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한인타운의 올림픽길은 지리적으로 동서 LA를 잇는 핵심 동맥이자, 이민 1세대들이 삶의 터전을 일군 ‘원조 한인타운’의 맥을 고스란히 품은 길이다. 6가나 웨스턴 중심부가 새로운 상권으로 각광받는 동안, 올림픽길은 오랫동안 ‘옛 한인타운’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져 있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올림픽길은 다시 활력을 되찾으며 한인 커뮤니티의 새로운 식당가로 부상하고 있다. 전통과 변화가 공존하는 가장 역동적인 거리로 재탄생하고 있는 셈이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의 중심에는 ‘라성 브랜드’의 약진이 있다. 전 ‘오야붕’ 자리에 문을 연 ‘라성 순두부’는 오픈 초기부터 화제를 모았다. 이 업소의 젊은 사장은 ‘쿼터스’, ‘강호동백정’, ‘무한’, ‘라성돈까스’ 등을 운영하며 한인타운에서 무패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근처에 문을 연 라성 돈까스도 골목의 분위기를 바꾸는 데 힘을 보탰다. 라성이 불러일으킨 돈까스 열풍에 기존 강자였던 ‘와코(Wako)’에까지 손님이 다시 몰리며 ‘돈까스 역주행’ 성공에 한몫했다. 라성 순두부와 같은 건물에 들어선 카페 ‘Rok’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마차라떼 한 잔을 맛보기 위해 하루 40~50명씩 줄을 세우고 있다. 올림픽길에는 감각적 카페들도 빠르게 늘고 있다. 삼호관광 사옥의 ‘M&Co Cafe’, M Plaza 2층의 ‘M Cafe’, 전 대성옥 건물 코너에 들어선 ‘Memory Look Cafe’ 등은 모두 건물주 직영으로 넉넉한 공간과 넓은 주차장을 무기로 손님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베이커리 전선도 치열하다. 한국 대형 프랜차이즈가 잇달아 진출하는 가운데, LA 토종 브랜드 ‘아만다인(Amandine)’이 올림픽 함흥냉면 쇼핑센터에서 당당히 버티며 존재감을 지키고 있다. 인근에는 뚜레쥬르(한남마켓 센터), 빠리바게트(라성순두부와 같은 건물)가 들어서며 베이커리 삼국지가 펼쳐지고 있다. 아만다인 쇼핑센터에는 명인만두, 하이트 광장, 그리고 한국에서 미쉐린 추천을 받았다는 ‘게방’까지 새롭게 합류하며 상권이 한층 풍성해졌다. 올림픽길의 중식당 전통도 여전하다. 한인타운 중식의 마지막 자존심이라 할 만한 ‘신북경’과 ‘연경’이 이 거리를 지키고 있다. 연경 옆에 새로 문을 연 ‘서울분식’은 모든 단품 메뉴를 5달러로 고정하는 파격 전략으로 손님몰이에 나섰다. 새 아파트 개발도 상권의 분위기를 바꾸고 있다. 한국 반도건설이 지은 ‘보라 아파트’ 1층에는 일본식 그랩앤고 콘셉트로 인기를 끄는 ‘야마스시(Yamasushi & Marketplace)’가 들어섰고, 같은 건물에는 하나은행, Van Dyke 커피, 그리고 공사 중인 진솔국밥 순두부집까지 들어오며 거리가 더욱 활기를 띠고 있다. 올림픽길 특유의 ‘넓은 스펙트럼’은 고기집에서도 드러난다. 무제한 랍스터를 즐길 수 있는 ‘TGI K-BBQ’, 웨스턴으로 이전한 양마니 자리에 들어선 ‘꼰대돼지’도 눈길을 끈다. 이 밖에도 올림픽길은 오랜 시간 한인 식문화의 뿌리를 지켜온 곳이다. 대표적인 올드타이머 식당인 ‘강남회관’, ‘청기와’, ‘조선갈비’, ‘서울회관’, ‘소반’ 등이 여전히 건재한다. 또 ‘샤부야’, ‘죽향’, ‘선하장(오리구이)’, ‘풍무 양꼬치’, ‘감자골 감자탕’, ‘올림픽 칼국수’, ‘올림픽 청국장’, ‘장안된장’ 등 전문 맛집들도 여전히 성업 중이다. 한때 ‘옛 타운’으로 불리던 올림픽길은 이제 과거의 향수와 새로운 트렌드가 공존하는 한인타운의 ‘제2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거리가 되었다. 이민 1세대가 남긴 기억 위에 새로운 세대의 맛과 문화가 더해지면서, 올림픽길은 다시 한 번 LA 한인타운의 중심 무대로 돌아오고 있다. 라이언 오 / CBC 윌셔프로퍼티 대표K타운 맛따라기 올림픽길 부활 사이 올림픽길 동안 올림픽길 한인타운 중식
2025.11.30. 17:05
