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재산 컨설팅] CES, 룰 모르면 판돈 잃는 게임
라스베이거스는 합법적인 도박의 도시다. 이 도시에서 보여주는 가장 분명한 교훈은 단 하나다. 룰을 모르면,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카지노에서 승패는 운이 아니라 규칙과 확률, 그리고 판단의 결과다. 같은 카드 게임이라도 룰을 이해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결과는 처음부터 다르다. 라스베이거스는 그 사실을 가장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도시다. 매년 1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소비자 전자 테크 전시회 CES(Consumer Electronics Show) 역시 비슷하다. 표면적으로는 첨단 기술을 소개하는 국제 전시회이지만,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은 단순한 홍보를 넘어선다. 전 세계 기업들이 한자리에 모여 기술과 시장의 미래를 두고 경쟁하는, 하나의 게임에 가깝다. 그리고 이 게임 역시, 명확한 룰을 가지고 있다. 카드 게임의 기본 원칙은 분명하다. 내 패를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카드라도 공개 시점을 잘못 선택하면, 그 순간부터 게임의 주도권은 상대에게 넘어간다. CES 전시회에서도 이 원칙은 그대로 적용된다. 전시는 모든 것을 보여주는 자리가 아니다. 이미 특허나 디자인 등으로 권리가 확보된 기술, 출원 완료된 개념 수준의 아이디어, 보호 범위가 명확한 브랜드와 디자인은 전략적으로 공개할 수 있다. 이는 계산된 선택이며, 준비된 공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 경계가 쉽게 무너진다. 아직 출원하지 않은 핵심 기술, 구현 방식과 알고리즘, 향후 확장 전략, 확정되지 않은 브랜드명까지 모두 공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러한 전시는 기술을 알리는 행위 라기보다, 스스로 패를 테이블 위에 펼쳐보이는 것에 가깝다. 카드 게임에서 패를 공개하는 순간은 단 하나다. 이길 수 있다고 판단할 때다. CES에서 기술을 공개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의 전제가 필요하다. 특허·디자인·상표와 같은 지식재산권은 단순한 법적 절차가 아니다. 이는 공개를 가능하게 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이자, 게임에 참여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전시가 끝난 뒤, 기업의 대응은 명확히 갈린다. 유사 제품이 등장하고, 유사 브랜드가 출원되며, 시장과 플랫폼에서 충돌이 발생한다. 이때 권리를 준비한 기업은 대응에 나서지만, 준비하지 못한 채 패를 먼저 공개한 기업은 해명만 하게 된다. 카드 게임의 고수는 자신의 카드만 보지 않는다. 상대의 시선과 움직임, 테이블의 흐름과 분위기를 읽는다. 전시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가 기술에 오래 머무는지, 누가 질문을 던지는지, 어떤 경쟁사가 유사한 방향으로 움직이는지를 살피는 것 역시 중요한 전략의 일부다. 지식재산 전략은 방어이면서 동시에 상대를 읽기 위한 관찰의 과정이다. 전시는 단발성 행사가 아니다. CES 이후에도 경쟁은 이어지고, 그 과정은 수년간 지속된다. 판돈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시장과 브랜드, 그리고 기업의 미래다. 따라서, CES에서 기술을 전시한다는 것은 새로운 판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준비된 패로 테이블에 앉는 것이어야 한다.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처럼, 전시회 역시 룰이 존재하는 게임이다. 기술은 카드이고, 지식재산권은 그 카드를 지키는 손이다. 패를 언제, 어디까지 공개할지 아는 기업만이 이 테이블에서 끝까지 살아남는다. CES에 참가한 우리 기업들이 이 사실을 인식한 상태에서 본 게임에 임해, 이기는 게임을 하기를 기대해 본다. 지은정 / 미국 특허변호사·KOIPA LA IP CENTER 센터장지식재산 컨설팅 판돈 게임 카드 게임 기술 출원 핵심 기술
2026.01.13.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