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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교회 기사 댓글 1200개에 담긴 메시지

전국 최대 영문 뉴스 포털 앱인 ‘뉴스 브레이크(News Break)’에 얼마 전 본지 기사가 게재됐다. 댓글만 무려 1200개 이상이다. 실시간으로 기사를 게재하는 뉴스 브레이크 특성상 이토록 많은 댓글이 달리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본지 영문 기사의 제목은 ‘Hundreds of thousands leaving American churches amid declining Christianity(수십만 명이 교회를 떠나면서 기독교가 쇠퇴한다)’였다.    독자들은 기독교의 현실을 두고 개탄, 지적, 조롱 등 여러 감정을 댓글을 통해 표출했다. 본지는 후속 기사를 통해 10년 전 보도했던 존 맥아더 목사와의 단독 인터뷰 내용도 다시 끄집어냈다. 〈본지 5월7일자 A-16면〉   미디어에 비친 오늘날 교계는 그때와 별반 달라진 게 없다. 독자들의 반응만 봐도 그렇다. 신뢰를 잃은 교회가 뿌린 대로 거두고 있는 셈이다.   오늘날 사회가 인식하는 교회의 모습은 크게 두 가지를 잃은 결과다.    먼저 교회 내에서 명확한 기준이 사라졌다. 21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기독교계 인물로 꼽히는 존 맥아더 목사는 “교회가 성경을 잃었다”고 꼬집은 바 있다. 아이러니한 표현이지만 교회에 정작 성경적 기준 또는 예수의 가치가 없다는 의미다.   교회는 외부 영역을 ‘세상(사회)’으로 지칭한다. 구별의 의미가 담긴 표현인데 정작 교회는 세속화됐다. 교계에서는 젊은 세대가 교회를 떠나는 현상을 의미하는 용어인 ‘조용한 탈출(silent exodus)’이 화두가 된 지 오래다.     포스트모던 사회는 매력적이고 고차원의 지적, 유희적 산물을 끊임없이 생산 중이다. 그러자 흐름을 좇으려는 교회의 몸부림은 격렬해졌다. 예배 방식, 프로그램, 이벤트, 시스템, 방법론마다 독특한 명칭이 따라붙었다.     그중 명성을 얻거나 효과를 본 전략은 각 교회 사정과 환경에 따라 형태만 바뀐 채 너도나도 복사해 소비하기 바빴다. 그 가운데 교회가 늘 주창하고 고수해야 할 ‘진리’는 상대적으로 불분명, 아니 희미해졌다.   재미를 원한다면 굳이 교회까지 갈 이유가 있나. 삶의 교훈을 얻고자 한다면 목회자의 설교가 아니어도 된다. 그런 부분에서는 오히려 기독교 외의 영역, 즉 ‘세상’이 훨씬 더 매력적이다.   또 하나는 상식의 결여다. 오늘날 교회의 부정적 이미지는 이 지점에서부터 심화했다. 그동안 교회는 윤리와 도덕을 필요 이상으로 영적인 개념과 연결해 왔다.     한국과 미국의 교계를 흔들었던 표절, 재정 비리, 성추행, 게릴라식 청빙, 세습 등은 신앙적 잣대로 바라볼 일도 아니다. 이러한 부조리는 상식적으로도 충분히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일이다.   그동안 기독교 내에서는 비윤리적인 문제가 불거지면 존재적으로 ‘죄인’이 모인 곳이 ‘교회’라고 변명했다. 행위의 동기를 신의 뜻으로 합리화하거나, 비판은 목회자 또는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행위로 치부했다.   크고 작은 인간의 비윤리성을 두고 기독교적 관점에서 ‘성화(sanctification)’의 과정으로 해석할 순 있겠지만, 이는 자칫 면죄를 위해 신분(죄인)만 내세우고 ‘죄’ 자체를 망각하는 오류를 낳는다. 이러한 대처는 결국 교회의 자정 능력 상실과 사회적 불신의 증폭으로 이어졌다.     본래 교회는 진리의 실체를 고찰하고 영원(구원)의 개념을 다루는 곳이다. 사회를 대상으로 우월을 증명하는 종교도 아니다. 특유의 가치를 드러낼 때 되레 영향력을 발휘한다. 연약할수록 강해지고, 새것보다는 바랜 것이 빛을 내며 죽어야 사는 역설의 가치를 내포한 게 교회다.   기독교는 특이하다. 행위 자체로 신에게 다가가지 않는다. 신이 은혜로 인간을 찾아온다. 그 여정 위에서 세상과 공존하며 동시에 구별돼야 하는 게 교회다.   오늘날 사회는 교회에 거창한 걸 바라지 않는다. 큰 건물, 탁월한 프로그램, 가려운 귀를 긁어주는 설교 등은 더더욱 아니다.     비교인들이 기독교를 접할 때 묻는 건 단 하나다.     “도대체 우리와 무엇이 다른가?”   1200여개의 댓글도 마찬가지였다. 기독교는 세상의 조소가 불편한가. 저 물음에 대한 답변이 너무나 중요한 시대다. 장열 / 사회부 부장중앙 칼럼 교회 존 맥아더 뉴스브레이크 장열 미주중앙일보 LA 로스앤젤레스 한인교회 청빙 세습 표절 기독교 개신교

