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게 세상에 온 나는 양가 조부모님을 뵙지 못했다.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은 연로해 보였다. 6·25 전쟁에서 전사한 큰오빠의 딸이 함께 살았고, 나와 같은 초등학교에 다녔다. 조카가 연상(年上)이었기에, 우리 집안의 가족관계를 주위에서 혼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학부모 회의가 있을 때, 나는 아버지나 엄마가 학교에 오시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 친구들은 ‘야, 월화야, 너희 할머니 오셨다’라고 큰 소리로 알려주곤 했다. 피하고 싶었다. 그랬던 내가 조모(祖母)가 된 지 오래되었다. 큰딸의 막내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조부모의 날 축하연에 초대한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5학년 학생들이 강당에서 환영 공연을 할 것이고, 공연 후에 조부모들은 손주들의 교실로 안내되어 교육환경을 살펴보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조부모들은 가정에서 아끼는 아이템을 가져와 손주들과 함께 물품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어 주기 바란다는 내용도 있었다. 집안에 가보는 없지만, 의미 있는 물건이 있는지, 한참 동안 생각해 보았다. 큰 딸네가 가주를 떠나 정착한 곳은 당일 다녀올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손주들은 할머니가 해 주던 한국 음식도 먹고 싶다고 했다. 사실 나는 제대로 요리를 배우지 못했지만, 의과대학을 다닌 관계로 실험하는 것에는 익숙하다. 그래서 손주들과 가끔 음식 만드는 실험을 하곤 했다. 음식의 유행, 흐름은 어쩌면 그렇게 해서 생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할머니가 만드는 음식들은 ‘퓨전’ 즉, 이것저것 섞였다는 것도 아이들은 잘 안다. 콩나물 같은 음식 재료와 애들이 필요할 것 같은 라면,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챙겨 자동차로 다녀왔다. 서둘지 않고 하는 자동차 여행이 나쁘지 않았다. 가보는 없지만, 골동품인 ‘목수용 줄 금이(line marker)’를 가져갔다. 눈금 긋는 기구가 없던 조선시대 목수가 썼다는 까만색의 길이 7인치 정도의 나무로 만든 것이다. 먹물을 담는 동그랗게 패인 미니 우물 같은 부분이 있다. 먹물을 갈아 넣고, 흰 실 뭉치를 담가 까맣게 물감을 들인 후, 미니 쇠 손잡이를 돌리면 반대쪽에 있는 못대가리만큼 작은 구멍을 통해서 실을 잡아당길 수 있다. 먹물에 젖은 실을 이용해서 벽이나 땅에 눈금을 그으면 된다. 참으로 기발한 아이디어로 만든 천재적인 기구이다. 한국을 알릴 수 있는 프레젠테이션 기회이므로, 한 면은 진한 빨간색, 다른 한 면은 진한 바다 색깔의 한국산 보자기에 쌌다. 골동품과 보자기를 보여주면서 조선시대 발달한 문명과 역사를 설명했다. 다른 조부모들이 가져온 귀중품 중에는 세계대전 참전 사진도 있었다. 손주가 다니는 초등학교에는 아시아계 학생이 눈에 뜨이지 않았다. 백인 계통으로 보이는 조부모들의 증언을 듣다 보니 흥미롭게도 모두 다민족, 다국적의 사람들이었다. 아시아 계통이 없었을 뿐이었다. 행사 후, 한 할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아, 윈트의 할머니는 한국분이시군요. 나의 부모님, 증조부님들은 여러 나라 출신인데, 나의 1/8이 아시아에서 온 것이라고 합니다.” 나는 “상체 1/8? 아니면 몸의 왼편 1/8이요? 어느 부분이 아시아에서 받은 것인지 궁금합니다”라고 농담처럼 물었다. 뉴멕시코 주 교육청 웹사이트에는 40여 개의 교육구/학교들이 이중문해력인증서(Seal of Biliteracy)를 발급한다고 되어있다. 한국어 이중문해력인증서는 두 군데 학교에서 2015~2016년에 발급하였다. 