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형주 셰프, 한국·일본·뉴욕을 거친 다문화 미식 여정 “K-파인다이닝의 새로운 문법을 쓰다”
수백 달러를 호가하는 테이스팅 메뉴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뉴욕 파인다이닝 시장에서 오픈 약 1년 만에 미쉐린 1스타를 거머쥔 레스토랑이 있다. 놀라운 건 그 무대가 맨해튼 헤럴드스퀘어 지하철역 안이라는 사실이다. 글로벌 다이닝 전문가 마이클 리멘슈나이더(Michael A. Riemenschneider)의 ‘뉴욕 톱 20 레스토랑’에 이름을 올리고, 미쉐린 가이드가 직접 조명한 레스토랑 녹수(NOKSU). 최근 뉴욕 미쉐린 가이드에서 K-푸드가 주류로 자리 잡는 흐름 속에서 단숨에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한 이 공간의 중심에 한형주(Hyoungju Han) 셰프가 있다. Q. 지하철역 안에 레스토랑이 있다는 것 자체가 화제이다. 처음 이 공간을 접했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 뉴욕에서 수백 달러짜리 테이스팅 메뉴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시장에서, 지하철역 안에 파인다이닝을 만든다는 발상 자체가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지하철의 혼잡함을 지나 문을 열면 온전히 15석의 카운터와 오픈 키친에만 집중할 수 있는 프라이빗한 세계가 펼쳐지며, 다이닝 경험의 일부가 된다. 스피크이지(Speakeasy) 콘셉트처럼 아는 사람만 찾아오는 비밀스러운 공간, 그 안에서 최고의 요리를 선보인다는 것이 녹수만의 가장 강력한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 Q. 주방 환경이 제한적이었을 텐데, 고도화된 코스 메뉴를 어떻게 완성했나? 녹수의 주방은 화재 위험 때문에 가스 화구를 쓸 수 없다. 파인다이닝 주방으로서는 치명적인 악조건이지만, 오히려 새로운 조리 기술을 도입하는 기회로 삼았다. 불을 최소화하는 대신 피클링, 드라이 에이징, 그리고 한국의 전통 발효 등 세밀한 기법을 테이스팅 코스 전반에 적용했다. 제약이 오히려 식재료 본연의 풍미를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Q. 녹수의 요리는 한식과 노르딕의 결합으로 알려져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인가? 일식·한식·노르딕은 전혀 다른 문화처럼 보이지만, 사실 모두 ‘발효’라는 공통점과 재료 본연의 맛에 집중한다는 점도 같다. 저는 바로 이 지점을 연결해 기존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고자 했다. 플레이팅만 보면 한식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한 입 먹어 보면 한식이라는 걸 바로 알 수 있다. Q. 뉴욕 진출 전 일본 교토 가이세키 경험이 특히 중요했다고 들었다. 일본어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117곳에 이력서를 넣었다. 무모하다고 할 수 있지만, 하이엔드 일식을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열망 하나였던 것 같다. 운 좋게 일본 교토의 정통 가이세키 레스토랑에 합류하게 됐는데, 처음에는 구글 번역기와 손짓·발짓·표정으로 소통했다. 하루 15시간이 넘는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일본어를 공부했다. 언어와 문화 차이로 인해 정말 힘든 시간이었지만 모든 이들이 가족처럼 대해줬고, 요리 인생에서 가장 많은 것을 배운 기간이었다. 이러한 경험이 지금 뉴욕에서 나만의 체계적인 메뉴 R&D를 전개하는 가장 든든한 자산이 됐다. Q. 작은 레스토랑에서 다국적 팀을 운영하는 방식이 흥미롭다. 셰프님만의 리더십이 있다면? 녹수의 주방은 한국·미국·과테말라·싱가포르 등 전 세계에서 모인 셰프들이 함께한다. 주방 규모가 작기 때문에 한 명 한 명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매일 서비스 전 특이사항을 공유하고, 서비스 후에는 잘한 점과 부족한 점을 가감 없이 복기한다. 짧으면 10분, 길면 2시간이 넘기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서로의 문화와 의견을 존중하는 방법이 녹수가 일관된 품질을 유지하는 핵심이다. 팀 전체의 호흡을 조율하고, 요리의 완성도를 이끌어내는 것이 저의 역할이다. Q. 뉴욕 주류 미디어의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 한형주 셰프가 그리는 K-파인다이닝의 다음 비전은 무엇인가? 현지 매체들이 뉴욕의 지하철 문화(Subway Culture)와 결합된 우리의 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해 주어 감사하다. 궁극적인 비전은 한국의 미식을 주류(Mainstream)로 당당히 올려두는 것이다. 현재 한국 고유의 발효 기술과 식재료는 파인다이닝 시장에서 강력한 무기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과제도 명확하다. 일본 식재료는 최상의 퀄리티로 단 하루 만에 뉴욕에 도착하는 반면, 한국 식재료는 수급이 불안정하고 발효 등 전문 조리 인력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K-파인다이닝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탄탄한 공급망과 인력 양성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제 속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요리로 돌파구를 찾는 것이다. 뻔한 한식의 틀을 넘어, 옛 ‘고조리서’에 숨겨진 무궁무진하고 독창적인 레시피들을 저만의 현대적인 기법으로 재해석할 계획이다. 뉴욕의 접시 위에 한식의 다음 장(Next Chapter)을 쓰는 것, 그것이 지금 제가 가장 집중하고 있는 목표이자 사명이다. 정현식 기자일본 한형주 뉴욕 진출 레스토랑 녹수 최근 뉴욕
2026.04.09. 1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