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뜨락에서] 고달픈 서류 미비자들
아침마다 우리 가게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맨해튼으로 출근한다. 햇볕이 따스하게 비추는 사거리 모퉁이에는 일용직 구직원이 모여 있다. 가게 문을 열고 커피를 내리고 대충 정리를 하고 아침을 먹으려고 재봉틀 앞에 앉으면 구직자나 출근자들의 발걸음이 뜸하다. 아침을 먹고 나서 밖을 내다보면 매일같이 비슷한 시간에 노인 부부가 큰 수레를 끌고 쓰레기통을 뒤져 소다 캔과 물병과 플라스틱 물병을 주워 담는다. 두 사람 손에는 고무장갑이 끼어있다. 맨손을 본적이 없다. 하루에 몇 마일을 걷는지 모르지만, 저녁 시간이 되면 소형차 크기의 자루에 넣은 병들을 2개씩 싣고 팔러 가는 것 같다. 아침에는 할아버지가 빠른 걸음으로 앞서가지만 큰 짐을 싣고 팔러 갈 때는 할머니가 앞서고 뒤에서 할아버지는 할머니 자루가 떨어지지 않나 살피면서 수레를 끌고 간다. 가끔 나는 물병을 모아 큰 플라스틱 백을 가득 채워 할머니나 할아버지에게 전하지만 고맙다고 인사하거나 그 흔한 땡큐 소리도 하지 않는다. 미국에 온 지 오래되지 않은 것 같다. 자그마한 체구에 걷는 속도가 무척 빠르다. 더운 날씨에는 줍는 양이 많아 자루가 꽉 채워 무척 크지만, 비가 오거나 쌀쌀한 날은 자루가 크지 않다. 이상하게 몇 주째 두 노인 부부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 가게 같은 건물에 사람들이 음식 주문을 하고 픽업하는 중국 식당이 있었다. 온 가족이 가게에서 일했다. 두 딸을 낳아서 학교에 보내고 친정엄마까지 불러들여 아이들을 돌보고 5~6년 가게를 운영했는데 갑자기 문을 닫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관리인에 따르면 비자가 만료되었다고 하는데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도 않고 주방기구 하나 가져가지 않고 가게를 닫은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작년 가을이었는데 지난 3월 갑자기 우리 가게에 이민세관단속국(ICE) 직원 두 명이 왔다. 나는 ICE 카드가 두 사람 목에 걸렸는데 무엇인지도 모르고 가만히 서 있었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나에게 이민세관단속국에서 왔다고 자세히 설명했다. 깜짝 놀랐다. 나는 여기에 오래 살았고 불법 체류자가 아니라고 강변했다. 그랬더니 중국 음식점을 이야기하며 언제 문을 닫았고 누구누구 일을 했느냐고 묻는다. 나는 중국 사람도 아니고 중국 음식을 좋아하지 않고 그 가게에 가지 않아 모른다고 대답했다. 갑자기 내 머릿속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불법체류자 단속한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내 앞에 ICE 직원이 나타났다는 사실에 놀라 넘어 질뻔 했다. 죄도 없이 덜덜 떨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정말 뉴스에서 듣던 사실을 현실로 접하고 나니 반세기가 지나도록 영주권 보자는 사람이 없었다. 영주권이나 여권은 해외여행 시나 필요했지 일상생활에서는 쳐다보지도 어디에 두었는지도 모르고 지냈다. 어느 누가 말했던가. 영주권이 없는 사람은 오밤중에 소방차가 윙윙 소리를 내고 지나가도 자기 잡으러 오나 싶어 집에서도 숨는다고 했다. 이 정부가 들어서면서 일용직이나 서류미비자 들이 쥐구멍에서 숨을 쉬고 있다. 가게 앞을 지나치던 많은 사람들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 서로서로 연결되어 집 청소를 하거나 주인이 여행을 떠나면서 개나 고양이 돌봐주는 일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세탁소를 운영하는 멕시코 친구는 일하는 사람들이 영주권 가진 자가 없어 한밤중에 일을 하고 새벽이 되기 전에 퇴근시킨다고 했다. 영주권은 없지만 주어진 일터에서 일하고 세금 내고 정상적으로 사는 사람들마저 불안에 떨고 있는 지금이 자유로운 미국은 아닌 것 같다. 양주희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미비자 서류 서류 미비자들 할머니 자루가 일용직 구직원
2025.06.23. 2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