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가 창설한 정신분석학회의 회원이었던 아들러는 성욕은 에너지의 일부일 뿐, 절대적인 것이 될 수 없다고 했다. 대신, 인간은 열등감으로 인한 단점을 보상받기 위하여 더 열심히 큰 목표를 세우고 노력함으로써 위대한 인간 또는 작품이 나온다고 주장했다. 가령, 나폴레옹은 신장이 작고, 우월한 귀족 출신이 아니었기에 더 열심히 노력하여 영웅이 될 수 있었다고 했다. 또한, 열등감이 강한 사람들은 모임이나 대인 관계를 회피함으로써 자신의 단점을 숨기려고 한다고 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타인들보다 더 높은 목표를 세우고 노력함으로써 과거나 현재의 열등감을 이겨낼 수 있다고 했다. 또 한 명의 정신분석학회의 회원이었던 칼 융은 아들러와 마찬가지로 성적 욕구 보편성의 논리를 거부했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에서 등장하는 무의식의 세계는 동경했다. 또한 성적 욕구에 의한 에너지도 일부는 긍정했다. 프로이트는 성적 불만족은 신경증의 증세인 히스테리를 불러온다고 했다. 히스테리는 이미 기원전 20세기부터 이집트에서 파피루스에 적혀 3900년을 내려온 사실이다. 히스테리라는 뜻은 '여성의 자궁'이란 의미였다. 성적으로 만족을 못 하면 자궁이 쪼그라들어서 몸 안의 이쪽저쪽을 옮겨 다닌다고 했다. 치료법으로는 고약한 냄새가 나는 증기를 그 여성의 입에 불어넣어서 자궁이 밑으로 내려가게 하거나 독한 술을 먹였다. 이런 치료법은 그리스 히포크라테스조차도 그렇게 믿었고, 심지어 플라톤도 '티마이오스'라는 그의 저서에서 이것을 인정했다. 당시의 여성들은 히스테리가 있으면 마녀로 오인되어서 사형도 당했다. 이런 오진은 중세까지도 이어졌다. 불과 500년 전 해부학이 발달하면서 자궁은 이동할 수 없다는 것을 의학적으로 증명하면서부터 히스테리가 신경증의 한 증세로 인정되었고,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걸린다고 밝혀졌다. 그러나 지금도 노처녀 히스테리라고 해서 결혼이나 임신이 특효약으로 여겨지고 있다. 인도 고전인 '우파니샤드'에서 인간은 스스로 세상이라는 고통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불교와도 사상이 겹친다. 사르트르는 인간은 세상에 자기 의지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던져졌기 때문에, 애초에 주어진 사명은 없다고 했다. 그러므로 인간의 본질이란 없고, 자기 스스로 본질을 만들어가야 하는 고된 역경을 겪는다고 했다. 선택도 자기가 해야 하고 그 책임도 자기가 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구심이 생긴다. 사회는 이미 짜인 언어로 구성된 사회이고 아이 때부터 그 구조 속에서 살아야 한다. 마치 붕어빵 같은 사회 속에서 자신의 본질을 찾아야 한다는 얘긴데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 자기라는 자아는 이미 사회 구조 속에서 만들어져 있다. 즉, 무의식 속에서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그런 무의식을 표출하지 못하도록 의식이 가로막고 있다고 프로이트는 주장했다. 자크 라캉도 무의식조차도 타자들이 만들어낸 담론이라고 주장한다. 그럼 구조주의 속에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 끝없이 솟아나는 욕심과 분노 그리고 어리석음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내 안에 내가 아닌 악마라도 살고 있단 말인가? 니체는 선과 악은 인간이 만든 거짓말이라고 했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인간들이 만든 조작물이라고 했다. 박검진 단국대 전자공학과 졸업. 한국기술교육대에서 기술경영학(MOT)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LG반도체 특허협상팀 팀장, 하이닉스반도체 특허분석팀 차장, 호서대 특허관리어드바이저, 한국기술교육대 산학협력단 교수를 거쳐 현재 콜라보기술경영연구소 대표.박검진의 종교·철학 여행 프로이트 보편성 성욕 보편성 노처녀 히스테리 사회 구조
2025.11.24. 17:49
