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10월6일이 추석이다. 추석은 글자 그대로 가을(秋) 저녁(夕)이다. 밝고 둥근 보름달이 뜨는 가을 저녁…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풍요와 감사의 계절, 온 가족이 고향집에 모여 둘러앉아 맛난 음식을 즐기는 행복한 계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가윗날만 같아라.” 추석의 최고 풍경은 뭐니 뭐니 해도 가을 밤하늘의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다. 한가위 보름달은 고향에도 뜨고, 타향땅 이민살이 골목길도 밝게 비춰준다. 타향살이 나그네 젖은 눈에는 보름달이 더 크고 아득해 보인다. 보름달은 바로 고향생각으로 이어지고,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으로 연결된다. 태양이 아버지라면, 달님은 어머니다. 그런 마음을 담은 시나 노래가 아프게 가슴을 친다. “현해탄(태평양) 파도 위에 비친 저 달아, 찢어진 문틈으로 어머님 얼굴에도 비추어 다오” -남일해 노래 〈이국땅〉의 한 구절 예로부터 달님은 신화와 문학예술의 무한한 영감과 상상력의 원천이었다. 그래서 달에 관한 문학작품은 동서고금을 통해 무수하게 많다. 그만큼 달님은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는 뜻이다. 달님 관련 문학의 예를 들자면, 한국의 고전문학를 비롯해 시조나 동시, 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 쥘 베른의 〈지구에서 달까지〉,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 나쓰메 소세키의 〈일화〉 등등 세계 문학까지 실로 다양하다. 우리 고전에도 달님을 주제로 한 훌륭한 문학작품이 많다. 바로 떠오르는 것이 〈정읍사〉 〈월인천강지곡〉 같은 작품이다. 〈정읍사(井邑詞)〉는 삼국 시대의 고대가요로, 현존하는 유일한 백제 문학이며, 한글로 표기된 노래 중 가장 오래된 노래다. 백제 멸망 이후에도 전북 일대를 중심으로 계속 불려서, 조선 성종 대에 〈악학궤범〉에 기록되었으며, 우리 음악 최고의 경지로 일컬어지는 〈수제천〉의 바탕이 된 가요이기도 하다. “달님이시여, 높이금 돋으사/ 아아, 멀리금 비치시라/ 어기야 어강도리…”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남편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노래다. 정읍에 한 장사하는 사람이 행상을 떠난 뒤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자 그의 아내가 산 위 바위에 올라가 남편이 무사하기를 기원하며 달(빛)에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남편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고, 기다리는 아내는 망부석이 되었다고 전한다.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은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이 아내 소헌왕후의 공덕을 빌기 위하여 직접 지으신 찬불가이다. 훈민정음 창제 이후 가장 빠른 시기에 짓고 활자로 간행한 매우 중요한 문헌이다. ‘월인천강’이라는 말은 마치 달님이 천(千)개의 강에 비친 것과 같이 부처가 백억 세계에 모습을 드러내 교화를 베푼다는 뜻이다. 오늘날 우리는 상업적인 달 여행을 눈앞에 둔 과학시대를 살고 있다. 미국의 유인우주선 아폴로 11호가 달 착륙에 성공하면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달에 인간의 발자국을 찍은 것이 1969년 7월이었다. 그 후로도 과학은 눈부시게 발달하여 우주개발 선진국들의 행성 탐사 우주선은 태양계 맨 끝까지 날아간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계수나무 한 그루 토끼 한 마리”를 노래하고, 달님을 향해 소원을 빈다. 우리 가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동심과 꿈, 희망, 그리움의 달님은 지워지지 않는 것이다. 그나저나, 한가위 보름달을 우러르며 간절히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데, 무슨 소원을 빌까? 시인 이해인 수녀는 이렇게 기도한다. “너도 나도/ 집을 향한 그리움으로/ 둥근 달이 되는 한가위/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이/ 달빛처럼 순하고 부드럽기를/ 우리의 삶이/ 욕심의 어둠을 걷어내/ 좀 더 환해지기를/ 모난 마음과 편견을 버리고/ 좀 더 둥글어지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려니” -이해인 〈달빛 기도〉 중에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렇게만 되었으면 정말 좋겠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한가위 보름달 한가위 보름달 달님 관련 유인우주선 아폴로
