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국, 미·중 사이 중립? "한미 동맹 지속성 위협"
“한국은 농산물 시장 개방에 대해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해당 시장을 보호하는 데 드는 기회비용이 너무 많이 들지 않았는지 스스로 자문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1기 시절 국무부 부장관을 지낸 스티븐 비건(사진)은 최근 미국 정부가 한국과 관세 협상 가운데 30개월 이상 미국산 소고기와 쌀 등 농산물 수입을 확대하라고 요구한 데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지난 16일 애스펀 안보 포럼에서 본지와 단독 인터뷰를 가진 비건 전 부장관은 “농산물 시장 개방이 한국에서는 민감한 주제지만, 궁극적으로 한국 무역 정책과 소비자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1기 정부에서 대북특별대표를 역임하면서 미국의 대북 실무협상을 총괄한 자타공인 한반도 전문가다. 비건 부장관에게 관세 협상, 전작권 환수, 동맹 현대화 등 한미 관계 현안에 대해 물었다. 한국의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와 충돌할 가능성은. “이재명 대통령 개인보다 미국의 정치·경제적 상황에 달려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수지를 관계의 척도로 본다. 한국은 여전히 무역 흑자국이다. 이는 곧 어려운 무역 협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한미 FTA나 북핵 협상, 주한미군 문제 등과 맞물리며 쉽지 않은 관계가 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 모두와 좋은 관계를 원한다. 현실적인가. “미국은 안보, 중국은 경제 파트너라는 이중 전략을 많은 나라가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쉽지 않다. 무역 협상 맥락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산 제품 우회 수입까지 견제하려 한다. 한국이 여기에 동의하면 중국과 긴장이 발생할 수 있다. 게다가 미국은 동맹국이 미·중 갈등 시 미국 편에 설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보고 있다. 이에 한국이 중립을 유지하려 할 경우 동맹의 지속성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 한국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추진 중이다. 한국에게 전쟁 지휘 및 통제 역량이 충분한가. “민간 협상가로서 전술적 판단을 하기는 조심스럽다. 그러나 해당 문제는 단순히 권한을 이전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전작권처럼 하나의 사안에만 초점을 맞출 경우,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게 된다. 진짜 중요한 것은 이 동맹이 미국과 한국 모두의 안보 이익을 충족시키는 현대적인 동맹으로 어떻게 탈바꿈할 것인가다. 동맹이 진정 현대화되려면 전작권뿐 아니라 핵전략, 주한미군 주둔, 연합전력 임무 등 동맹 전반의 목적을 재정의해야 한다.” 미국이 말하는 ‘한미동맹 현대화’는 무엇을 의미하나. “단순히 북한 억지에 머무르지 않고, 동맹을 인도·태평양 전체 안보에 기여할 수 있도록 재편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한국이 북한보다 경제력이 훨씬 크고, 안보 환경이 다변화된 시대에 과거의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주한미군 감축이 정말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부합하나. “검토해볼 가치가 있는 주제다. 과거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에도 감축이 논의됐고, 이후 2~3만 명 수준이 적절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중요한 것은 이런 논의가 미국과 한국이 공동으로 진행하고, ‘미군이 철수한다’는 신호로 비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미군 감축이 인태 전략이나 양안 갈등에 악영향을 줄 수 있지 않나. “한미 동맹이 북한 방어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감축의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다. 하지만 동맹이 인도·태평양 안보망의 핵심축이라면 감축은 분명 문제가 될 수 있다. 지금은 한미 동맹을 새롭게 구성할 기회다. 이 논의를 너무 오래 미뤄왔다는 사실이 걱정된다. 동맹과 관련해 한미 양측 모두에 극단적인 목소리가 존재한다. 우리는 이런 극단이 논의를 좌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한국이 그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고 보나. “현재 트럼프 행정부와 관련 논의는 진행 중일 것이다. 세계는 많이 변했다. 71년 전 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현실이다. 중국은 부상했고, 한국은 강력한 경제·군사력을 갖췄으며, 북한은 핵보유국이다. 이제 동맹도 현실에 맞게 재조정돼야 한다.” 미국은 한국 농산물 시장 개방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에 전략적으로 유리한 선택은. “농산물, 특히 쌀 시장 개방은 한국 정치에서 매우 민감한 이슈다. 무역 협상에서 늘 쌀 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산업 분야에서 더 큰 양보를 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이야말로 한국 정부가 농업 부문, 특히 과잉 보호된 부문에 대한 개혁 여부를 결정해야 할 시점이다. 그 개혁은 무역 정책에도 도움이 되고, 한국 소비자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정부가 국민 세금으로 쌀 농가를 직접 지원하는 것이 보호 정책을 유지해 소비자가 더 높은 쌀값을 부담하게 하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들 수 있다. 미국도 마찬가지로 농업 부문 구조조정을 여러 차례 거쳤고, 다른 나라들도 그랬다. 한국은 이제 이 시장을 방어하는 데 드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지 않은지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한국의 대미 투자 전략은. “이미 한국은 미국 내 고용 창출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현대, 기아, 한화 등 주요 기업들의 투자는 매우 중요하다. 다만 무역 적자 논쟁이 이런 투자의 가치를 희석할 우려가 있다. 결국 핵심은 무역 관계를 안정시키고, 기업이 정부 개입 없이 순수한 비즈니스 판단에 따라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트럼프 2기 정부의 첫 6개월 어떻게 평가하나. “매우 활발했고, 예상보다 효과적이었다. 아직 4년 임기의 극히 일부만 지났지만, 재무장관이나 국무장관 같은 인물들이 매우 인상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대러시아 압박, 이란 핵시설 타격 등 외교적 성과가 있었고, 국내 정책도 아직까지는 경제 위기를 초래하지 않았다. 인플레이션은 관찰 중이지만, 현재까지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정책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만한 상황이다.” ☞스티브 비건은 빌 프리스트 전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국가안보보좌관,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국장 등 의회 및 행정부 주요 요직을 거쳤다. 이후 포드 부회장을 지내다가 트럼프 정부 1기 대북정책특별대표로 발탁됐다. 트럼프 1기 정부 이후 그는 최근까지 보잉 글로벌 공공정책 수석부사장으로 일했고, 현재는 민주주의진흥재단(NED) 이사로 재직중이다. 1963년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나 미시간대학교에서 노어노문학과 정치학을 전공했다. 애스펀 = 김경준 기자한미동맹 현대화 트럼프 행정부 전략 주한미군
2025.07.17. 15: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