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현대 자동차 미주법인이 LA도서관 재단(LFLA)에 1만 달러를 기부했다. 5월 아시아·태평양계 문화유산의 달(AAPI Heritage Month)을 맞아 아시안 커뮤니티의 문화 및 언어 관련 프로그램 지원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현대는 지난 1월에도 LA산불 지원금으로 20만 달러를 쾌척하기도 했다. 현대의 선행은 반가운 소식이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움도 남는다. 미국에서 막대한 이익을 거두고 있는 한국 대기업들이 그 성장 발판을 마련해준 한인 사회를 외면하고 있다는 씁쓸한 현실 때문이다. 한국 대기업들의 미국 시장 공략은 눈부시다. 매년 놀라운 성장세로 주류 경제에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대기업의 북미 시장 매출은 전년 대비 20% 급증했으며, 매출을 공시한 319개 종속기업의 매출 총액은 무려 1590억 달러(약 226조 원)를 넘어선다. 가히 천문학적인 규모다. 문제는 이처럼 미국 시장에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한국 대기업들이 과연 그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특히 자신들의 성장 발판이자 든든한 지원군이었던 한인 사회에 대한 실질적이고 의미 있는 기여나 대규모 환원 사례는 여전히 찾아보기 어렵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LA한인회에 따르면 매년 한인회 기금모금 행사에 꾸준히 기부하는 한국 기업은 대한항공, 아시아나, 농심, 코웨이 정도라고 한다. 1센트도 내지 않은 대기업도 있으니 이들은 그나마 칭찬받아야 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기부 내용은 민망할 정도다. 항공 티켓 몇 장, 라면 몇 박스에 기부금도 2000~3000달러 수준이라고 한다. 특히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기부는 인색함의 단적인 예다. LA공항국에 따르면 LA국제공항(LAX)에서만 지난해 100만 명 이상이 두 항공사를 이용했다. 각 항공사 탑승객 수는 LAX 취항 40여 개 장거리 항공사중 9·10위다. ‘톱 10 글로벌 항공사’가 소규모 여행사나 할 법한 비행기표 기부로 체면치레나 해서야 되겠는가. 농심도 기부의 격이 떨어지긴 마찬가지다. 2024년 4분기 연결기준 매출액은 906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8% 늘었다고 한다. 이런 큰 기업이 라면 기부가 웬 말인가. 한국의 대기업들이 일회성 행사 후원이나 소규모 기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기업의 사회 공헌 문화가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최고 경영진의 의지와 솔선수범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최근 자신의 재산 대부분인 1070억 달러를 사회에 환원하고 2045년까지 게이츠 재단을 통해 2000억 달러 이상을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해결해야 할 시급한 문제가 너무 많다.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빨리 사회에 환원하기로 했다”면서 “부유하게 죽지 않겠다”고 사회적 책임의 모범을 보였다. 이에 비하면, 미국에서 수십 년간 성공을 구가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한 한국 대기업 수장들과 그 미주법인들의 사회 환원 규모와 적극성은 초라하기만 하다. 한인들에게 대기업은 조국이고 고향이다. 1972년 4월19일 대한항공의 LA 노선 첫 취항일에 LA공항에는 한인 수천 명이 몰려 태극기를 흔들며 항공기와 승무원들을 환영했다고 한다. 1986년 울산 공장에서 생산된 현대의 첫 미국 수출차량 ‘엑셀’은 주류 사회에서는 ‘일회용 차’라는 오명을 얻었지만 한인들은 기꺼이 차를 구입했다. 우리 기업을 사랑하는 것이 곧 애국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짝사랑’에 가까운 지지와 성원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기업의 성공은 단순히 재무적 성과나 주주 이익 극대화에만 있지 않다. 기업이 뿌리내리고 활동하는 지역사회, 특히 과거부터 현재까지 변함없는 지지와 성원을 보내준 한인 사회에 대한 진정성 있고 ‘통 큰’ 환원은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필수 조건이자 마땅히 다해야 할 윤리적 책무다. 이제라도 대기업들은 한인 교육, 문화, 복지, 소외 계층 지원 등 실질적인 필요가 있는 분야에 대한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지원에 노력해야 한다. 당장 통 큰 환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비행기표나 라면 협찬 수준에서는 벗어나야 하지 않나.사설 비행기표 라면기부 한국 대기업들 한인 사회 한인회 기금모금
