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국수 혹은 쌀국수라고 불리는 ‘Pho(포)’의 기원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 베트남 북부 하노이에서 유래했다. 프랑스의 쇠고기 스튜 ‘포토푀(Pot-au-feu)’가 베트남식으로 현지화된 것이다. 쌀국수 면 위에 소뼈와 향신료로 우려낸 맑은 국물, 그리고 숙주, 실란트로(고수), 라임이 어우러진 이 한 그릇은 식민의 흔적을 품은 음식이면서도, 전쟁 이후 세계로 흩어진 베트남 디아스포라가 각국에 남긴 ‘기억의 음식’이기도 하다. 그 소울 푸드는 한인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LA 한인타운 최초의 월남국수집은 6가와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세븐일레븐 쇼핑몰 내 90년대 후반 문을 연 전설적인 ‘Pho LA’였다. 24시간 영업으로, 새벽 2시 술집들이 문을 닫는 시간 손님들이 해장을 위해 몰려들던 곳이었다. 쓰린 속을 달래던 그 한 그릇의 국물은 타운의 또 다른 밤 문화를 만들었다. 고수(실란트로)의 강한 향과 라임의 신맛은 처음 접하는 한인들에게 낯설었지만, 한번 맛을 들이면 끊을 수 없는 중독성으로 다가왔다. 지금은 가정의 필수품이 된 스리라차 소스를 타운에 본격적으로 알린 곳도 바로 포 LA였다. 이때 월남국수의 매력에 빠진 수많은 유학생이 한국으로 돌아가 유행을 주도하기도 했는데, LA의 저렴하고 서민적인 스타일과 달리 한국에서는 월남쌈을 곁들인 고급 요리로 변형된 점은 흥미롭다. 이후 4가와 웨스턴에 ‘Pho Western’이 문을 열며 타운 1등 자리를 꿰찼다. 지금의 ‘Cali Pho nia’ 자리다. 영업을 마친 웨이터들과 단골들이 모여 새벽까지 불야성을 이루던 곳으로, 타운 사람들에게는 ‘새벽 국물집’으로 각인됐다. 1999년에는 드디어 진짜 베트남인 주인이 운영하는 ‘Pho 2000’이 1가와 웨스턴, HK마켓 맞은편에 문을 열었다. 대표 메뉴는 진한 옥스테일(소꼬리) 포. 한국인들이 흉내낼 수 없는 정통 베트남식 국물맛으로 타운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이후 버몬트, 올림픽, 코리아타운플라자 푸드코트 등으로 확장하며 월남국수의 대중화를 완성했다. 지금도 웨스턴점과 코타플 지점은 같은 상호로, 같은 레시피로 명맥을 잇고 있다. 한때 그보다 더 진한 국물의 ‘Pho 4000’도 등장했다. 4가 웨스턴 코너의 작은 식당이었지만, 깊은 국물 맛에 타인종 손님들까지 줄을 섰다. 타운이 지금처럼 다인종화되기 전, 이 음식은 LA의 새벽 공기를 타고 주류의 입맛도 매혹시켰다. 시간이 흘러도 ‘새벽의 월남국수’는 여전히 타운의 문화적 상징이다. 8가 옥스포드의 ‘Thank U Pho’, 6가의 ‘Pho 24’, 버몬트의 ‘Good Pho U’, 그리고 3가의 ‘Pho Legend’까지 이제 한인타운 곳곳에서 국적을 넘나드는 향신료와 국물이 섞인다. 특히 Pho Legend의 ‘분차(Bun Cha)’는 오바마 대통령이 베트남 방문 중 먹으며 화제가 된 메뉴로, 불향 입은 돼지고기와 국물 없는 쌀국수를 느억맘 소스에 버무려 먹는 별미다. 9가와 웨스턴의 ‘K-Town Pho’에서는 월남 샌드위치인 ‘반미’를 투고할 수 있어, 점심 한 끼의 일상식으로 자리잡았다. 타운의 월남국수 지도를 다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웨스턴 길을 따라 2가에는 Pho 2000, 4가의 Cali Pho nia, 7가의 Pho Gyu, 9가의 K Town Pho가 있다. 또 버몬트길을 따라 3가의 Pho Legend, 7가의 Good Pho U가 유명하다. 8가와 옥스포드 Thank U Pho, 6가와 켄모어의 Pho 24, 코타플 푸드코트내 Pho 2000 역시 강자다. 이 월남국수집들은 이국적이지만 한인의 식탁에서 서로의 문화를 포용한다. 그리고 국경을 넘어선 이민자들만의 향기가 배어있다. 라이언 오 / CBC 윌셔프로퍼티 대표K타운 맛따라기 소울푸드 타운 한인타운 곳곳 la 한인타운 코리아타운플라자 푸드코트
2025.10.26. 19:00
