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서 태어나 학창시절을 보냈다. 당시 문학경기장(현 SSG 랜더스 필드) 근처에 살았는데 야구 경기가 있는 날이면 가족과 함께 경기장까지 걸어가곤 했다. 경기 시작 전부터 느껴지던 팬들의 움직임과 함성, 경기장 주변의 들뜬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일상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문학경기장은 추억의 장소이자 자연스럽게 야구를 좋아하게 만든 출발점이었다. 해외 야구 리그에도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2023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다. 당시 미국과 일본이 결승전에서 만났고 오타니 쇼헤이와 마이크 트라웃이 마지막에 투수와 타자로 마주한 전설적인 장면이 탄생한 대회다. 그 경기를 본 후 야구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경기 이면의 스토리까지 챙기게 된 것이다. 2023년 우승팀 일본은 각자의 역할과 상황은 달랐지만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지금은 LA다저스 소속인 사사키 로키가 일본 국가대표 첫 선발로 나와 만든 감동적인 이야기, 겐다 소스케의 부상 투혼, 오타니가 라커룸에서 동료들에게 했다는 말까지, 일본팀의 우승이 운만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구가 단순히 결과로만 소비되는 스포츠가 아니라 각자의 맥락과 선택이 모여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실감했다. 서로 다른 서사를 가진 선수들이 하나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보며 야구를 바라보는 기준 역시 달라졌다. 경기 스코어와 흐름에 집중하던 시선에서 선수들의 서사와 이야기를 함께 살피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이후 야구 경기를 보기 위해 일본과 대만, 미국을 찾았다. 동일한 규칙으로 진행되는 경기였지만 현장의 분위기와 리듬은 분명히 달랐다. 응원 방식도, 관중이 경기를 대하는 태도도 나라마다 달랐다. 야구가 다양한 문화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2024년 메이저리그(MLB) 경기를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LA로 이사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생활하며 만난 소중한 인연과 새로운 경험들 모두 야구라는 스포츠가 준 선물처럼 느껴진다. 앞으로 야구가 안내해 줄 미래도 기대가 된다. 좋아하는 것을 따라가는 선택은 때로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삶을 이끌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이전과는 다른 기준을 갖게 되고 새로운 경험들이 자연스럽게 쌓여간다. 그 선택이 만들어낸 미래를 기대하게 되고 그 영향을 받으며 조금씩 성장해 가는 과정은 분명 행복한 일이다. 2026년 WBC가 다음 달 개막한다. 그동안 부진했던 한국 야구가 다시 한 번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증명할 수 있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 이번 한국 대표팀에는 김혜성(LA 다저스), 이정후(SF 자이언츠) 등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한국 선수들과 함께 데인 더닝(시애틀 매리너스), 라일리 오브라이언(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셰이 위트컴(휴스턴 애스트로스),저마이 존스(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등 한국계 선수들이 대거 합류해 의미를 더 한다. 이들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대표팀 합류를 결심한 것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선택 의지가 강했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선수들이 동일한 유니폼을 입고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은 한국 야구의 확장된 정체성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국제대회는 성적 이상의 의미를 남긴다. 서로 다른 서사를 가진 선수들이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이야기는 앞으로 한국 야구를 바라보는 기준을 바꿔놓을 수 있다. 좋아하는 것을 따라가는 선택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어지듯 이번 대회 역시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송영채 / 경제부 기자기자의 눈 한국계 선수 한국계 선수들 한국 선수들 야구 경기
