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의 뿌리를 찾아 올라가면 동이(東夷), 고조선 등과 만나게 됩니다. 우리 민족을 동이족이라고 하는데 중국의 역사책을 보면 동이 관련 항목에 우리 선조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고조선, 부여, 마한, 변한, 진한, 고구려, 동예, 옥저, 백제, 신라 등은 모두 동이족이 세운 나라들입니다. 그런데 책마다 차이가 있어서 그 무엇을 답이라고 정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우리가 자주 인용하는 후한서(後漢書)에 보면 동이에 관한 놀라운 기록이 나옵니다. 동방을 이(夷)라고 하고 이는 근본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합니다. 또한 이는 천성이 유순하여 도리로 다스리기 쉽기 때문에 군자의 나라라고 하고, 공자(孔子)도 동이에서 살고 싶어 하였다고 소개합니다. 또한 중국에서 예를 잃으면 동이에서 구했다고 쓰고 있습니다. 책마다 표현이 다르니 후한서의 기록만이 맞다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중국 사서의 기록이 다른 민족에 우호적이지 않다는 점을 감안할 때 좋게 평가하는 부분은 놀라운 것입니다. 따라서 나쁜 기록보다는 좋은 기록에 집중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여, 고구려, 백제 등은 대부분 부여계이고 언어가 같다고 설명합니다. 술과 춤과 노래를 좋아하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점을 강조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삼한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삼한의 경우는 여러 가지 수수께끼를 줍니다. 예를 들면 한(韓)은 면적이 사방 4000리라고 후한서, 삼국지(三國志), 진서(晉書) 등에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국사책에서 배운 한반도 남쪽의 삼한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특히 삼국사기(三國史記)의 최치원 열전에 보면 이에 대한 근본적인 실마리가 나옵니다. 최치원이 당나라에 보낸 글에 마한(馬韓)은 고구려, 변한(弁韓)은 백제, 진한(辰韓)은 신라라고 설명합니다. 이렇게 봐야 삼한이 4000리가 될 겁니다. 관점을 바꾸는 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최치원은 그 글에서 고구려와 백제가 워낙 강대하여 중국의 남쪽인 오(吳)와 월(越)까지 공격하였다고 적고 있습니다. 고구려와 백제의 강역(疆域)도 국사책에서 배운 것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진한과 변한이 언어와 풍속이 다른 점이 있다는 후한서의 언급도 주목해야 할 겁니다. 진한의 말이 마한과 달랐다는 삼국지의 언급도 기억해야 합니다. 한편 변한과 진한의 언어가 서로 비슷하다는 삼국지의 언급에서 두 언어가 차이가 크지 않았음도 추론할 수 있습니다. 옥저의 언어가 고구려와 비슷하다고 후한서는 전합니다. 삼국지에서도 고구려어와 옥저말이 대체적으로 같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濊)와 옥저(沃沮), 고구려가 본래 옛 조선 지역이라고 설명한 부분도 흥미롭습니다. 예와 고구려가 같은 종족이라고 노인들이 스스로 이야기한다는 설명도 흥미롭습니다. 송사(宋史)에 보면 고구려는 요동(遼東)을, 백제는 요서(遼西)를 경략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국사 시간에 배운 백제의 영토와는 전혀 다른 설명입니다. 구당서(舊唐書) 등에 보면 백제도 본래 부여의 별종이라고 설명합니다. 양서(梁書)에서 백제와 고구려가 언어가 거의 같음을 이야기합니다. 수서(隋書)에서는 백제를 설명하면서 신라, 고구려, 왜, 중국 사람이 섞여 있다고 언급하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양서에서는 신라를 백제의 동남쪽 5000리 밖에 있다고 설명하는 것은 매우 특이합니다. 북사(北史)나 수서(隋書) 등에서 신라와 고구려, 백제의 풍속과 의복 등이 같다고 한 것은 삼국의 공통점을 보여줍니다. 중국 정사(正史)에 나타난 동이, 한국의 역사를 되짚어보면서 언어의 계통도 다시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한국어와 일본어가 그렇게 다른 이유가 무엇일까요? 한국어와 만주어가 그렇게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역사를 통해 한국어의 계통 속 궁금증을 풀고 싶었지만 오히려 더 깊은 수수께끼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한국어 한국사 한국사 이야기 고구려 백제 후한서 삼국지
2025.01.05. 17:19
사랑의어머니회(회장 황혜경)가 '세계인이 놀라는 한국사 7장면'의 저자인 이종호 애틀랜타중앙일보 대표를 초청, '이민자가 꼭 알아야 할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라는 제목의 특강을 개최한다. 시간은 3월 28일(화) 오후 4시부터이며 장소는 둘루스 뷰포드 하이웨이 선상에 있는 비전교회다. 이종호 대표는 LA 미주중앙일보 논설실장, 편집국장을 역임했으며 '한국사 7장면' 외에 '그래도 한국이 좋아,' '조지아, 그곳이 걷고 싶다' 등 여러 권의 책을 집필했다. 이 대표는 "한인 이민자들이 우리 역사에 대해 최소한 알았으면 하는 자랑스러운 한국 역사를 쉽게 전하고 싶어 책을 썼다"면서 "외국 친구나 자녀, 손주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우리 역사 한두 가지라도 기억할 수 있도록 강의를 준비하겠다"고 전했다. 사랑의 어머니회(KMAA, Korean Mothers Association of Atlanta)는 '엄마밥' 제공, 장학금 전달, 미혼모 돕기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한인 여성 단체이며, 회원들의 자기 계발을 위해 각 매월 각계 전문가를 초청, 다양한 강연도 진행하고 있다. 최근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나라사랑어머니회'에서 '사랑의 어머니회'로 이름을 바꿨다. 문의=404-428-5949 윤지아 기자한국사 세계 한국사 7장면 한국 역사 이종호 애틀랜타중앙일보