한국어가 아직은 정규 과목으로 채택되지 않고 있다. 뉴멕시코 주 인구의 2%가 아시아계고, 한인으로 분류되는 숫자는 아시아계의 10%가 넘는 4800명으로 집계되어 있다. LA교육원 통계에 의하면 이곳에는 한 개의 한글학교(주말학교)가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그나마 한글학교가 있어서 고맙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아시아계가 많지 않은 뉴멕시코 주 학교들에도 한국어 클래스를 넣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류 모니카 / 미국 종양방사선학 전문의·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오픈 업 조부모의 한국어 한국어 클래스 아시아계 학생 양가 조부모님
2024.04.10. 19:10
“축하해, 한국어가 유엔 공영어로 채택됐대. 한국어 클래스를 정규학교에 넣느라 애써온 한국어진흥재단의 노력이 보탬이 된 것 같구나.” 한국 친구가 보낸 메시지다. 글과 함께 한글이 유엔 공용어로 추가됐다는 제목의 유튜브 영상도 보내왔다. 기쁜 마음에 재빨리 동영상을 열었다. 아나운서의 말투와 소식의 전개방식에 전문성이 없었다. 한 시간 만에 또 다른 지인들이 같은 영상을 올렸다. 가짜 뉴스였다. 가짜 뉴스, 거짓 정보가 요즘처럼 난무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예전보다는 쉽게 정보의 출처를 추적할 수 있는 장치들이 있고, 일반인들의 분별력도 높아지고 있어 조금은 안심이 된다. 나도 친구가 보내 준 유튜브 영상이 가짜라는 것을 금방 알았다. 유엔이 채택한 공식 언어가 6개다. 유엔은 공식 언어와 활용 언어를 구별한 적이 있다. 1945년 초창기 유엔은 국제연합 헌장에서 5개의 공식 언어로 중국어, 프랑스어, 영어, 러시아어, 스페인어를 채택했고 그 후 아랍어가 더해져 6개가 됐다. 유엔 총회가 있을 때 연설 내용이 6개의 언어로 동시 통역되고 문서로도 작성된다.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처럼 공용어 이외의 말이 사용되는 경우는 6개 언어 중 하나로 미리 번역해 제출해야 한다. 가짜 뉴스가 범람하는 것은 ‘보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정부나 기관이 이를 쉽게 규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슈는 거짓 소식인 줄 뻔히 알면서도, 그것을 믿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거짓 뉴스와 정보를 강력히 막고 정정해야 하는 곳은 의료 분야다. 증명되지 않은 거짓 의학 상식이 사기꾼과 돌팔이 의사들을 부추기고, 순진한 일반인들에게 해를 입힌다. 때로는 생명을 잃게 만들기도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횡행했던 거짓 정보, 특히 백신에 대한 유언비어가 좋은 예이다. 백신을 거부했던 유명 인사 중에는 코로나로 숨진 사람도 있다. 내가 경험했던 어린 환자의 슬픈 사연도 있다. 키모테라피는 부작용이 많기는 하지만 백혈병을 완치시킨다. 한 젊은 부부가 백혈병에 걸린 네 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왔다. 키모테라피로 하는 정통적 치료를 거부하고, 그들은 아이에게 레아트릴 (laetrile) 치료를 받게 하겠다고 아이를 멕시코로 데리고 갔다. 레아트릴은 1845년 러시아에서 처음 사용했던 것으로 미국에는 1920년대에 알려졌다. 연방식품의약국(FDA)은 이 약물에 사이안화물이 들어 있어 일찌감치 사용을 금지했다. 소아암 전문의사가 법원에서 레아트릴 치료 금지 명령까지 받아냈지만 아이는 효과 없는 레아트릴 치료를 받다가 악화된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 젊은 부부가 당시 어디에서 정보를 얻었는지 알 수 없다. 요즘은 신문, 라디오, TV 이외에도 인스타그램, 유튜브, 페북, 트위터, 틱톡, 핀터레스트, 스냅샷, 링크드인, 레딧 등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근거 없는 정보가 돌고 있다. 정보의 정확도를 판단하는 것은 그 정보를 접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중요한 결정과 관련된 정보를 접했을 때에는 귀찮고 힘들어도 시간을 내어 꼼꼼히 내용을 검토해 보기를 권한다. 류 모니카 / 한국어진흥재단이사장오픈 업 한국어 공용어 유엔 공용어 유엔 공영어 한국어 클래스