2026.02.23. 19:12
LA다저스의 3회 말 공격 상황, 4번 타자 토미 현수 에드먼의 2점 홈런이 터졌다. 순간, 오늘 게임은 다저스가 이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20일의 다저스와 메츠 간 NLCS(내셔널리그 챔피언십) 6차전 경기 장면이다. 예상대로 다저스는 이날 승리했고, 월드시리즈 진출에 성공했다. 그리고 NLCS의 MVP는 쇼헤이 오타니도 무키 베츠도 아닌 에드먼이었다. 이날 다저스타디움에 모인 6만 명 가까운 팬들은 이미 8회 말 에드먼이 마지막 타석에 들어섰을 때 “MVP!”를 연호했다. 다저스가 시즌 중 에드먼을 데려온 것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그의 영입으로 불안했던 유격수 문제가 해결됐고,타선에도 활기가 돌았다. 그 덕에 다저스는 시즌 막판 치열한 순위 경쟁에서 밀리지 않았다. 사실 다저스의 에드먼 트레이드는 위험 부담이 있었다. 에드먼이 부상으로 시즌 초부터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상중 트레이드’로 7월 말 다저스에 합류한 에드먼은 8월 중순이 돼서야 경기에 나설 수 있었다. 에드먼의 경기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야구를 참 잘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플레이는 화려하지 않지만 성실하다. 상황 판단이 빠르고 작전 수행 능력도 뛰어나다. 감독이 계속 선발로 기용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에드먼은 본인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에드먼은 한인들에게는 ‘현수’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하다. 지난해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한국 대표팀의 멤버로 활약한 이후다. 그는 어머니가 한인이라 한국 대표팀 합류가 가능했다. 당시 한국 대표팀은 현수 외에도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몇몇 한국계 선수들과 접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부상 등을 이유로 대부분 고사했고 현수만 합류 의사를 밝혔다. 물론 개인적으로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현수의 결정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대회가 스프링캠프 시즌 기간에 열렸기 때문이다. 스프링캠프는 치열한 주전 경쟁이 벌어지는 무대다. 자리가 보장된 스타 선수가 아니면 긴장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비록 잠시지만 팀을 떠난다는 것은 큰 결단이 필요하다. 더구나 부상의 위험도 따른다. 현수가 시즌 초 부상으로 결장한 것도 혹시 WBC의 후유증은 아니었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이렇게 ‘한국계, 아니 한인 한국 대표선수’가 탄생했다. 다른 종목은 종종 있었지만 야구는 처음이었다. 당시 대표팀 합류를 위해 한국에 도착한 현수가 인터뷰 중 비록 서툴지만 한국말로 인사를 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국팀은 예선에서 탈락했고, 에드먼의 짧은 ‘한국 대표선수’ 생활도 끝이 났다. 그래도 한국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한국 선수들과 함께 뛰는 그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다. 다저스의 월드시리즈 진출로 LA가 들썩이고 있다. 다저스는 4년 전인 2020년 월드시리즈에서도 우승한 바 있지만 당시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이라 팬들은 즐거움을 만끽하지 못했다. 더구나 이번 상대는 뉴욕 양키스다. 두 팀은 과거 라이벌이었고, 지금도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최고의 팀들이다. 대형 스타 선수들도 즐비하다. 경기장 입장권 가격이 폭등할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한인 팬들에게는 월드시리즈를 기다리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바로 현수가 활약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다. 혹시 아직 그를 모르고 있었다면 지금부터라도 관심을 갖고 응원하면 된다. 주변에 “요즘 힘들다”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월드시리즈를 보며 현수를 열심히 응원하는 것도 잠시나마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하나가 되는 일체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스포츠의 매력 중 하나다. 한인 사회에는 현수가 박찬호나 류현진보다 더 가까운 존재다. 우리의 차세대인 한인 2세이기 때문이다. 그가 월드시리즈에서도 MVP가 되길 기대한다. 김동필 / 논설실장뉴스 포커스 월드시리즈 현수 월드시리즈 진출 한국 대표팀 한국계 선수들
