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C 워싱턴DC 앵커 은 양, 주류 언론에 한인 목소리 더 필요
언론인으로서 활동하는데 있어 원동력은 정체성이다. NBC 워싱턴DC 이브닝 뉴스의 메인 앵커 은 양(Eun Yang·사진)은 뿌리의 가치를 중시한다. 25년째 한길만 걸어온 양 앵커는 뉴스의 중심에는 ‘사람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한인으로서 한인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2025 아시아계미국인언론인협회(AAJA) 연례 컨벤션’에서 만난 양 앵커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를 연결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고 강조했다. 앵커의 길을 선택한 계기는. “소통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한다. 누구나 고유의 스토리가 있다. 질문을 던진 뒤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가 공유하는 인간적인 경험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 그런 연결이 나를 뉴스 앵커라는 직업으로 이끌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거나, 삶에 변화를 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은 없다고 본다.” 정체성이 활동에 미치는 영향은. “내가 자란 세대는 한인의 정체성을 기념하거나 드러내기보다는 섞이려고 했다. ‘은(Eun)’이라는 이름도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제대로 발음하지 못해 ‘언’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영어 이름으로 바꾸고 싶었다. 그러나 부모님은 내가 뿌리를 잊지 않길 바라셨다. 결국 한글 이름을 지키는 동시에, 한인으로서 문화와 미국 사회에서의 삶, 그리고 두 세계 사이의 복잡함을 이해하게 됐다. 이때 배운 가치가 지금의 나를 만든 요소들이다. 흔들리지 않고 지금까지 이 길을 걸어올 수 있게 했다.” 유리천장이나 차별은 없었나. “처음에는 부당함을 참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경력이 쌓이면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특히 언론계 후배들을 위해서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하다고 느꼈다. 지금은 용기가 생겼다. 인종차별적이거나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상황이 있다면 맞서서 주저하지 않고 말한다.” 앵커로서 한인임을 깊이 느꼈던 순간은. “평창올림픽을 취재했을 때가 가장 뜻깊은 순간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자란 한국에 직접 가서 한국 사람들이 국제 행사를 준비하는 모습을 본 건 정말 특별했다.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치러진 것도 인상 깊었지만, 외국 기자들에게 따뜻하게 다가와 길을 안내하고, 통역을 도와주고, 택시기사에게 목적지를 설명해주는 자원봉사자들의 진심 어린 배려가 정말 감동적이었다. 그런 모습들이 내 가슴을 깊이 울렸다. 그때 정말 한인이라는 게 자랑스러웠다.” 주류 언론에 한인 언론인은 충분한가. “아직 부족하다. 특히 결정권을 가진 관리자급 한인 언론인이 더 많아져야 한다. 리더십 위치에 한인이 있어야 한인 기자들을 이해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환경이 조성된다. 운 좋게도 NBC에는 캐서린 김 보도 부문 부사장과 비비안 김 시니어 수퍼바이징 프로듀서처럼 높은 위치에 한인 여성들이 있다. 아울러 한인 언론인들이 이 업계에 오래 머무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야 우리가 한인사회의 이야기를 더 많이, 더 깊이 전할 수 있다.” 주류 언론에 한인이 필요한 이유는. “더 넓은 시각에서 조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와이 초기 이민 역사부터 1970년대 이민 물결까지 한인들은 미국 역사 속에서 오랜 시간 기여해왔다. 한인들은 단순히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 아니라 미국 사회의 일부로서 이 나라를 함께 만들어온 이들이다. 이런 이야기를 제대로 알리고 이해시키려면, 주류 언론에 우리를 대표하는 목소리가 꼭 필요하다. 대표성이 없으면, 이런 소중한 이야기들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는. “유명 인사를 많이 인터뷰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일반인들의 깊은 슬픔을 마주했던 순간들이다. 기자 시절, 버지니아주로 이민 온 한인 가족이 16살 딸을 음주운전 사고로 잃은 사건을 취재한 적이 있다. 그 가족을 인터뷰하는데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이 느껴졌다. 한국어로 표현된 그들의 고통을 듣고, 제대로 전달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컸다.” 어떤 앵커로 남고 싶나. “단순히 화면에 나오는 사람이 아니라, 공동체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람들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하기 위해 노력했던 앵커로 기억되길 바란다. 언론인으로서 내 역할은 이야기에 빛을 비추고, 사회적 연결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있다고 믿는다. 내가 전한 이야기들이 우리가 서로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지를 일깨우고, 공동체 의식을 확장하는 데 기여했기를 바란다.” ☞은 양은 현재 NBC4 워싱턴(WRC-TV)에서 오후 4시와 6시 뉴스의 메인 앵커로 활동하며, 대통령 취임식, 교황 방미, 평창·도쿄 올림픽 등 주요 현장을 취재해 왔다. 이전에는 10년 이상 뉴스4 투데이를 진행하며 속보와 지역 사회 현안을 다뤘다. 또 아시아계 혐오를 심층 조명한 특별 프로그램과 지역 음식 프로그램 푸디스: DC를 맡았다. NBC4 합류 전에는 내셔널 지오그래픽과 WUSA-TV에서 경력을 쌓았으며, 에미상과 에드워드 R. 머로상을 비롯한 다수의 언론상을 수상했다. 지난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나 세 살 때 미국으로 이민 온 그는 메릴랜드대학교에서 언론학을 전공했으며, 한인 남편과 사이에 세 자녀를 두고 있다. 시애틀=김경준 기자한인사회 대표성 한인사회 이야기 한인 언론인들 한인 정체성
2025.08.05.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