2022.02.16. 20:01
“축하해, 한국어가 유엔 공영어로 채택됐대. 한국어 클래스를 정규학교에 넣느라 애써온 한국어진흥재단의 노력이 보탬이 된 것 같구나.” 한국 친구가 보낸 메시지다. 글과 함께 한글이 유엔 공용어로 추가됐다는 제목의 유튜브 영상도 보내왔다. 기쁜 마음에 재빨리 동영상을 열었다. 아나운서의 말투와 소식의 전개방식에 전문성이 없었다. 한 시간 만에 또 다른 지인들이 같은 영상을 올렸다. 가짜 뉴스였다. 가짜 뉴스, 거짓 정보가 요즘처럼 난무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예전보다는 쉽게 정보의 출처를 추적할 수 있는 장치들이 있고, 일반인들의 분별력도 높아지고 있어 조금은 안심이 된다. 나도 친구가 보내 준 유튜브 영상이 가짜라는 것을 금방 알았다. 유엔이 채택한 공식 언어가 6개다. 유엔은 공식 언어와 활용 언어를 구별한 적이 있다. 1945년 초창기 유엔은 국제연합 헌장에서 5개의 공식 언어로 중국어, 프랑스어, 영어, 러시아어, 스페인어를 채택했고 그 후 아랍어가 더해져 6개가 됐다. 유엔 총회가 있을 때 연설 내용이 6개의 언어로 동시 통역되고 문서로도 작성된다.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처럼 공용어 이외의 말이 사용되는 경우는 6개 언어 중 하나로 미리 번역해 제출해야 한다. 가짜 뉴스가 범람하는 것은 ‘보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정부나 기관이 이를 쉽게 규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슈는 거짓 소식인 줄 뻔히 알면서도, 그것을 믿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거짓 뉴스와 정보를 강력히 막고 정정해야 하는 곳은 의료 분야다. 증명되지 않은 거짓 의학 상식이 사기꾼과 돌팔이 의사들을 부추기고, 순진한 일반인들에게 해를 입힌다. 때로는 생명을 잃게 만들기도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횡행했던 거짓 정보, 특히 백신에 대한 유언비어가 좋은 예이다. 백신을 거부했던 유명 인사 중에는 코로나로 숨진 사람도 있다. 내가 경험했던 어린 환자의 슬픈 사연도 있다. 키모테라피는 부작용이 많기는 하지만 백혈병을 완치시킨다. 한 젊은 부부가 백혈병에 걸린 네 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왔다. 키모테라피로 하는 정통적 치료를 거부하고, 그들은 아이에게 레아트릴 (laetrile) 치료를 받게 하겠다고 아이를 멕시코로 데리고 갔다. 레아트릴은 1845년 러시아에서 처음 사용했던 것으로 미국에는 1920년대에 알려졌다. 연방식품의약국(FDA)은 이 약물에 사이안화물이 들어 있어 일찌감치 사용을 금지했다. 소아암 전문의사가 법원에서 레아트릴 치료 금지 명령까지 받아냈지만 아이는 효과 없는 레아트릴 치료를 받다가 악화된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 젊은 부부가 당시 어디에서 정보를 얻었는지 알 수 없다. 요즘은 신문, 라디오, TV 이외에도 인스타그램, 유튜브, 페북, 트위터, 틱톡, 핀터레스트, 스냅샷, 링크드인, 레딧 등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근거 없는 정보가 돌고 있다. 정보의 정확도를 판단하는 것은 그 정보를 접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중요한 결정과 관련된 정보를 접했을 때에는 귀찮고 힘들어도 시간을 내어 꼼꼼히 내용을 검토해 보기를 권한다. 류 모니카 / 종양방사선학 전문의·한국어진흥재단이사장오픈 업 한국어 공용어 유엔 공용어 유엔 공영어 한국어 클래스