2024.05.16.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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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저작권과 표절

표절의 의혹이 농후한 어떤 박사 논문에 대해 국민대학교의 공식적인 발표로 뜨거운 댓글이 쏟아지던 날, 마침 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는 ‘저작권’에 관한 강의를 듣게 되었다. 글만 쓸 줄 알지 저작권이 어떤 것인지 출판사와의 계약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지식에 목말라했던 나에게 16시간이라는 한국과의 시차는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매절이니, 배타적발행권이니 하는 용어가 마치 영어를 대하듯 낯설고 당혹스러웠다. 저작권자와 복제권자라고 불리는 법이 명명하는 창작의 세계는 창작의욕을 꺾을 만큼 협소했다.   과거에는 출판계약을 할 때 계약서라는 것이 없었다. 그냥 아는 작가로부터 출판사 사장을 소개받았고 출판을 하겠다는 의견만으로 책이 세상이 나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설픈 관행인데 다들 그러려니 받아들였다. 출판은 얼렁뚱땅 이어졌고 저작자는 위탁으로 이뤄지는 판매 부수를 확인할 방법도 없으니 인세를 받을 수도 없었다. 그나마 지금은 표준계약서라는 게 생긴 게 다행이지만 인세 지급에 대한 관행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출판계약으로 최악의 충격을 안겨준 건 ‘구름빵’ 사건이다. 공개된 수익만 4400억 원에 달한다는데 작가에게 돌아간 건 고작 1850만원뿐이라니. 매절계약을 했기 때문이란다. 매절계약은 미래에 얻어질 수익과 관계없이 일시불로 출판사가 대금을 먼저 작가에게 지불하는 것을 말한다. 뒤늦게 작가는 저작재산권이 모두 양도되었음을 발견했고 현행법은 그녀를 보호하지 못했다.   600만 명의 관객을 불러들인 영화 ‘암살’이 “13년 전 출간된 소설 ‘코리안 메모리즈’의 줄거리와 등장인물 등 상당 부분을 표절했다. 법원에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을 내고 제작사, 감독, 각본 집필자 등을 형사고발하는 한편 100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도 낼 것”이라고 인터뷰했던 소설가 최종림의 재판 결과를 말해주는 강의자의 설명에 ‘창작을 하지 말아야 하나’ 하는 회의감도 들었다. 강의자가 예시로 보여주는 시 2편도 언뜻 보기에 비슷한 단어, 표현이 표절 같아 보였다. 그런데도 표절이 아니라고 판명이 되었단다. 그만큼 표절을 증명하기가 까다롭다는 설명이다. 시와 달리 소설은 구성과 소재를 다 보여주는 셈이라서 얼마든지 재창조가 가능하다.     오래 전에 나는 단편소설 ‘동물원에 가다 보면’을 썼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자 주인공이 자신의 젊은 육체를 남기고 싶어 사진관엘 들어갔다가 사진사와 관계를 갖게 되는 내용이다. 그 소설이 실린 단편집을 나는 아는 지인에게 전했다. 그녀는 영화 시나리오 작가였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 영화가 나왔다. 사진관에 들어가서 사진을 찍은 후 젊은 여자로 둔갑해버려 자신을 몰라보는 가족들과의 해프닝을 그린 영화였다. 영화는 흥행했고 그녀는 그 영화 덕에 꽤 많은 돈을 받은 걸로 안다. 그녀가 내 단편소설을 보지 않았다면 그 성공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겠지만 ‘사진관’이라는 모티브가 같으니 그녀를 대하는 내 속마음은 편치 않았다.   표절에 대한 국민대학교의 태도도 어이가 없지만 자신의 글을 도용당해도 항변할 수 없는 구조적 불공정에 강의가 끝나고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권소희 / 소설가열린 광장 저작권 표절 출판사 사장 영화 시나리오 소설가 최종림