2025.10.02. 18:49
9월17일이 민족의 명절 추석이란다. 둥밝은 보름달 바라보며 소원을 빌고, 그리운 고향 찾아가 부모님께 문안드리고, 푸짐하고 맛있는 잔치 음식과 송편 배불리 먹고…. 그래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가윗날만 같아라”는 말이 어울리는 명절. 한국에서는 해마다 추석이면 대단한 귀향 전쟁이 벌어지는 모양인데, 뉴스를 보니 올해는 의료분쟁 때문에 그렇게 흥겹지 못할 것 같다. 이번 추석에는 다치지 말고, 아프지 말자는 다짐을 하기 바쁘다는 소식이다. 우리 타향살이 나그네에게는 추석 같은 명절이 반갑기보다 그저 강 건너 불 보기, 남의 일 같기만 하다. 한국에 부모님이 살아계신 이들은 전화로라도 안부를 여쭐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젖은 눈으로 멍하니 보름달 올려다보며 부모님 생각에 잠긴다. 디아스포라의 서글픔이다. 나처럼 삼팔따라지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 이렇다 할 고향도 없는 무향민(無鄕民)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그저, 떠나온 나라의 친구들도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저 달을 보고 있겠구나, 그런 막연한 그리움… 나그네의 젖은 눈. “나는 오나가나 나그네다. 이 길손의 눈은 늘 젖어 있다고 스스로 느낀다. 먼 데 있는 친구들 혹은 나그네들의 손을 잡고 서로 껴안고, 글썽한 눈끼리 눈으로만 얘기하고 싶을 때가 자주 있다. 그리움의 달무리에 정이 번지면, 시와 시인을 또 자극하는 시간의 바다가 출렁거린다.” -고원 시집 ‘나그네 젖은 눈’ 머리글의 한 구절 시인은 ‘달 둘이 떠서...’라고 노래한다. 고향에도 지금 내가 사는 이곳에도 같은 달이 뜬다는 표현, 고국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의 표현이다. 달이 어디 둘 뿐이랴? 하나의 달이 천(千)개의 강을 고루 비춘다. 월인천강(月印千江)이다. 온 세상을 고루 비춘다. 그러니까, 지구 구석구석에 사는 나그네 모두가 같은 달을 바라보며 소원을 비는 것이다. 요새는 떠돌이 나그네, 이방인, 경계인, 유랑민 같은 말 대신에 ‘디아스포라’라는 멋쟁이 서양말이 널리 쓰이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디아스포라 정신’ ‘디아스포라 문학’ 같은 식으로…. 이 말은 본디 제 나라에서 핍박받고 쫓겨난 사람들, 난민을 뜻하는 정치성 강한 용어였다. 그런데 지금은, 떠나온 곳은 있는데 돌아갈 곳이 마땅치 않은 이주민을 뜻하는 말로 폭넓게 쓰이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우리도 디아스포라인 셈인데, 어쩐지 어색하다. 하지만, 깊이 생각해볼 필요는 충분하다. 역사적으로 보면, 문화예술에서는 디아스포라가 창작의 큰 원동력으로 작용해왔다. 유대인 예술가들의 막강한 업적과 영향력이 대표적이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변방의 힘’ 같은 것이다. 디아스포라라는 낱말의 어원을 살펴보면, 고대 그리스어 ‘-너머’를 뜻하는 dia와 ‘씨를 뿌리다’는 뜻의 spero의 합성어라고 한다. 즉, 뿌리 뽑힌 떠돌이 나그네 삶의 고달픔과 슬픔을 뜻하는 이산(離散)과 새로운 세계의 개척이라는 적극적인 뜻의 파종(播種)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갖는 것이다. ‘씨를 뿌린다’는 말이 매우 매력적이다. 새로운 땅에 뿌리내린 우리 이민자들의 존재 의미를 말해준다. 고향 타령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는 말, 간절한 그리움을 창조적 힘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한가위 보름달을 우러르며 어떤 소원을 빌어야 할지가 선명해지는 것 같다. 우리가 이 땅에 뿌린 씨앗인 우리 2세들을 잘 가꾸고 보살펴, 풍성한 추수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사… 그러기 위해서 정신적 정체성을 바로 세우도록 이끌어 주십사….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한가위 보름달 한가위 보름달 떠돌이 나그네 나그네 모두
2024.09.12.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