2022.02.13. 16:51
추사감사절에 우리 부부는 혼자 있는 조카, 다른 주에서 이날을 함께하려고 온 사위의 부모와 함께 큰 딸네 집에서 보냈다. 내가 젊었을 때는 큰오빠와 언니네가, 내가 중년이 됐을 때는 직접 추수감사절 상을 차렸다. 이때가 되면 갓난아이 큰딸과 우리 부부가 맞이했던 미국에서의 첫 추수감사절이 생각난다. 남편과 나는 거의 반세기 전에 미국 의과대학에서 수련 과정을 이수하려고 도미했다. 매칭 프로그램으로 첫 번째 파견된 병원이 실망스럽게도 뉴욕 주에 있는 존슨시티라는 시골이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도시 출신인 나에게 미국의 시골 생활은 상상했던 멋진 미국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또 친구나 친지가 가까이 없었다. 지식으로만 알고 있었던 추수감사절이었지만 칠면조 요리, 호박파이는 만들 줄도 몰랐다. 덩그러니 우리 식구 셋이 맞이했던 첫 추수감사절은 서러울 정도로 쓸쓸했다. 그때 경험한 타향살이의 외로움은 뼛속 깊이까지 골을 팠던 것 같다. 추수감사절이 되면 노숙자들에게 칠면조 요리 등을 제공하는 기관이 많다. 그러나 길에 나앉지는 않았지만 가난으로, 또는 가족 없이 홀로 살아 명절 음식을 함께 만들고, 또 나누면서 지내지 못한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명절 때 오는 외로움은 타향살이 이민자들과 사회적으로 소외되는 계층에 많다. 우리 가족 중에도 객지에 나가 있는 조카네와 둘째 딸네가 타향살이 중이다. 마음에 걸렸다. 이들과 함께 지내려 추수감사절 이전에 더블린과 바르셀로나를 다녀왔다. 코로나 사태로 걱정이 많은 여행이었다. 다행히 아일랜드와 스페인의 코로나 감염 정도는 미국보다 낮았다. 더블린을 방문했을 때, ‘EPIC’이라는 뮤지엄에 들렀다. 이민역사를 테마로 만든 곳인데, 내가 봉사하고 있는 한국어진흥재단이 새로 만든 이중언어(영어와 한국어) 교과서 이름과 같아서 반가웠다. 괜스레 우연 같지는 않았다. 이 방문 중에 더욱 놀란 것은 더블린 정규학교에 한국어 클래스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국어 반을 이끌고 있는 교사를 만났다. 7개의 정규 학교에서 400여명에게 한국어를 세계언어로서 가르치고 있었다. 한국인들은 어디에서든지 우뚝 서는 기상이 있다.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나라가 힘을 잃고, 속국이 될 때, 지배국이 속국의 말과 글의 사용을 금지하는 것이 통상이다. 말과 글은 민족의 얼이기 때문에 말과 글을 말살시키면 민족정신은 약해지게 된다. 정체성은 흔들리고 지배국의 통제는 쉬워진다. 한국민은 일제 강점기 때 이에 저항해서 끈질기게 싸워왔다. 해방 이후 우리의 글과 말을 자유로이 쓰고 발전시키면서 부강한 나라가 됐다. 지금은 한글을 세계화할 때이다. 미국에 사는 디아스포라들의 노력은 정규학교에 한국어 클래스를 넣는 일이다. 유럽에 살아도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한민족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는 부담을 지닌 그들이지만 이민 1세들이 칠면조 굽는 문화를 익혔던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어를 습득해 나갈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들은 아일랜드에서, 스페인에서 외로워 하는 것 같지 않았다. 1세들이 칠면조 문화에 적응하는 것과 2세들이 우리 말과 글을 배우는 것은 어쩌면 같은 맥락인지도 모른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 더블린 여행이었다. 모니카 류 / 종양방사선과 전문의·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오픈 업 배우기와 한국어 한국어 배우기와 한국어 클래스 칠면조 문화
2021.12.01. 19:28