차(茶) 한 잔에 담소를 나누고 정을 쌓아온 것은 우리 민족의 오랜 전통이다. 그런면에서 1980년대 초반 문을 연 8가 옥스포드 센터의 ‘여왕봉 다방’은 한국의 다방 문화를 그리워하던 한인들에게 어쩌면 필연과도 같은 존재였다. 계란 노른자를 띄운 쌍화차와 달달한 ‘다방 커피’ 한 잔은 단순한 음료를 넘어 위로와 향수 그 자체였다. 전복죽으로 유명했던 ‘산’ 식당과 숯불집을 성공시킨 박부생 사장의 손에서 탄생한 이 공간은 한인 커뮤니티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후 윌셔길의 한방 찻집 ‘화선지’는 다방과는 결이 다른 멋을 선사했다. 한국 전통 인테리어 속에서 진하게 달인 쌍화차에 꿀을 타고 잣과 대추를 띄워 마시는 여유, 여름날 곶감호두말이와 곁들이는 시원한 수정과는 이민 생활의 작은 쉼표가 되어주었다. 올림픽길의 ‘다루’, 가주마켓 3층의 ‘카페 예’ 등도 떡볶이와 팥빙수, 붕어빵 같은 추억의 메뉴를 한방차와 함께 선보이며 한인들의 발길을 붙들었지만, 이제는 모두 기억 속에만 남게 됐다. 전통 찻집의 시대가 저물고,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대만에서 건너온 ‘보바티(Boba Tea)’였다. 1990년대 초 ‘난다랑’ 쇼핑센터에 문을 연 ‘롤리컵’을 필두로, 물담배(후카)를 곁들인 ‘보바베어’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한인타운 음료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이는 한인 2세대를 중심으로 새로운 소비층이 형성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인들의 도전 정신은 빛을 발했다. ‘I Love Boba’는 한인타운 곳곳에 지점을 내며 프랜차이즈의 가능성을 시험했고, 7가와 버몬트의 ‘보바로카(Boba Loca)’는 보바티 사업의 성공을 발판으로 글로벌 프로즌 요거트 브랜드 ‘요거트랜드(Yogurtland)’를 탄생시키는 신화를 썼다. 필립 장 대표의 작품이었다. 전 세계 350개 지점을 거느린 요거트랜드 성공의 단초가 바로 보바티였던 것이다. 놀랍게도 ‘보바로카’가 떠난 자리에 들어선 ‘잇츠 보바타임(It’s Boba Time)’ 역시 100여 개에 달하는 가맹점을 거느린 기업으로 성장하며, 이 자리가 ‘성공의 명당’임을 입증했다. 최근 한인타운에는 프룻티와 흑당 버블티를 앞세운 중국계 보바숍들의 2차 공습이 거세다. ‘이팡(Yi Fang)’, ‘선라이트 티(Sunright Tea)’, ‘타이거 슈가(Tiger Sugar)’등이 연이어 문을 열었고, 특히 ‘3 Catea’는 타운 내 1등 보바숍으로 자리매김하며 시장의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마차(Matcha)’의 시대가 도래했다. 8가에 문을 연 ‘다모’와 ‘스테거’, 버몬트의 ‘온이스케이프 카페’ 등 타운의 최신 핫플레이스들은 약속이나 한 듯 마차를 가장 인기 있는 메뉴로 내세우고 있다. 특히 올림픽길 라성순부두 코너에 자리한 ‘Rok’에는 매일 수십 명이 줄을 설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으며, 곧 샌게이브리얼밸리와 풀러턴으로도 확장할 계획이다. 다방의 쌍화차에서 보바티를 거쳐 오늘의 마차에 이르기까지, 한인타운의 인기 음료는 시대의 흐름과 세대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모습을 바꿔왔다. 하지만 그 형태가 어떻게 변하든,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으로서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고국의 맛을 그리워하던 1세대부터, 새로운 트렌드를 창조하고 소비하는 2, 3세대에 이르기까지 한인타운의 차 음료 열풍은 유행을 넘어, 이민 사회의 변화하는 정체성과 끈질긴 생명력, 그리고 무엇이든 성공 신화로 만들어내는 한인 특유의 ‘DNA’가 담겨있는 문화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도 한인타운은 여전히 ‘차’와 함께 진화하고 있다. 라이언 오 / CBC 윌셔프로퍼티 대표K타운 맛따라기 쌍화차 마차 한인타운 음료 요거트랜드 성공 한인타운 곳곳
2025.10.05. 1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