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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변동의 새해, 바위처럼

2026년, 새해의 태양이 떠올랐다. 밝은 햇살이 온 누리에 스며들었다. 새해의 첫 순간은 누구나 똑같이 맞으며, 모든 사람이 다시 시작할 기회를 갖는다. 새해는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 차별 없이 찾아왔다. 새로운 시간이 모든 생명들에게 공평하게 주어졌다.   삶은 늘 변하고 흔들리지만, 그 속에서도 시간은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흘러간다. 그래서 새해는 단순한 시간의 시작이 아니라 모두에게 주어진 기회이자 가능성이다. 마음을 새롭게 하고 다시 출발할 수 있는 축복이다.   새해 첫날은 누구나 새로워지고 싶어한다. 하지만 정작 삶을 바꾸는 힘은 거창한 첫날이 아니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지나가는 평범한 하루하루 속에 숨어 있다.   ‘하루를 새롭게 하려거든, 날마다 새롭게 하고, 또 날마다 새롭게 하라’는 오래된 고전문장이 있다. ‘나날이 새롭게’하라는 것이다. 새로워지고 싶다면 지속해야 한다고 말한다. 새해를 맞은 나에게 가장 절실한 말처럼 들린다.   삶이 바뀌는 순간은 끈기에서 피어난다. 작심삼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쌓아가는 과정이다. 내공이 필요하다. 남들이 알아채지 못해도 나 스스로 느낄 수 있다면 이미 새로워졌기 때문이다.   하루를 새롭게 한다는 말은 큰 결심이나 대단한 계획을 세우라는 것이 아니다. 어제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려는 작은 마음, 조금 더 나아지는 마음이다. 새해가 주는 의미도 결국 이 문장에 담겨 있다. 변화는 반복되는 하루에서 시작된다.   새해는 해마다 되풀이하지만, 뭔가 부풀어 오르는 기대감으로 인해 언제나 희망으로 다가온다.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달라질 자신을 상상하며 크게 움직여야만 새해를 맞는 것 같은 착각을 한다.   문득 반칠환 시인의 시 ‘새해의 기적’ 한 구절이 나를 멈춰 세운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시의 전체 내용은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 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이다.   날고, 뛰고, 걷고, 기고, 구르는 것들이 ‘한날 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는 것은 속도가 다른 모두가 공평하게 새해 첫날을 맞았단 얘기다. 황새를 포함해서 바위까지 각기 제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는 뜻이다.   재미있는 것은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는 구절이다. 겉으로 보기에 바위는 움직이지 않고, 변화가 없는 존재처럼, 늘 같아 보인다. 그런 바위가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는 것은 이미 매일 매일을 ‘새롭게’ 살고 있었던 것이다.   겉으로는 아무 변화 없어 보이지만 하루도 같은 날은 없었다. 바위의 안쪽에서는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에서. “대추가 저절로 붉어 질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 …”처럼 바위 안에서 시간이 익어가고 있었다.     바위의 의연함은 하루 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다. 대추 한 알 속에 태풍, 천둥, 벼락 몇 개가 들어 있듯, 바위 안에 수많은 날들이 응축된 결과였다. 하루하루를 말없이 품으며 새로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손오공이 아무리 날고뛰어 봤자 부처님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하듯, 새해는 누구도 앞서서 도착할 수 없는 시간이다. 더 빨리 달린 사람도, 잠시 멈춰선 사람도, 같은 시각에 똑같이 새해 앞에 선다.   우리는 종종 삶을 경주처럼 여기며 누가 먼저 가는지에 마음을 빼앗기지만, 시간은 늘 같은 속도로 모두를 데려간다. 한 해를 어떻게 살았든 새해는 예외없이 공평하게 열리고 같은 출발점에서 시작한다.   지난 2025년, 교수신문이 꼽은 사자성어는 주역에 실린 ‘변동불거(變動不居)’였다. 세상이 잠시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가면서 변한다는 뜻이다.     새해에도 변화는 멈춤 없이 계속되겠지만 더 빨리 가겠다는 욕심보다, 더 많이 이루겠다는 조급함보다, 중요한 것은 변동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바위처럼 자기 자리를 지키는 일일 것이다.   지난 한해를 돌아보니 후회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말을 아꼈어야 할 순간도 있었고, 붙잡았어야 할 마음을 놓친 적도 있다. 어려운 사람들 앞에서 자주 망설였다. 도와야 한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내 사정부터 헤아리느라고 손을 내밀지 못하고 모른 척 지나쳤다.   부모님 생전에 좀 더 이해하고 잘해 드리지 못했다는 죄송함이 사무친다. 늘 그 자리에 계실 줄 알고 미루다 보니 시간만 앞서 갔다. 손 한번 더 잡아드리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줄 그땐 몰랐다. 항상 바쁘다는 말로 효도를 대신했다.   자식들에 대해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아이들이 잘되기를 바라며 묵묵히 지켜봐 줘야 했는데 사랑보다 잔소리가 먼저 튀어나왔다.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마음을 다치게 하진 않았는지.  자식을 향한 어미의 기대와 바람 때문에 아이들이 느꼈을 중압감을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게 자식 사랑인 줄 착각했다.   하지만 지난날에 연연해 오늘을 놓치고 싶진 않다. 그런 것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여기까지 걸어올 수 있었다고 생각하자. 후회하면서도 다시 하루를 살아내는 일이고 아쉬움을 품은 채로 누군가를 이해하려 애쓰는 마음이다. 그래서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잘 살아보려 한다.   2026년, 누구에게나 똑같이 공평하게 주어진 365일, 이제 우리는 모두 그 출발선에 서 있다. 날아가듯 빠르게 가든지, 기어가듯 아주 느리게 가든지,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바위는 앉아만 있었는데도 한날 한시에 새해 첫날을 맞이했으니 말이다.   박완서 작가는 허리를 다치고나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땅 위를 걷는 것쯤은 당연한 일인 줄 알고 있다.”   기적은 하늘을 날거나 바다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걸어 다니는 것이라는 중국 속담이 있다. 우리는 하늘을 날고 물 위를 걷는 기적을 이루고 싶어 안달하며 무리를 한다. 하지만 기적은 그렇게 요란하지 않다. 아무 탈 없이 하루를 살아내고 버텨내는 일상 자체가 기적이다.   새해의 공평함은 단순히 시간의 교체가 아니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선사한다. 아주 작고 일상적인 사건들과 오늘을 무사히 살아낸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기적 한가운데에 있다. 감사하며 바위처럼 살고 싶다.  배광자 / 수필가문예마당 변동 새해 새해 바위 한시 새해 새해 첫날

2026.01.0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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