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믿음] 배워야 꿈꿀 수 있다
아이들이 새 학기를 앞두고 교복을 준비해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이티에서는 보통 9월 중순쯤에 개학하지만, 올해는 개학이 10월로 미뤄졌다. 요즘은 갱단 때문에 수업을 못 하는 날이 잦아 방학을 늦게 시작해서 개학도 늦어진 것이다. 개학에 맞춰 등록금을 마련하고, 학용품과 교복을 준비해야만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다. 학교에 가려면 검은색 구두와 학교별로 정해진 색상의 교복을 꼭 갖춰야 한다. 여학생들은 머리에 교복 색깔과 맞춘 리본과 구슬 장식까지 해야 한다. 등록금도 내고 교과서까지 샀더라도 교복이 없으면 학교 문턱조차 넘어설 수 없다. 양말, 신발, 허리띠, 교복에 맞춘 머리 장식까지 갖춰야 하는데 가방까지 준비하려면 보통 근로자가 한 달 동안 버는 월급으로도 감당하기 어렵다. 아이티에서는 지금, 공립과 사립을 가리지 않고 전국 학교의 절반 가까이 문을 닫았다. 갱단이 차지한 지역에서는 학교뿐 아니라 병원과 교회까지 큰 피해를 보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가 돕고 있는 고아원 근처의 학교들은 아직 문을 열고 있다는 점이다. 살렘, 빠비앙, 러브 고아원 같은 곳에서는 자체적으로 학교를 운영하기도 한다. 총성이 들리지 않고 길이 뚫려 있으면, 선생님들이 출근해 아이들을 가르친다. 물론 언제든 갱들의 폭력과 방화, 약탈 때문에 학교 문이 닫힐 수도 있다. 그래도 아이들은 학교가 문을 여는 한 학교에 간다. 총소리가 잦은 날이면 골목을 돌아서라도 가고, 갱들이 어슬렁거리는 거리를 피해 뒷길로 들어서기도 한다. 아이들이 그렇게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학교에 가는 이유는 배우고 싶은 마음이 커서이지만, 온종일 뜨거운 태양 아래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학교에서 지내는 게 낫다는 이유도 있다. 위험 가운데 학교를 여는 것은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사명감도 있지만, 선생님들 역시 월급이 있어야 살아가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이들을 공부시키면서, 우리는 시간이 흐르면 조금씩 나아질 거라고 믿었다. 처음 몇 년은 아무 변화도 없는 것 같아 답답했다. 사진을 찍어도 늘 똑같은 모습이라, 언제 찍은 건지 구분조차 어려울 때도 있었다. 일 년에 적어도 네 번, 많게는 여덟 번씩 아이들을 찾아갔지만, 눈에 띄는 변화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이 훌쩍 자랐다. 이 아이가 정말 그때 그 아이가 맞는지 다시 확인해야 할 때도 있었다. 해마다 조금씩 달라지던 아이들은 어느새 성숙한 모습으로 인사하기도 하더니 대학에 진학하고 사회인이 된 아이도 있다. 아직도 안정된 직장을 찾지 못한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우리가 함께 걸어온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하게 된다. 아이티는 여전히 몹시 어렵다. 정부는 나라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고, 무너진 치안은 국제 용병 세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국민 절반 이상이 식량부족과 영양실조로 고통받고 있고, 집을 잃고 거리를 떠도는 사람도 이미 130만 명을 넘어선 지 오래다. 고아원 아이들조차 갱들의 위협 때문에 바깥출입조차 못 해 병원에 가지 못하는 일이 잦다. 그런데도 우리는 교복값을 걱정하고, 등록금을 고민한다. ‘배워야 꿈꿀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희망은 교육에서 시작되고, 미래는 공부하는 아이들의 가슴 속에서 자라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내셨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들은 반드시 배워야 한다. 조 헨리 / 선교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삶과 믿음 학교 문턱 전국 학교 학용품과 교복
2025.08.21. 17: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