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K는 이제 품질보증서다
‘K-pop’이라는 용어는 1999년 10월 9일자 미국 빌보드(The Billboard) 기사에서 처음 등장했다. 당시 한국 특파원이었던 조현진 기자가 “S. Korea To Allow Some Japanese Live Acts”라는 기사 말미에서 한국 대중음악을 설명하며 사용한 표현이었다. 그로부터 25년, ‘K’라는 글자를 앞세운 수많은 제품과 문화가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K-뷰티, K-푸드, K-드라마, K-무비 등 한국인이 만든 것들이 세계에서 프리미엄 브랜드로 인정받고 있다. 드라마 한 편이 해외에서 열풍을 일으키고, 한국 음식점 앞에는 긴 줄이 서며, 한국 화장품은 백화점에서 고급 매대를 차지한다. 이제 K-문화는 한때의 유행이 아니라 세계 문화의 한 축이다. 최근에는 애니메이션 ‘K-pop Demand Hunter’가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다. 마치 월드컵 경기에서 1위를 한 것처럼 짜릿했다. 나는 미국의 한 주류 기업에서 10년째 근무하고 있다. 처음에는 높은 문턱과 백인들만의 문화 속에서 이방인처럼 지냈다. 그래서 소수계인 남미 출신 동료들과 어울리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코로나 이후 회사가 긴축정책을 실시하며 직원의 40%를 감원했고, 우리 부서에서는 나만 살아남았다. 이후 의류시장이 회복되며 새 직원을 채용했는데 그중에는 한인도 제법 들어왔다. 예전에는 회사에서 아시아인, 특히 한인은 조용하고 무난한 직원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K-pop과 K-드라마의 세계적 인기, 글로벌 스타들의 활약이 ‘한국’이라는 이름 자체를 긍정적인 브랜드로 만들었다. 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호감을 얻는 경우가 늘었고, 신속하고 성실한 업무에서 더 높이 평가받게 되었다. 대부분의 신규 한인 직원들은 영어권 2세였다. 부모에게서 ‘빨리빨리’ 성향까지 물려받아 업무 속도와 추진력이 대단하다. 나는 1세대 이민자라 영어는 부족하지만, 그들에게 없는 끈기와 참을성, 그리고 현장에서 쌓은 경험으로 또 다른 가치를 보여주려 한다. K-문화가 세계의 주목을 받는 지금,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은 더 이상 약점이 아니다. 오히려 강력한 경쟁력이자 나를 설명하는 브랜드가 됐다. 과거에는 스스로를 알리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한국’이라는 두 글자가 나를 대신 설명해 준다. 이 변화가 나의 회사뿐 아니라 미국의 다른 기업들로도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결국, ‘K’는 더 이상 한국을 나타내는 접두사가 아니라, 세계가 인정하는 품질보증서다. 이선경 / 테크 디자이너·수필가이 아침에 품질보증서 세계 문화 한국 대중음악 한국 화장품
2025.08.25. 1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