2023.02.28. 15:57
중국국가박물관의 ‘한국 고대사 연표 왜곡’ 사건이 최근 한국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다. 대한민국 국립중앙박물관에 따르면 그동안 한·중·일 3국은 상호 교류와 협력을 목적으로 2년마다 공동 전시회를 개최해왔다. 올해는 한·중 수교 30주년과 중·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아 중국국가박물관이 지난 7월 26일 ‘동방의 상서로운 금속(東方吉金): 한·중·일 고대 청동기전’을 개막했다. 이에 국립중앙박물관은 유물과 함께 고구려와 발해가 포함된 연표〈표 오른쪽〉를 제공했는데, 중국은 이 부분을 임의로 삭제한 한국 고대사 연표〈왼쪽〉를 전시했다. 상대국이 제공한 자료를 중국 측이 제멋대로 수정했다는 점에서 이는 명백한 국제 규범 위반이다. 다만 국립중앙박물관도 사건을 예방하지 못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중국의 역사 왜곡 행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아무리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라 하더라도 국립중앙박물관은 주중 대사관 등을 통해 치밀하게 현장을 미리 점검했어야 했다. 중국이 국제 규범을 지키리라 믿었던 것 같은데, 중국은 국제적 신의를 저버리고 고구려사와 발해사를 중국사로 편입하려는 의도에 따라 이번 일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을 접하며 중국이 2002~ 2007년 추진한 ‘동북공정’을 떠올린 이들이 많을 것이다. 동북공정의 이론적 토대는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이다. 중국은 1949년 10월 정부 수립과 함께 많은 소수 민족을 편입했다. 중원 왕조만 중국사로 설정하는 종전의 화이론(華夷論)에 따른다면 수많은 소수 민족의 역사를 독립 역사로 다뤄야 했다. 이 때문에 중국은 현재의 중국 영토를 기준으로 중국사의 범주를 설정하는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을 고안한 뒤 무수한 소수 민족의 역사를 중국사로 편입했다. 다만 중국은 1980년대까지는 북·중 관계를 고려해 고구려사를 조선사(한국사)로 인정했다. 그런데 1990년대 북한이 체제 위기로 내몰리자 고구려사에도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을 적용해 중국사로 편입하는 동북공정을 추진했다. 이때 중국은 정부의 지원 아래 고구려사 관련 연구소를 대거 설치하고 전문가를 양성해 연구 기반을 다졌다. 중국이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을 포기하지 않는 한 고구려사 왜곡을 그만둘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한국 상황은 어떠한가. 2003년 동북공정이 알려지며 중국의 역사 왜곡이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르자, 교육부는 2004년 초 고구려연구재단(2006년 현 동북아역사재단으로 통합)을 설립하며 대응했다. 그해 8월 한·중 양국 외교부는 5개 항으로 된 구두 합의를 발표했다. 그런데 한·중 외교 마찰이 잠잠해지자 사회적 관심이 줄어들었고, 정부 지원도 대폭 축소됐다. 고구려연구재단에서 예닐곱을 헤아리던 고구려 전공자가 지금 동북아역사재단에는 2명만 남았다고 한다. 지난 10년간 재단 예산은 30%가량 삭감됐다니 연구원이 퇴직해도 충원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한국 측의 대응 역량이 이 정도라면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는 중국의 역사 도발에 속수무책으로 또 당할 것이다. 정부 여당이든 거대 야당이든 정기국회에서 재단 예산을 원상 복구하고, 재단은 연구 인력을 충원해 대응 역량을 충분히 갖춰야 할 것이다. 차제에 국립중앙박물관과 문화재청은 국립고구려박물관을 건립하기를 제안한다. 아차산 일대나 임진강 유역의 고구려 유적을 잘 활용하면 야외 전시관까지 갖춘 번듯한 박물관을 건립할 수 있을 것이다. 정보기술(IT)을 활용하면 북한과 중국의 고구려 유적도 디지털 영상으로 전시할 수 있다. 국립고구려박물관은 세계를 향해 고구려사가 한국사임을 당당하게 알리는 발신처가 될 것이다. 동북아역사재단과 외교부·교육부는 중국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학계·언론계와 협력해 유기적 대응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번 사건도 국립중앙박물관과 외교부가 긴밀하게 협조했다면 예방했을 것이다. 중국 측에는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답게 행동하라고 엄중히 촉구해야 한다. 시진핑 총서기의 말을 인용해 이번 전시회 개막사에 실린 ‘평등과 호혜의 외교 자세’를 중국이 제대로 지키면 된다. 그 출발점은 상대국의 역사를 존중하는 것이다. 여호규 / 한국외대 사학과 교수시 론 중국 한국사 고구려사 왜곡 역사 왜곡 대한민국 국립중앙박물관
2022.10.02. 1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