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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타운 맛따라기] LA 떡볶이 전쟁 40년사

두 평 남짓한 가게 앞, 낡은 화로 위에서는 붉은 양념이 보글거렸다. 떡과 어묵이 뭉근하게 익어가는 쟁반 주위로 까까머리 중학생들이 빼곡히 둘러쌌다. 손가락만 한 미니 포크로 떡볶이 열 개에 백 원 하던 시절. 주인아저씨는 매의 눈으로 아이들이 먹는 떡 개수를 셌지만, 종종 아이들의 꾀에 넘어갔다. “아저씨, 저 이제 일곱 개 먹었어요.” 열 개를 훌쩍 넘긴 녀석의 말에도 그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꼬깃꼬깃한 100원짜리 한 장 들고 매일같이 찾아오는 아이들은 손님이자 자식 같았으리라.   장사는 역시 ‘목’이 전부였다. 보성중학교와 혜화동 로터리 중간, 혜화여고 길 건너편에 자리한 그 가게는 언제나 문전성시를 이뤘다. “아저씨가 떡볶이 팔아 건물을 샀다”는 소문이 파다할 정도였다. 옆집 라면 한 그릇이 100원, 학교 앞 짜장면이 150원이던 시절, 주머니에 50원만 있어도 떡 다섯 알은 너끈히 먹을 수 있었다. 25원짜리 버스 회수권으로 떡볶이를 사 먹고 친구와 30분을 걸어 집에 가던 날들도 부지기수였다. 먹고 돌아서면 허기지던 그 시절, 유독 그 떡볶이가 위로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 태평양을 건넜다. 미국 이민 후 수년간 애타게 그리워 했던 떡볶이를 LA에서 다시 만났다. 지금의 웨스턴 길 ‘포2000’ 자리에 1980년대초 문을 연 ‘까르르’는 혁신이었다. 떡볶이는 물론, 소시지와 단무지가 들어간 한국식 김밥, 통얼음을 아날로그 제빙기로 갈아 만든 팥빙수까지. 한식당은 있었어도 ‘분식점’이라는 개념 자체가 전무했던 시절, ‘까르르’는 LA 한인 사회에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렸다.   그전까지 70~80년대 LA 고등학생들의 약속 장소는 LACC 앞 값싼 불고기 덮밥집인 ‘요시노야’나 3가와 버몬트 인근 일본인이 운영하던 돈가스집 ‘알프스’ 정도가 고작이었다. ‘까르르’는 순식간에 젊은이들의 ‘행아웃 플레이스’로 떠올랐다.   독주하던 ‘까르르’가 초심을 잃고 점차 한식집화 되어갈 무렵, 동서사우나 옆에 ‘코끼리 분식’이 등장했다. 떡볶이 외에도 냉면, 만두, 죽까지 메뉴를 확장하고 24시간 영업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곧이어 버몬트와 올림픽 길에 ‘호돌이분식’과 ‘낙원집’이 가세하며 LA 코리아타운은 본격적인 ‘심야 분식 전쟁’에 돌입했다.   이후 6가, 지금의 ‘해장촌’ 자리에 문을 연 ‘그린하우스’는 당대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떡볶이와 김밥을 기본으로 돈가스, 캘리포니아롤, 우동 등 다채로운 메뉴를 선보였고, LA 최초로 테이블에 불판을 설치한 즉석 떡볶이까지 내놓으며 분식의 고급화를 이끌었다.   ‘그린하우스’의 대항마로 7가와 버몬트(현 77켄터키 자리)에 ‘해뜰날’이 생겨났고, 올림픽 길에는 손만두 전문점 ‘시누랑 올케랑’, 베벌리 길에는 ‘먹을래 싸갈래’가 문을 열었다. 3가와 웨스턴 ‘신당동 떡볶이’, 코리아타운 플라자 푸드코트의 ‘아우림’까지. LA 자생 분식점들의 춘추전국시대였다.   최근에는 한국의 대형 떡볶이 프랜차이즈들이 속속 LA 원정에 나서고 있다. 마당몰과 부에나파크 소스몰에 입점했던 ‘스쿨푸드’는 전통 김밥 대신 스팸, 멸치, 불고기 등을 활용한 모던 롤로 인기를 끌었다. 6가 길은 떡볶이 격전지가 되었다. 카탈리나 교차로에 ‘조폭떡볶이’가, 노먼디 길에 ‘엽기떡볶이’가, 그리고 후발주자로 세라노 길에 ‘죠스떡볶이’까지 한국의 떡볶이 3대장이 차례로 깃발을 꽂았다.   8가 옥스포드와 가주마켓 내 ‘투존치킨’이 세컨드 브랜드로 선보인 ‘할매가래떡볶이’처럼 굵은 가래떡을 내세운 프리미엄 떡볶이도 사랑받고 있다.   혜화동 구멍가게의 백 원짜리 떡볶이에서 시작된 기억은 LA 코리아타운의 화려한 프랜차이즈까지 이어졌다. 떡볶이 한 그릇에는 가난했지만 정겨웠던 시절의 추억과, 이역만리에서 고향의 맛을 재현해낸 이민자들의 치열한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세월은 흘렀고 입맛도 변했지만, 떡볶이는 여전히 우리에게 가장 따뜻한 소울푸드로 남아있다. 라이언 오 / CBC 윌셔프로퍼티 대표K타운 맛따라기 떡볶이 전쟁 신당동 떡볶이 즉석 떡볶이 한국식 김밥

2025.07.2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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