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서라도 안식을…" 무연고자 합동장례식
이름을 불러줄 사람조차 없던 무연고자들이 이제야 평온히 잠들었다. 마지막 배웅의 길에는 향과 꽃이 가득했다. 지난 11일 오전 10시, LA시가 주관하는 무연고자 합동 장례식이 보일하이츠 시립 화장터에서 열렸다. 이날 합동 장례식을 치른 2308명의 유골은 2022년에 사망한 이들이다. 이들이 묻힐 묘지에는 개인의 이름 대신 ‘2025’라는 합장 연도가 새겨진다. 장례식에는 자원봉사자와 주민, 정부 관계자 등 약 150명이 참석해 무연고자들을 추모했다. LA카운티 재니스 한 수퍼바이저는 “이들은 우리와 같은 길을 걷고, 같은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같은 햇살을 좋아하던 사람들이었다”며 “2308명 각자의 삶을 자세히 알 수 없고, 그들의 기억을 기릴 수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무연고자의 상당수는 노숙자 등 사회적 취약계층이다. 이날 합동 장례식의 2308명은 끝내 외면당한 영혼들이다. 검시국에 따르면 무연고자 시신이 발견되면 검시를 마친 뒤 가족 또는 지인에게 인계를 문의하기 위해 사망자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확인하는 절차가 진행된다. 겨우 신원 파악이 되서 유가족 또는 지인과 연락이 닿더라도 대부분 인계를 거부한다. 이럴 경우 LA시는 유골을 3년간 보관한 뒤, 끝까지 인계가 되지 않으면 합동 장례식을 연다. 이날 장례식은 약 1시간가량 이어졌다. 불교, 기독교, 가톨릭, 이슬람, 유대교 등 종교별로 장례 의식이 진행됐다. 기독교의 주기도문은 한국어를 비롯한 영어, 스페인어, 타밀어, 이탈리아어 등 5개 언어로 낭독됐다. 이날 합장된 무연고자들은 생전 서로 다른 인종, 언어, 종교를 가졌겠지만 마지막은 한 줌의 재가 되어 함께했다. 합동 장례식에서 무연고자들을 추모한 스테파니 강 목사(채플린)는 “생전에는 다른 피부색, 정치적 이념, 종교 등으로 서로 싸우며 살지만, 이곳에서는 그 모든 구분이 사라진다”며 “마지막이라는 것은 모두가 하나가 되어 자유를 누리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물론 합동 장례 이후 뒤늦게 가족이 나타나 이름이 새겨진 비석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시립 화장터 한쪽에는 2017년 합장된 유골 중 뒤늦게 가족과 연락이 닿아 ‘김태완’이라는 한인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도 놓여 있다. 올해 합장된 이들중에서도 한인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확한 수는 공개되지 않았다. 강 목사는 “채플린 사역을 한 지 10여 년 정도 됐는데 무연고자 중 한인들이 생각보다 많다”며 “가족에게 사망 소식을 알리지만 ‘이미 기억에서 지웠다’며 인계를 거부하는 사례도 종종 발생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아 화장을 진행했는데, 이후 뒤늦게 가족이 연락해 ‘왜 화장했느냐’며 울며 항의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LA카운티에서는 하루 평균 약 7명이 길 위에서 생을 마친다. 1896년 처음 시작된 무연고자 합동 장례식은 129년이 지난 지금도 매년 12월 이어지고 있다. 송윤서 기자합동장례식 무연고자 무연고자 합동장례식 무연고자 시신 합동 장례식
2025.12.11. 2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