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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건 살이] 10년전의 포틀랜드를 찾아서

10년 전의 포틀랜드는 아름다웠다. 비록 수입도 없이 앞날이 보이지 않는 삶이었지만, 그 시절의 포틀랜드는 그런 나를 충분히 위로해주었다.     10만 마일이 넘은 고물차를 끌고 도심 어딘가에 주차한 뒤, 큰 분수가 있는 커피숍 앞에서 아내와 함께 하염없이 앉아있곤 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7월4일의 불꽃놀이를 보러 가기 위해, 면식도 없는 동네 사람들과 함께 어느 커피숍이 더 맛있는지 등의 농담을 즐기며 호손 브리지를 오르곤 했었다. 사람들은 친절했고, 올드타운의 펍에서 마신 맥주는 뒷목이 시릴 만큼 상쾌했다.   아들의 밥값을 더 벌어야 되다 보니, 요즘은 다운타운의 조그마한 신용조합에서 파트타임 회계사로 일하고 있다. 회사는 10년 전 친구들과 자주 걷던 그 거리 위에 있다. 그때는 자전거 대여 업체들이 줄지어 있었고, 가이드가 자전거를 타고 우리에게 포틀랜드의 역사와 명소를 설명해주었으며, 중간 중간 펍에 들러 함께 맥주로 목을 축이곤 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의 올드타운은 더 이상 그때의 모습을 간직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일하는 신용조합 건물은 홈리스들과 마약상인들로 둘러싸여 있고, 직원 전용 주차장에는 지독한 소변 냄새가 진동한다. 위험하다는 동료 직원들의 만류에도, 나는 때때로 주변 상권이 얼마나 회복되었는지 보기 위해 거리로 나선다.     작년까지 간신히 열던 식당 두 곳은 이제 문을 닫았고, 10분은 걸어야 겨우 문을 연 음식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포틀랜드는 홈리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민들로부터 세금을 더 걷고 있지만, 내가 일하고 있는 이 지역은 철저히 버려진 느낌이 든다. 지구인으로서, 그리고 한 사회의 소시민으로서 이 문제를 해결할 힘이 없다는 사실에 좌절감을 느낀다.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던 많은 이웃들이 떠났다. 이름 모를 식당에라도 들어가 “고생 많으셨다”는 말 한마디라도 건네고 싶었지만, 문을 연 곳을 찾지 못한 채 사무실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 시대의 도래와 AI의 급속한 발전으로 사회는 더욱 개인화되어 가고 있다. 마냥 좋은 추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단지 보고서 한 장을 만들어 대표이사의 결재를 받으려면 팀원들과의 끊임없는 토론과 부서장으로부터의 사실 검증, 지지고 볶으면서 나오는 스트레스, 고뇌를 떨쳐버리기 위한 담배 한 모금, 그리고 과업이 끝난 뒤에 즐기는 선후배와의 저녁식사들이 나의 삶에 있었다.   이것들은 우리가 하나의 단체에 속해 있다는 소속감을 느끼게 해주었고 그 단체 내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은 내가 인간임을 인지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제는 누군가 질문을 하면, 믿을 만한 AI를 네댓 개 켜놓고 그들의 의견이 얼마나 일치하는지, 내가 가진 지식 및 관련 법률과 얼마나 부합하는지를 확인한 뒤 답변을 한다. 안타깝게도 이 방식은 사람과 소통할 때보다 훨씬 효율적이며, 그 비용 또한 사람을 쓰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다.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런 생각을 하다 나의 눈을 다시 주변으로 돌려본다. 도시는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공동화 현상은 피할 수 없는 길처럼 느껴진다.     ‘인간’이라는 단어는 본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을 의미한다는데, 나는 인간으로서의 실존을 도대체 어디서 찾아야할까. 영화 속 스카이넷은 무력으로 인간을 억압했지만, 우리는 이미 전혀 다른 방식으로 종속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시절만 해도 우리는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고, ‘지구촌’이라는 말이 그리 낯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지구촌에 살고 있다고 말하기엔 서로에게서 너무 멀어진 듯하다.     커뮤니티의 회복이 필요하다. 일터에서 인간이 더 이상 가장 효율적인 존재가 아니라면, 우리는 일 밖의 시간에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존재들과 더 많이 소통해야 한다. 더 많은 비효율을 추구하면서, 인간이라는 존재임을 서로 확인시켜야 한다. 카카오톡이나 슬랙 같은 메신저보다, 직접 얼굴을 보고 약속을 잡아 식당에서 함께 식사하며 음식 맛을 나누고, 시답잖은 날씨 이야기를 하며 주말 계획을 서로 물어보아야 한다.     주말마다 방 안에 누워 스낵과 쇼츠로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침대에서 일어나 취미를 찾고 합창을 하든, 춤을 추든, 낚시를 가든, 골프를 치든, 사람들과 교류하며 실존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다시 만들어진 위대한 커뮤니티 안에서 개인의 영달보다는 인간으로서 추구해야 할 공통의 선을 더 강하게 좇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유건 / 회계사오리건 살이 포틀랜드 홈리스 문제 신용조합 건물 파트타임 회계사

2025.07.08.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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