프로이트는 이성을 신봉하면서도 이성으로 인간 무의식의 본질을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가령, 종교에 귀의하는 사람들은 무슨 목적으로 종교에 빠지는가? 현실이 싫어서일까? 삶에 대한 자신이 없어서일까? 프로이트는 후자에 더 무게 중심을 둔다. 그 근거로 유아의 무력감과 그로 인한 아버지에 대한 갈망에서 종교적 욕구가 파생되었다는 것이다. 즉, 운명이라는 우월한 힘에 눌린 불안 때문에 영구히 유지됐다는 것이다. 아동기를 거치면서 아버지의 보호보다 더 강력한 욕구를 찾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혹자는 종교를 통하여 대양적(大洋的) 느낌(우주와 하나로 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하는데 프로이트는 자아가 외부 세계로부터 발생하는 위협으로 느껴지는 위험을 부인하기 위하여 또는 종교로부터 위안을 얻으려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프로이트는 종교를 집단적 망상이라고 했다. 그 이유는 잘못된 관점을 가진 종교인들은 현실을 모든 고통이 비롯되는 원천이자, 더불어 살 수 없는 곳으로 파악하고, 행복을 원한다면, 그러한 세계와 연결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일종의 은둔자가 되어서 세계로부터 등을 돌리고 어떠한 관계 형성도 거부한다. 이런 사람들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광인처럼 떠돌지만, 자신의 망상을 실현하게 하는 것을 도와줄 사람을 찾지 못한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현실을 그릇되게 재형성함으로써 행복을 추구하고, 고통으로부터 보호받으려고 시도한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을 위하여 사이비 종교가 생기고, 맹목적으로 종교라는 이름으로 그들끼리 뭉친다고 한다. 프로이트는 이것을 집단적 망상이라고 한 것이다. 그에 따르면 의지가 강한 사람들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원래의 잘못된 세계를 제거하고, 자신의 욕망에 부합하는 다른 것들로 대체한다고 한다. 즉, 종교라는 나약한 집단 속으로 편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니체도 비슷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교회의 타락을 비판한 사람은 프로이트, 마르크스, 포이어바흐 등이 있다. 프로이트는 교회를 집단 망상 그룹이라고 비판했고, 마르크스는 종교 자체를 인민의 아편이라고 깎아내렸다. 포이어바흐는 종교는 투사된 욕망이라고 했다. 키에르케고르는 가정부였던 친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일곱 자녀 중에서 다섯 명이 죽고, 친어머니와 아버지마저 일찍 죽자, 절망에 빠진 생활을 했다. 그 와중에 종교를 찾았으나 교회와 더러운 돈이 유착되는 것을 보고 교회를 비판했다. 그는 불안을 가장 깊이 체험한 철학자라고 하이데거는 훗날에 회상했다. 그는 보편적인 진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진리가 뭔지를 알고자 했다. 즉, 실존주의 철학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뒤를 이어서 마르틴 하이데거, 장 폴 사르트르, 모리스 메를로퐁티 등이 계보를 잇고 있다. 마틴 루터가 위대한 것은 이성이 아닌 순수한 믿음을 통한 하느님과의 만남을 주장했고, 교리나 전승이 아닌 오직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 안에서 구원이 길이 있다고 역설한 점이다. 아우구스티누스나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리스도교와 가톨릭교회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한 종교 사상을 지니고 있었다면, 루터는 개인의 순수한 믿음을 통한 하느님과의 소통을 주장했기에 더 순수성이 느껴진다. 아우구스티누스나 토마스 아퀴나스는 둘 다 세례를 받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고 주장했다. 기독교인들이야 당연한 의무로 여기겠지만, 그렇지 않은 필자 같은 사람은 선뜻 이해가 힘들다. 기독교계의 두 성인에게 왜 어떤 사람은 구원받고, 나머지 사람들은 지옥에 떨어지는지 질문하면, 신이 이유 없이 선택한 결과이고, 천벌은 신의 정의를 보여주는 것이며, 구원은 신의 자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면서, 천벌과 구원은 둘 다 신의 선함을 드러낸다고 한다. 요즘 기독교 신자들은 루터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는지 궁금하다. 박검진 단국대 전자공학과 졸업. 한국기술교육대에서 기술경영학(MOT)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LG반도체 특허협상팀 팀장, 하이닉스반도체 특허분석팀 차장, 호서대 특허관리어드바이저, 한국기술교육대 산학협력단 교수를 거쳐 현재 콜라보기술경영연구소 대표.박검진의 종교·철학 여행 프로이트 무의식 프로이트 마르크스 사이비 종교가 종교적 욕구
2025.06.02. 17: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