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칼럼] 추방보다 더 슬픈 건 외면받는 삶
추방은 삶의 궤적에 주홍글씨가 새겨지는 아픔이다. 추방자라는 낙인이 찍힌채 자신이 나고 자란 한국으로 쫓겨난 이들은 이질감 속에 평생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전역에서는 불법 체류자 단속이 강화되고 있다. 이민세관단속국(ICE)의 추방 정책은 법적으로는 ‘이민법 집행’이라는 분명한 명분을 갖는다. 그러나 법과 제도가 모든 현실을 포괄할 수는 없다. 정책 이면에는 분명 그늘이 존재한다. 본지가 최근 보도한 한인 추방자 기획 기사는 바로 그 지점을 조명하는 데서 출발했다. 법적 판단이나 제도적 결과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사각지대를 기록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지난해 말 본지 영어 매체 코리아데일리US(www.koreadailyus.com)에 게재된 영문 기사를 한국어권 독자를 위해 한글로 재구성해 다섯 차례에 걸쳐 소개했던 이유다. 추방자들의 사연은 기구하다. 미국에서는 신분 때문에 늘 숨어 살아야 했고, 단속과 추방의 공포 속에서 일상을 이어가야 했다. 결국 강제 추방을 당하거나 더 이상 버티지 못해 자진 출국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이들은 삶의 터전에서 밀려났다는 상실감과 수치심을 동시에 겪게 된다. 그들에게 한국은 법적으로는 ‘모국’일지 몰라도 언어, 문화, 사회적으로는 낯선 땅이다. 한국에 연고가 없거나 생활 기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또 다른 삶을 살아가야 한다. 여기에 추방자라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부정적 시선과 선입견에 시달릴 수 있다는 두려움도 따른다. 대부분 자신의 과거와 처지에 대해 공개하기를 꺼리는 이유다. 그동안 언론의 수많은 보도는 대부분 추방을 둘러싼 법적 절차나 정책 논쟁에 집중해 왔다. 그러나 추방 이후 이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상세히 조명하지 않았다. 이번 기획 취재는 추방이라는 결과 이후에도 이어지는 현실, 낯선 사회에서 살아가야 하는 고충, 그리고 누적된 삶의 상처를 기록하려 했다. 물론 다른 시각도 있다. 불법 체류 자체가 위법이고, 추방자 가운데에는 중범죄 전력이 있는 사례도 적지 않은데 왜 그들의 어려움에 사회적 관심을 기울여야 하느냐는 시선이다. 그러나 이번 보도의 목적은 불법 체류라는 행위를 정당화하거나 특정 입장을 옹호하는 데 있지 않다. 법적 또는 정치적 판단을 대신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제도적 결정에 따른 결과 이후에 처한 인간의 삶과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라고 판단했다. 범죄 전력이나 불법 체류자라는 사실과 별개로 그들 역시 기본적인 존엄과 권리를 가진 존재다. 만약 사회가 법적으로 흠결이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만을 공적 담론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그 자체가 또 다른 형태의 배제와 침묵을 낳을 수 있다. 특히 당사자들조차 감추고 싶어 하는 사연과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던 이들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일은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공론의 장으로 옮기는 증언자의 역할도 언론의 몫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인 추방자들은 눈물을 머금은 채 나고 자란 땅으로 돌아가고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이들의 존재와 현실에 대한 관심은 미미하다. 그들에게는 어쩌면 추방보다 더 슬픈 건 철저히 외면받는 삶일지도 모른다. 이번 보도가 추방이라는 사건을 단편적으로 전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이후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추방 이후 그들이 어떤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잠시나마 살펴보고, 공공의 관심을 환기하는 출발점이 됐으면 한다. 장열 / 사회부장중앙칼럼 추방 외면 한인 추방자 추방 정책 강제 추방
2026.03.08. 1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