열악한 상황에 안타까움을 느꼈고, 이를 계기로 의료기술 교류와 통일 문제에 큰 관심을 갖고 헌신하기 시작했다. 2009년 이후 여섯 차례 북한을 방문하여, 자신이 고안한 값비싼 인공고관절 기구들을 건네주었고, 현지에서 직접 생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등의 실천적 활동을 이어왔다.   오인동 박사의 통일운동은 감정이나 이념논쟁에 치우치지 않고, 깊은 연구를 통해 구체적이면서 현실적으로 실천 가능한 방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예를 들어, 남북한과 해외동포 8000만이 힘을 모으면 세계 5위의 강국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는 자료를 제시하는 식이다. 그가 제안한 ‘통일대박론’이나 ‘남북연합방 Corea’ 등은 앞으로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할 대표적인 일들로 평가된다.   오 박사는 많은 저서와 강연을 통해 통일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간단명료한 슬로건으로 주목받았고, 실천을 공유했다. 그런 공로로 ‘한겨레통일문화상’ ‘윤동주 민족상’ ‘늘푸른청년상’ 등을 수상했다.   고인은 특히 통일운동에 있어서 해외동포사회의 역할을 강조하며, 남과 북, 해외동포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해왔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큰 자산을 잃었다.   오인동 박사의 마무리도 ‘좋은 의사’다웠다. 장례식을 따로 거행하지 않고, 시신을 로마린다대학병원에 기증했다. 연구 실습이 끝나면 화장하여, 유해는 고인이 생전 즐겨 다니던 산에 뿌릴 예정이라고 한다. 아름답다.   사랑받는 훌륭한 의사이자 실천적 통일운동가로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은 고인의 영전에 머리 숙인다. “조국 통일의 모습을 꼭 보고 싶다”던 소원이 하루 빨리 이루어지기를….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통일운동가 의사 통일운동가 오인동 실천적 통일운동가 재미한인의사회 방문단

2025.06.26.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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