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업] 마음의 병을 고백한 가수의 무대
지난 8월 마지막 주, 필자는 특별한 여행을 떠났다. 트로트 경연대회에서 우승한 가수 7명의 LA 공연이 성공적으로 끝난 뒤, 멕시코 크루즈 선상 특별 공연이 기획되었단다. 한국 가요계 최초의 시도라 모두 흥분된 상태라고 했다. 필자는 이 항해에 동행하게 됐다. 주최 측으로부터 온 갑작스러운 요청 때문이었다. 7명의 가수중 한명이 ‘밀실 공포증’과 ‘고소 공포증’을 겪고 있으며, 혹시 모를 응급 상황에 대비해 정신과 의사의 동행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정신적 어려움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알린 가수의 용기, 그리고 그를 돕기 위해 전문가를 동행시키려는 주최 측의 책임감에 감명을 받았다. 하지만 미국에서 나고 자란 필자의 40~50대 세 자녀들은 걱정을 쏟아냈다. “엄마는 오십 여년 간 정신과 전문의로 일하시면서, 한 번도 법적 문제에 부딪힌 적이 없었는데, 아무런 공식적인 계약도 없이 5일간을 환자와 같은 배에 동행하는 것은 위험해요.” 또 내가 카이저 병원에서 일하면서 비공식적으로 이민자들을 도왔던 과거를 들춰내며, 법적 위험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약 30여 년 전, 필자가 후배인 심리학 박사 닥터 오와 함께 교회의 작은 방에서 한인 이민자들의 정신적 문제를 돕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로 시작됐다. 당시 한국에서 자녀가 자폐증 진단을 받으면, 많은 부모들이 미국으로 필자를 찾아왔다. 진단을 확인하기 위함이라 했지만, 아마도 진단이 틀렸기를 바랐기 때문이었으리라. 이 부모들의 마음은 미국에서 ADHD 진단을 받은 자녀를 한국에 데리고 나가는 이민자 부모님들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진료를 받으면서 ADHD 진단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테스트들로 아이들의 주의 산만증을 더 악화시킨 후에 돌아오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당시에는 카이저 병원에서 근무할 때라 교회 사무실에서 우리는 약 이십여년간 환자를 봐왔는데, 내 아이들이 그때부터 걱정을 하고 있었다니 놀라웠다. 아이들 말대로 법적 보호 없이 진료 행위를 하는 것은 무모한 것도 사실이다. “엄마는 좋은 뜻으로 한인 가수들을 도우려는 것이지만 도중에 불행한 사건이 발생할 수도 있잖아요.” 자녀들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필자는 이민자들을 위로하러 온 젊은 가수들과 그들을 돌보는 주최 측의 따뜻한 마음에 더 큰 가치를 두었다. 결국 카니발 선박에 몸을 실었다. 항해 이틀째, 긴장되는 와중에도 선상에서는 놀라운 광경들이 펼쳐졌다. 90세 노모의 생신을 기념하는 중년의 자녀, 그리고 아이돌을 꿈꾸는 고베 출신의 18세 일본 소녀가 선보인 멋진 공연 등 다양한 풍경이 펼쳐졌다. 그리고 마침내 셋째 날, 무대에 선 그 가수는 자신의 공포증을 스스럼없이 고백했다. 하지만 그는 “잘 조절해서 문제가 없었다”고 당당하게 말했고, 관객들은 큰 박수로 화답했다. 그의 건강에 대한 안심과 격려의 박수이리라. 정신과 의사로서 그 박수는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과거 우리 사회에서 ‘수치’로 여겨지던 정신적 문제를 젊은 세대가 거리낌 없이 드러내고, 대중은 이를 따뜻하게 격려하는 모습에서 한국 사회의 변화를 느꼈다. 아마 그 가수는 자신의 감정을 밖으로 꺼내 보인 순간, 이미 치유의 첫걸음을 뗀 것이리라. 인간의 감정은 마음속에 억누를수록 더 크게 끓어오른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순간, 감정은 정리되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이 아름다운 가수는 말을 통해 치유를 얻었고, 필자의 자녀들은 한인 엄마가 한국식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또 다른 배움을 얻었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마음 고백 한인 가수들 가수 7명 정신과 의사
2025.09.11. 18: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