추사감사절에 우리 부부는 혼자 있는 조카, 다른 주에서 이날을 함께하려고 온 사위의 부모와 함께 큰 딸네 집에서 보냈다. 내가 젊었을 때는 큰오빠와 언니네가, 내가 중년이 됐을 때는 직접 추수감사절 상을 차렸다. 몇 년 전부터 이 축제의 의무가 자연스럽게 큰딸에게 넘어갔다. 이때가 되면 갓난아이 큰딸과 우리 부부가 맞이했던 미국에서의 첫 추수감사절이 생각난다. 남편과 나는 거의 반세기 전에 미국 의과대학에서 수련 과정을 이수하려고 도미했다. 매칭 프로그램으로 첫 번째 파견된 병원이 실망스럽게도 뉴욕 주에 있는 존슨시티라는 시골이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도시 출신인 나에게 미국의 시골 생활은 상상했던 멋진 미국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또 친구나 친지가 가까이 없었다. 지식으로만 알고 있었던 추수감사절이었지만 칠면조 요리, 호박파이는 만들 줄도 몰랐다. 덩그러니 우리 식구 셋이 맞이했던 첫 추수감사절은 서러울 정도로 쓸쓸했다. 그때 경험한 타향살이의 외로움은 뼛속 깊이까지 골을 팠던 것 같다. 추수감사절이 되면 노숙자들에게 칠면조 요리 등을 제공하는 기관이 많다. 그러나 길에 나앉지는 않았지만 가난으로, 또는 가족 없이 홀로 살아 명절 음식을 함께 만들고, 또 나누면서 지내지 못한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명절 때 오는 외로움은 타향살이 이민자들과 사회적으로 소외되는 계층에 많다. 우리 가족 중에도 객지에 나가 있는 조카네와 둘째 딸네가 타향살이 중이다. 마음에 걸렸다. 이들과 함께 지내려 추수감사절 이전에 더블린과 바르셀로나를 다녀왔다. 코로나 사태로 걱정이 많은 여행이었다. 다행히 아일랜드와 스페인의 코로나 감염 정도는 미국보다 낮았다. 더블린을 방문했을 때, ‘EPIC’이라는 뮤지엄에 들렀다. 이민역사를 테마로 만든 곳인데, 내가 봉사하고 있는 한국어진흥재단이 새로 만든 이중언어(영어와 한국어) 교과서 이름과 같아서 반가웠다. 괜스레 우연 같지는 않았다. 이 방문 중에 더욱 놀란 것은 더블린 정규학교에 한국어 클래스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국어 반을 이끌고 있는 교사를 만났다. 7개의 정규 학교에서 400여명에게 한국어를 세계언어로서 가르치고 있었다. 한국인들은 어디에서든지 우뚝 서는 기상이 있다.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나라가 힘을 잃고, 속국이 될 때, 지배국이 속국의 말과 글의 사용을 금지하는 것이 통상이다. 말과 글은 민족의 얼이기 때문에 말과 글을 말살시키면 민족정신은 약해지게 된다. 정체성은 흔들리고 지배국의 통제는 쉬워진다. 한국민은 일제 강점기 때 이에 저항해서 끈질기게 싸워왔다. 해방 이후 우리의 글과 말을 자유로이 쓰고 발전시키면서 부강한 나라가 됐다. 지금은 한글을 세계화할 때이다. 미국에 사는 디아스포라들의 노력은 정규학교에 한국어 클래스를 넣는 일이다. 유럽에 살아도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한민족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는 부담을 지닌 그들이지만 이민 1세들이 칠면조 굽는 문화를 익혔던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어를 습득해 나갈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들은 아일랜드에서, 스페인에서 외로워 하는 것 같지 않았다. 1세들이 칠면조 문화에 적응하는 것과 2세들이 우리 말과 글을 배우는 것은 어쩌면 같은 맥락인지도 모른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 더블린 여행이었다. 모니카 류 / 종양방사선학 전문의·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오픈 업 배우기와 한국어 한국어 배우기와 한국어 클래스 칠면조 문화
2021.11.29. 18: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