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한국의 디지털 갈라파고스와 온실 효과
한국에서 지속해서 제기되어 온 두 가지 질문이 있다. 하나는 왜 한국의 스타트업은 글로벌 서비스를 만들어내지 못하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디지털 갈라파고스’를 만들어온 정부 정책이 과연 산업 보호를 위해 필수적인가이다. 얼마 전 K-컬처콘텐츠산업협회의 정책 토론회 참석 초청과 샌디에이고의 액셀러레이터 Aquillus 피칭 이벤트 합격 연락을 함께 받았다. 낮에는 토론회, 밤에는 피칭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디지털 갈라파고스 구조와 스타트업 환경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앞의 두 질문이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의 스타트업 환경은 나쁘지 않다. 정부 지원도, 정책 자금도 있으며 시장의 반응도 빠르다. 문제는 이 환경이 지나치게 ‘한국 안에서 잘 돌아가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많은 스타트업이 국내에서는 성과를 내지만,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전제로 설계되지는 않는다. 인증, 결제, 데이터 같은 기본 구조부터 국내 기준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일단 한국에서 성공하고, 글로벌로 가자”는 전략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삼성 갤럭시나 K-뷰티가 그런 사례일 것이다. 그러나 제품이 아닌 디지털 서비스 영역에서는 아직 성공 사례가 없다. 온실 밖의 환경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싸이월드가 페이스북으로 성장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기보다, 왜 그런 조건이 만들어지지 못했는지를 묻는 편이 생산적이다. 한국 휴대전화 번호가 없으면 가입이 어렵고, 한국 크레딧카드가 없으면 결제가 어려운 구조라면 그 서비스는 처음부터 글로벌을 상정하기 어렵다. 국내 사용자만을 대상으로 성장한 서비스는 글로벌 확장 단계에서 갑작스럽게 낯선 환경과 마주하게 된다. 중국 역시 강한 디지털 갈라파고스를 가진 나라다. 그러나 조건이 다르다. 중국은 압도적인 내수 시장과 자본이 존재하고, 글로벌 기술을 빠르게 흡수해 대규모 실험으로 연결할 수 있는 구조가 있다. 특히 오픈소스 생태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전 세계에서 개발된 기술을 신속히 조합하고 상용화하는 속도는 주목할 만하다. 내부 시장 자체가 거대한 시험장이 되기 때문에 외부 기술을 흡수한 뒤 곧바로 스케일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한국은 시장이 작고 투자 여력도 제한적이다. 보호는 가능하지만 충분한 스케일의 실험은 어렵다. 오픈소스를 활용하더라도 대규모 실험과 빠른 확장으로 연결하기에는 구조적 한계가 존재한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논의되는 ‘소버린 AI(인공지능)’ 역시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 데이터 주권과 공공 인프라 차원에서 의미 있는 논의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국내 최적화 전략으로만 작동한다면 디지털 갈라파고스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던 시기의 한국과 G3를 목표로 뛰는 지금의 한국은 마음가짐이 달라야 한다. 단거리용 신발을 신고 달리던 시점에서 이제는 장거리용 신발로 갈아 신어야 할 때인지 모른다. 보호를 위해 만든 온실이 오히려 우리를 가두는 갈라파고스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G3라는 목표를 진지하게 이야기하려면, 지금의 설계가 그 목표에 맞는지 다시 묻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허수정 Ohhh 대표발언대 갈라파고스 디지털 디지털 갈라파고스 디지털 서비스 한국 크레딧카드
2026.03.16. 19: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