1970년대 후반, 낯선 땅 LA에 첫발을 디뎠을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설레는 마음으로 한국식 짜장면을 주문했지만, 눈앞에 놓인 것은 단무지 한 조각 없이 덩그러니 놓인 생양파와 춘장뿐이었다. 그나마 위안이 된 것은 낯선 ‘양배추 김치’가 곁들여 나왔다는 점이었다. 당시만 해도 단무지를 한인 마켓에서 꽤 비싼 값을 치르고 따로 사야 했던 시절이었다. 1970~80년대 LA에서 제대로 된 한국식 짜장면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1978년, 현재 올림픽 길의 TGI 바비큐 자리에 ‘기린원’이라는 중식당이 터를 잡았다. 이 업소의 주인은 훗날 ‘용궁’으로 명성을 떨쳤던 사장이었다. 웨스턴 애비뉴의 ‘왕관반점’, 8가의 ‘왕궁’ 등은 그보다 한참 뒤에 등장했다. 또 간짜장과 탕수육 등 튀김 요리명성이 자자했던 ‘연경’, 한때 한인 사회 돌잔치 시장을 석권했던 ‘신북경’, 현 이태리안경 렌즈랩 부지의 ‘경화반점’, 버몬트 애비뉴에 대형 연회장을 갖췄던 ‘용궁’, 그리고 올림픽 길 뒷골목 재개발로 건물조차 사라진 ‘만리장성’ 등 언급된 대부분의 업소는 기린원 이후 시대를 열었다. 기린원과 비슷한 시절 한인 중식당의 또 다른 강자로 부상한 곳은 ‘진흥각’이다. 매콤하면서도 깊은 국물의 짬뽕은 순식간에 입소문을 탔고, LA에서도 한국식 중식당 앞에 긴 줄이 늘어서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당시만 해도 식당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문화가 생소했던 시절이다. 그래서 매번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푸념하면서도, 며칠을 견디지 못하고 그 얼큰한 짬뽕 국물에 대한 강렬한 이끌림에 다시금 발걸음을 향했다. 그곳의 짬뽕 한 그릇은 기다림의 불만을 한순간에 잊게 하는 마법과도 같은 힘을 지녔다. 진흥각을 일군 형제들은 이후 8가, 코리아타운 플라자, 갤러리아 마켓, 다운타운, 밸리, 글렌데일 등지에 잇따라 지점을 확장하며 LA 한인타운 중식의 역사를 새로 썼다. 한편, ‘저가 짜장면’을 앞세워 한인타운 중식 업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업소도 등장했다. ‘소용궁’의 출현은 타운 중식당 업계에 일대 지각 변동을 예고했다. 가격 경쟁이 심화되면서, 이에 맞서 진흥각 역시 새우 크기를 줄이고 오징어와 홍합을 잘게 썰어 넣는 등 원가 절감을 위한 치열한 경쟁에 돌입했다. 이는 타운 중식 업계 경쟁 구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였다. 진흥각의 전성기가 서서히 저물 무렵, 한인타운에는 추억 속의 ‘옛날식 짬뽕’이 다시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커다란 새우 두 마리, 꽃게 반 마리, 그리고 푸짐한 홍합, 조개, 오징어가 듬뿍 들어간 넉넉한 인심의 짬뽕이었다. ‘주막’, ‘원산면옥’, ‘황태자’를 운영하던 형제들 중 막내 사장이 6가 ‘알베네’ 자리에서 ‘옛날 짬뽕’이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인 성공을 거두게 된다. 현재 그 자리에는 ‘양지감자탕’이 성업 중이다. 그 뒤를 이은 후발주자들로는 한국 프랜차이즈인 ‘홍콩반점’과 ‘짬뽕지존’이 돋보인다. 윌셔길에 있는 짬뽕지존은 무봉리 순대 사장 등 몇몇 투자자들이 사업 확장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프랜차이즈의 상륙은 로컬 식당 위주였던 한인타운 중식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밖에도 배달 서비스로 강세를 보이는 ‘짜몽’은 혼밥족에게도 부담 없는 물짜장 스타일의 짜장면과 콩나물이 푸짐한 짬뽕이 특징이다. 혼밥족에게 인기 있는 또 다른 짬뽕 전문점은 ‘뽕’이다. 최근 사발 크기가 커지고 해산물 양도 늘어나면서 만족도를 높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식 업계 가장 최근 소식은 로텍스 호텔에 있던 고급 중식당 ‘홍연’이 버몬트길의 옛 ‘용궁’ 자리로 대규모 확장 이전한 것이다. 200석 규모의 연회장과 20여 개의 룸을 포함, 총 500석 규모를 자랑하는 ‘홍연’은 멘보샤, 동파육 등 수준 높은 요리를 맛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꼽힌다. 이렇듯 LA 한인타운의 중식 역사는 세대의 변화와 고객 요구에 맞춰 끊임없이 변모하고 발전해 왔다. 단무지로 시작한 이야기가 길어졌다. 돌이켜보면, 그때 단무지 한 조각의 부재는 단순히 음식이 아닌, 타향살이의 서글픔과 고국 음식에 대한 간절함을 상징했다. 그래서 중식당은 한인 이민자들의 중요한 모임 장소이자 소통 공간으로 이어져왔다. 이민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중식당들이 앞으로도 새로운 추억의 맛으로 한인들을 즐겁게 해주길 기대한다. 라이언 오 CBC 윌셔프로퍼티 대표K타운 맛따라기 단무지 조각 한국식 중식당 한인타운 중식 타운 중식당
2025.05.04. 1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