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의 푸른 소나무”를 “한겨울의 푸르른 소나무”라고 해도 문제가 없을까? 이러한 표현도 가능하다. ‘푸르다’와 말맛이 다른 ‘푸르르다’를 별도의 표준어로 인정해 사전에 올렸기 때문이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등의 표현이 이제 어법에 어긋나지 않는다. ‘푸르르다’는 맑은 가을 하늘이나 깊은 바다, 풀의 빛깔과 같이 밝고 선명하다는 뜻의 형용사인 ‘푸르다’를 강조하여 이르는 말로 쓸 수 있게 됐다. 여기서 드는 의문점 하나. ‘푸르르다’도 ‘푸르다’와 같은 방식으로 끝바꿈할까? ‘푸르다’는 러불규칙용언이다. 어미 ‘-어’ ‘-어서’의 ‘-어’가 ‘-러’로 바뀌는 러불규칙활용을 한다. ‘먹다’는 ‘먹어’ ‘먹어서’로 바뀌지만 ‘푸르다’는 ‘푸르어’ ‘푸르어서’가 아닌 ‘푸르러’ ‘푸르러서’로 바뀐다. 과거형도 마찬가지다. ‘푸르었다’가 아닌 ‘푸르렀다’로 활용된다. ‘푸르르다’는 러불규칙용언이 아닌 으불규칙용언으로 분류했다. ‘푸르르다’를 ‘푸르르러’ ‘푸르르렀다’로 러불규칙활용을 하면 안 된다. ‘푸르러(푸르르+어)' '푸르렀다(푸르르+었+다)'로 바뀐다. 어미 '-어' '-었다'가 붙은 '푸르러' '푸르렀다'의 경우 결과적으로 '푸르다'와 활용꼴이 같지만 활용법은 다르다. 자음으로 시작되는 어미가 올 때에는 ’푸르른‘ ’푸르르고‘ ’푸르르게‘ ’푸르르니‘ ’푸르르면‘ ’푸르르지‘ 등처럼 활용된다.우리말 바루기 표준어
2023.01.27. 20:49
뮤지컬에 출연하느라 한동안 한국에 머물렀던 영어권 배우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어로 ‘파이팅’을 꼽았다. 한국 관객들이 SNS 댓글로 응원을 보내주었는데 ‘파이팅’이란 표현이 아주 많았다고 했다. 처음엔 싸우자는 것인가 했는데 무슨 의미인지 알고 나서는 제일 좋아하는 말이 됐다고 한다.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의 입에서도 ‘파이팅’이란 말이 종종 나온다. 한국인들이 많이 사용하다 보니 이를 익혀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 등을 응원하는 용어로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의 ‘파이팅’이란 용어가 과거 영국에서 쓰던 ‘파이팅 스피릿(fighting spirit)’에서 왔다는 견해가 있다. 일본에서 응원할 때 사용하는 ‘화이토(ファイト, fight의 일본식 발음)’가 한국에서 ‘파이팅’ 또는 ‘화이팅’으로 변형돼 쓰이는 것이라 보는 사람도 있다. 2004년 국립국어원은 ‘파이팅’이 영어권에선 이런 뜻으로 쓰이지 않는 말이므로 ‘아자’ ‘힘내자’ 등의 우리말로 바꿔 사용하자고 결정한 적이 있다. 하지만 외국인들마저 ‘파이팅’을 한국어처럼 인식하는 상황이 되자 사전도 바뀌었다. 최근 국립국어원은 표준국어대사전에 ‘파이팅(fighting)’을 표제어로 올렸다. ‘감탄사로, 선수에게 잘 싸우라는 뜻으로 외치는 소리’ 등의 설명을 달았다. 사전에 이렇게 올렸다는 것은 표준어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원래는 외국어이지만 우리말처럼 쓰이는 것이라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우리말 바루기 표준어 fighting spirit 한동안 한국 한국 관객들
2022.11.07. 18:39
“선제골을 터트려라, 초반에 실점하면 경기 전체를 망가트릴 수 있음을 명심하라, 상대 수비의 균형을 깨트려라.” 선수들에게 이런저런 주문을 쏟아 내는 감독의 말은 어법상 전혀 문제될 게 없는데도 어색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터트려라, 망가트릴, 깨트려라’를 ‘터뜨려라, 망가뜨릴, 깨뜨려라’로 써야 맞지 않느냐는 것이다. 미묘한 어감 차이만 날 뿐 모두 바른 표현인데도 ‘-뜨리다’는 맞고 ‘-트리다’는 잘못된 표현이라고 흔히 생각한다. ‘터뜨리다, 망가뜨리다, 깨뜨리다, 떨어뜨리다’로 사용해도 되고 ‘터트리다, 망가트리다, 깨트리다, 떨어트리다’로 써도 된다. ‘-뜨리다’와 ‘-트리다’는 강조의 뜻을 더하는 접사로, 복수 표준어다. 예전엔 ‘-뜨리다’ 형태만을 인정했으나 현 맞춤법에선 ‘-뜨리다’와 ‘-트리다’를 모두 표준어로 삼고 있다. 넘어뜨리다/넘어트리다, 무너뜨리다/무너트리다, 부러뜨리다/부러트리다, 빠뜨리다/빠트리다 등도 어느 것이 옳은 표현인지 헷갈려 할 필요 없다. 둘 다 사용할 수 있다.우리말 바루기 표준어 복수 복수 표준어 모두 표준어 접사로 복수
2022.06.30. 18:40
글을 읽다 보면 ‘가엾은’ ‘가여운’이 섞여 쓰이고 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렇다 보니 가끔씩 어느 쪽이 맞는 것인지 물어오는 이들이 있다. 정답부터 미리 말하자면 ‘가엾은’ ‘가여운’ 둘 다 맞는 표현이다. ‘가엾다’와 ‘가엽다’가 복수 표준어이기 때문이다. ‘가엾다’는 ‘가엾은, 가엾고, 가엾으니, 가엾지’ 등으로 활용된다. ‘가엽다’는 비읍 불규칙 활용을 하는 단어다. 이런 유의 단어들은 뒤에 오는 모음에 따라 ㅂ이 ‘오’나 ‘우’로 바뀐다. 그래서 ‘가엽다’의 경우 ‘가여운, 가엽고, 가여우니, 가엽지’ 등으로 활용하게 된다. ‘섧다’와 ‘서럽다’ 역시 복수 표준어다. ‘섧다’는 ‘설워, 설우니, 섧고, 섧지’ 등으로 변화한다. 종종 “너무 섧어서 엉엉 울었다”처럼 ‘섧어서’ ‘섧으니’로 쓰는 분들이 있는데 ‘섧다’ 역시 비읍 불규칙 활용을 하므로 ‘설워서’ ‘설우니’로 써야 한다는 걸 기억하자. ‘서럽다’는 ‘서러워, 서러우니, 서럽고, 서럽지’ 등으로 활용한다. ‘여쭈다’와 ‘여쭙다’도 둘 다 표준어이다. 우리말 바루기 표준어 복수 복수 표준어 비읍 불규칙 유의 단어들
2022.01.30. 1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