2025.05.14. 20:10
삼성리서치아메리카(이하 SRA)의 피소 사례는 미국에 진출한 한국 대기업들의 노동법 인식 부재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특히 법조계에서는 한국 기업들의 미국 시장 진출이 활발한 상황에서 노동법 및 고용법 위반 혐의 등으로 소송에 휘말리는 업체가 많아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강지니 변호사는 “한국식 관습에 익숙한 상급자들이 회식 자리에서 여성 직원을 임원 옆에 앉힌다거나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경우 불복종으로 여겨 한국적 사고로 보복성 인사를 감행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며 “가주에 진출한 한국 기업 관계자들은 다양성과 차별에 관해 법적 인식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먼저, SRA의 경우 미래 기술을 연구 개발하는 삼성의 핵심 기관으로 실리콘밸리에서도 인재들이 모이는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SRA도 이번 소송 외에 이미 노동법 위반 혐의 등으로 수차례 피소된 사실이 드러났다. 본지 확인 결과 ▶2021년 2월 부당해고(소송번호 21CV377651·원고 신디아 트랜) ▶2017년 11월 부당해고(소송 번호 17CV319751·원고 미셸 백) ▶2017년 10월 부당해고(소송 번호 17CV318162·원고 자와하 자인) 등 최소 3번 이상 노동법 소송에 휘말린 기록이 있다. 그동안 가주에서는 삼성뿐 아니라 한국 기업들의 노동법 위반 피소도 계속돼왔다. 한국의 ‘아마존’이라 불리며 미국에도 진출한 한국 전자상거래 기업 ‘쿠팡’도 지난해 민사 소송은 물론 PAGA 단체 소송, 집단 소송 등 모두 노동법 위반과 관련해 잇따라 피소된 바 있다. 〈본지 2022년 7월 15일 자 A-1면〉 관련기사 한국 기업 '쿠팡' 잇단 노동법 소송 유명 대기업 SK가 설립한 북가주 지역 미국 법인(SK팜테코) 역시 지난 2021년 부당해고, 직장 내 괴롭힘, 연령차별 등으로 피소됐었다. 〈본지 2021년 2월 26일 A-1면〉 관련기사 SK지사 'SK팜테코' 300만불 노동법 피소 원고들은 소장에서 SK 측 상사들이 직원의 회사 출입을 감시하고 상사의 전화를 제때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질책하는가 하면, 흑인 직원에게 ‘속어(slang)’ 등을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지난 2월 양측은 이 소송을 비공개 합의를 통해 종료했다. 이원기 변호사는 “결정권자가 한국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보니 대개 한국식 문화에 기준을 많이 둔다”며 “법적인 개념도 한국에서의 노동법, 한국 기업의 정서로 판단한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국 굴지의 임플란트 회사인 디오가 LA지역에 설립한 디오USA 역시 지난 2017년 부당해고 및 차별 소송에 휘말린 적이 있다. 〈본지 2017년 1월 12일 A-1면〉 관련기사 아픈 직원 해고했다 '72만 달러 보상'도 당시 디오USA측은 진료 기록 등을 제출한 직원에게 “아픈 사람과는 함께할 수 없다”며 퇴사 압력을 가한 혐의로 피소됐다. 당시 소장에는 한국 기업의 ‘술 문화’까지 언급됐다. 상사가 몸이 아픈 직원에게 “세일즈맨이 술자리를 피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무리하게 다그친 발언 내용도 소장에 담겼다. 소송이 계속되면 각종 논란으로 인해 글로벌 기업 이미지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 브리아나 김 변호사는 “한국 기업들의 경우 본사의 방침을 무작정 따랐다가 현지 노동법과 상충해 낭패를 보는 경우도 많다”며 “미국 진출로 다인종 직원을 채용하는 상황에서 그들을 ‘한국식’으로 대했다가는 자칫 각종 소송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에 논란이 이어지면 이미지 훼손을 막기 위해 발 빠른 대처 역시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한편, 현대자동차의 경우도 자회사, 협력 업체 등이 성차별, 불법 취업, 성추행 등 각종 소송에 휘말렸다. 특히 지난해 12세 아동을 포함한 50여 명에 달하는 미성년자를 고용한 혐의로 지역 언론 등으로부터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관련기사 삼성 핵심조직<실리콘밸리 삼성리서치아메리카> "까만 직원 나가있어" 피소 장열 기자삼성 미국 한국 대기업들 한국식 관습 한국 전자상거래
2023.09.28. 2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