2022.08.10. 20:23

[열린 광장] 저작권과 표절

표절의 의혹이 농후한 어떤 박사 논문에 대해 국민대학교의 공식적인 발표로 뜨거운 댓글이 쏟아지던 날, 마침 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는 ‘저작권’에 관한 강의를 듣게 되었다. 글만 쓸 줄 알지 저작권이 어떤 것인지 출판사와의 계약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지식에 목말라했던 나에게 16시간이라는 한국과의 시차는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매절이니, 배타적발행권이니 하는 용어가 마치 영어를 대하듯 낯설고 당혹스러웠다. 저작권자와 복제권자라고 불리는 법이 명명하는 창작의 세계는 창작의욕을 꺾을 만큼 협소했다.   과거에는 출판계약을 할 때 계약서라는 것이 없었다. 그냥 아는 작가로부터 출판사 사장을 소개받았고 출판을 하겠다는 의견만으로 책이 세상이 나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설픈 관행인데 다들 그러려니 받아들였다. 출판은 얼렁뚱땅 이어졌고 저작자는 위탁으로 이뤄지는 판매 부수를 확인할 방법도 없으니 인세를 받을 수도 없었다. 그나마 지금은 표준계약서라는 게 생긴 게 다행이지만 인세 지급에 대한 관행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출판계약으로 최악의 충격을 안겨준 건 ‘구름빵’ 사건이다. 공개된 수익만 4400억 원에 달한다는데 작가에게 돌아간 건 고작 1850만원뿐이라니. 매절계약을 했기 때문이란다. 매절계약은 미래에 얻어질 수익과 관계없이 일시불로 출판사가 대금을 먼저 작가에게 지불하는 것을 말한다. 뒤늦게 작가는 저작재산권이 모두 양도되었음을 발견했고 현행법은 그녀를 보호하지 못했다.   600만 명의 관객을 불러들인 영화 ‘암살’이 “13년 전 출간된 소설 ‘코리안 메모리즈’의 줄거리와 등장인물 등 상당 부분을 표절했다. 법원에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을 내고 제작사, 감독, 각본 집필자 등을 형사고발하는 한편 100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도 낼 것”이라고 인터뷰했던 소설가 최종림의 재판 결과를 말해주는 강의자의 설명에 ‘창작을 하지 말아야 하나’ 하는 회의감도 들었다. 강의자가 예시로 보여주는 시 2편도 언뜻 보기에 비슷한 단어, 표현이 표절 같아 보였다. 그런데도 표절이 아니라고 판명이 되었단다. 그만큼 표절을 증명하기가 까다롭다는 설명이다. 시와 달리 소설은 구성과 소재를 다 보여주는 셈이라서 얼마든지 재창조가 가능하다.     오래 전에 나는 단편소설 ‘동물원에 가다 보면’을 썼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자 주인공이 자신의 젊은 육체를 남기고 싶어 사진관엘 들어갔다가 사진사와 관계를 갖게 되는 내용이다. 그 소설이 실린 단편집을 나는 아는 지인에게 전했다. 그녀는 영화 시나리오 작가였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 영화가 나왔다. 사진관에 들어가서 사진을 찍은 후 젊은 여자로 둔갑해버려 자신을 몰라보는 가족들과의 해프닝을 그린 영화였다. 영화는 흥행했고 그녀는 그 영화 덕에 꽤 많은 돈을 받은 걸로 안다. 그녀가 내 단편소설을 보지 않았다면 그 성공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겠지만 ‘사진관’이라는 모티브가 같으니 그녀를 대하는 내 속마음은 편치 않았다.   표절에 대한 국민대학교의 태도도 어이가 없지만 자신의 글을 도용당해도 항변할 수 없는 구조적 불공정에 강의가 끝나고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권소희 / 소설가열린 광장 저작권 표절 출판사 사장 영화 시나리오 소설가 최종림

2022.08.07.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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