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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디지털 시대에 부활한 ‘할머니 취미’

스마트폰을 덜 보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무엇일까.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스마트폰을 켜는 것이다. 그리고 ‘뜨개질 하는 법’, ‘자수 기초’, ‘컬러링 추천’ 같은 영상을 찾아본다. 디지털을 벗어나기 위해 다시 디지털로 돌아가는 것이다.   최근 젊은 층 사이에서 이른바 ‘할머니 취미’가 유행이다. 뜨개질, 자수, 퍼즐, 컬러링처럼 손을 쓰는 취미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과거 중장년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활동이 이제는 새로운 여가 문화로 자리 잡았다.     그 배경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피로감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쇼트 폼 영상과 알림, 무한 스크롤에 지친 사람들이 이제는 느리고 단순한 활동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하지만 이런 변화의 출발점은 여전히 디지털이다. 자수를 배우기 위해 유튜브를 보고, 뜨개질 패턴은 인스타그램에서 찾는다. 온라인 강의 플랫폼에서 도예를 배우고, 완성된 작품은 다시 SNS에 공유한다. 디지털을 떠나기 위해 시작한 취미가 결국 다시 디지털로 돌아오는 구조다.   이 현상은 지금 시대의 현실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준다. 디지털을 완전히 끊는 것은 더는 선택이 아니다. 대인관계와 일, 정보가 모두 스마트폰 안에 들어와 있는 상황에서 그것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일상의 일부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방향을 바꾼다. 소비하던 시간을 생산의 시간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짧은 영상 하나를 보고 다음 영상으로 넘어가는 대신, 한 땀 한 땀 자수를 놓는다. 몇 초 만에 소비되는 콘텐츠 대신 몇 시간을 들여 하나의 결과물을 만든다. 속도는 느려졌지만, 대신 손에 남는 것이 생긴다. 빠르게 소비한 콘텐츠는 쉽게 잊히지만, 직접 만든 결과물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이러한 흐름은 개인의 취미를 넘어 새로운 방식의 연결로도 이어진다. 온라인에서 정보를 얻고, 오프라인에서 함께 작업하며 관계를 형성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공방과 클래스에는 젊은 층이 늘고, 취미를 매개로 하는 커뮤니티가 활성화되고 있다. 디지털은 출발점이 되고, 아날로그 활동은 관계를 유지하는 방식이 된다. 동시에 이런 변화는 새로운 기회로도 이어진다. 손작업을 통해 만든 결과물을 온라인에 공유하며 개인 브랜드를 구축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취미가 곧 콘텐츠가 되고, 콘텐츠가 다시 수익으로 연결된다. 디지털을 벗어나려던 시도가 오히려 또 다른 방식의 디지털 활동으로 확장되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가장 큰 변화는 ‘속도’에 대한 인식이다. 디지털 환경에서는 빠를수록, 많이 소비할수록 효율적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활동에서는 정반대의 가치가 중요하다. 천천히 반복하고, 시간을 들여 완성하는 과정 자체가 의미가 된다.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하는 경험은 빠른 소비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새로운 감각을 제공한다. 집중력의 회복이라는 측면에서도 이 흐름은 재미가 있다. 짧고 강한 자극에 익숙해질수록 한 가지에 오래 몰입하는 능력은 점점 약해진다. 반면 손작업은 자연스럽게 집중을 요구한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다시 집중하는 법을 배운다. 어쩌면 ‘할머니 취미’의 부활은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으려는 시도일지도 모른다.   물론 이 흐름이 디지털 피로를 완전히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여전히 많은 사람은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끊임없는 정보 속에서 피로를 느낀다. 그러나 변화는 시작됐다. SNS를 통해 배운 취미로 SNS에서 벗어나려는 이 움직임은,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스스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에 가깝다. 완전히 끊을 수 없다면 덜 휘둘리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 어쩌면 그 짧은 전환이 이 시대가 찾아낸 가장 현실적인 해답일지 모른다. 송윤서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디지털 할머니 디지털 활동 디지털 피로 할머니 취미

2026.03.24.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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