2024.10.24. 20:10
“앤더슨 박인 데 코리안이야.” 2~3년 전인가 함께 차를 타고 가던 아들이 라디오에서 노래가 나오자 잘 아는 가수라며 알려준다. “유명해?”라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궁금해 자료를 찾아봤다. 본명은 브랜든 박 앤더슨이지만 앤더슨 박(Anderson .Paak)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다. (Paak은 ‘팩’ 또는 ‘박’으로 발음하지만 박으로 표기한다.) 그는 LA 북쪽, 벤투라카운티 옥스나드 출신이다. 가계도를 보니 외할머니가 한국인, 어머니는 ‘하프 코리안’, 아버지는 흑인이다. 굳이 따지자면 그는 ‘쿼터 코리안’이다. 한인과 결혼했고 2명의 자녀가 있다. 그는 실력파 뮤지션이다. 대중음악계 최고 권위라는 그래미상을 2019년부터 2022년까지 내리받았다. 특히 올해는 4개 부문 수상의 기염을 토했다. 지난 2월 LA에서 열린 제56회 수퍼보울 공연에서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유명 백인 래퍼 에미넘의 공연 때 드럼을 연주한 게 그다. 앤더슨 박을 보면서 하인즈 워드가 떠올랐다. 어머니가 한인인 그는 2006년 제40회 수퍼보울 MVP를 받으며 전국적인 스타가 됐다. 홀어미니에 가난한 이민자 가정 출신, 혼혈…. 스토리가 있는 그의 삶에 팬들은 열광했고 웬일인지 한국에서도 관심을 보였다. 어머니와 함께 한국을 방문한 그는 엄청난 조명을 받았다. 자연스럽게 한국계 혼혈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그러나 그때뿐이었다. 그 후 한국정부나 한인사회나 혼혈들에 대한 관심은 다시 시들해졌다. 그런데 최근 한국에서 다시 한국계를 주목하는 일이 있었다. 한국야구위원회 총재가 2023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한국 대표팀에 한국계 선수의 발탁도 고려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WBC는 다른 대회에 비해 선수의 국적 기준이 느슨하다. 부모나 심지어 조부모 국적의 국가 대표로도 참가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야구 불모지인 이스라엘이 WBC에 참가하고 미국 출생 선수가 멕시코 대표팀에서 활약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은 한 번도 이 카드를 사용하지 않았다. 폐쇄성과 ‘병역면제’라는 당근 때문에 한국 내에서만 선수를 뽑았다. 공교롭게도 성적은 갈수록 떨어졌다. 그런데 내년 대회에는 문호를 열겠다고 한다. 병역 혜택이 없어져 고육책일 수도 있지만, 한국계 선수들에 시선을 돌렸다는 것 자체가 과거에 비해 달라진 모습이다. 메이저리그(MLB)에는 많은 한국계 선수들이 활약하고 있다. 확인된 주전급 선수만 해도 미치 화이트(LA다저스 투수), 데인 더닝(텍사스 레인저스 투수), 토니 에드먼(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내야수), 조 로스(워싱턴 내셔널스 투수), 코너 조(콜로라도 로키스 좌익수·1루수) 등이다. 특히 데닝은 “한국 대표팀에서 불러만 주면 뛰고 싶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데닝 뿐만 아니라 그동안 많은 선수가 부모의 나라, 조부모의 나라인 한국 대표팀 참여 의사를 밝혔었다. 한인사회의 이민 연륜이 깊어가면서 자연스럽게 타인종과의 결혼도 많아지고 있다. 부모들이야 은근히 자녀들의 배우자로 한인을 바라지만 어디 희망대로 될 일인가. 이런 흐름은 숫자로도 나타났다. 연방 센서스의 아메리칸커뮤니티서베이(ACS) 자료에 따르면 2015년 33만2223명이던 한인 혼혈인구는 2020년 44만9183명으로 5년간 11만 명 이상 늘었다. 이 기간 혼혈을 제외한 한인 인구 증가율이 1.2%에 그쳤지만, 혼혈 인구는 33%나 급증했다. 앞으로 증가폭은 더 커질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혼혈’이라는 용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한국의 역사적 배경 때문인지 사용이 망설여진다. 부모나 조부모 중 한 명이 한인이면 ‘한인 혼혈’이라는 말 대신 그냥 한인, 또는 한국계라고 부르면 어떨까. 내년 WBC대회에서는 많은 한국계 선수들이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활약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김동필 / 논설실장뉴스 포커스 한국계 혼혈 한국계 선수들 한국계 혼혈들 한국 대표팀
2022.07.21. 18: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