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A&M대학교에서 라임병 백신을 연구하던 한인 과학자 김태흥 씨가 4개월간의 구금 끝에 지난 11월 15일 석방됐다. 미국에 35년 넘게 거주한 영주권자가, 범죄 재판도 아닌 이민 단속으로 수개월간 구금된 이 사건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집행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 근본적 물음을 던진다. 김 씨의 구금은 지난 7월 21일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서 시작됐다. 한국에서 열린 남동생 결혼식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기쁨으로 돌아와야 할 귀국이 순식간에 악몽으로 바뀌었다. 그를 맞이한 건 가족이 아니라 이민세관단속국(ICE)과의 끝없는 싸움이었다. 이 사건이 충격적인 이유는 그 자의성에 있다. ICE는 구금 사유를 명확히 설명하지 않았다. 집요하게 묻자 세관국경보호국(CBP)은 2011년의 경미한 마리화나 소지 혐의를 언급했다. 소량 마리화나 소지로 법원 명령에 따라 사회봉사를 마친, 13년 전 일이었다. 이런 사소한 전력 하나로 합법적 영주권자를 100일 넘게 가두는 것은 상식과 비례 원칙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올해 마흔 살인 김 씨는 다섯 살에 미국으로 이주해 이곳에서 성장하고 학업과 경력을 쌓아왔다. 그러나 이 모든 이력은 공항 입국심사대 앞에서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는 2차 심사로 끌려간 뒤 곧바로 구금됐고, 이후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텍사스의 여러 구치소를 전전하며 변호인 접견과 기본적 적법절차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다. 사건의 결말은 이민당국의 논리가 얼마나 허약했는지를 드러냈다.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NAKASEC)에 따르면, 국토안보부는 이민 법원 절차에서 김 씨의 체포와 구금을 정당화할 서류조차 제출하지 못했다. 결국 사건은 기각됐지만, ICE는 김 씨를 추가로 나흘 더 붙잡아 뒀다. 정당한 구금 사유가 있었다면, 왜 기본 서류 하나 제대로 내지 못했을까. 이 사건은 이민 단속이 일단 가둬 놓고 나중에 이유를 찾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낳는다. 이민권 옹호 단체들은 김 씨 사례를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강화된 공세적 반이민 정책의 전형으로 본다. 법 절차와 인간 존엄성보다 ‘힘의 과시’가 우선되는 구조라는 것이다. 영주권을 가진 합법 이민자가 아무 설명도 없이 끌려가 당국이 뒤늦게 구실을 끼워 맞추는 동안 몇 달씩 갇혀 있을 수 있다면, ‘합법 신분’이란 과연 무슨 의미인가. 지역사회의 대응은 눈에 띄게 조직적이었다. 가족들은 NAKASEC의 이민 단속 핫라인에 도움을 요청했고, 곧바로 연대 캠페인이 시작됐다. 140건 넘는 항의 전화, 2000명 이상의 탄원서 서명, 120건의 이메일이 연방의원과 관련 기관으로 쏟아졌다. 이민권 옹호 단체들은 의원 보좌관들과 8차례 면담했고, 김 씨 어머니는 지난 8월 방미 중이던 이재명 한국 대통령에게 친필 편지를 전달했다. 이런 풀뿌리 움직임이 결국 석방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점은, 집단적 행동으로 여전히 정부의 권한 남용에 맞설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질문도 던져야 한다. 이만큼의 네트워크와 지원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가족, 시민단체, 언론, 정치권의 도움 없이,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채 구금 시설 어딘가에서 조용히 시간을 흘려보내는 이들은 없는가. 김 씨 사례를 단순히 ‘특이한 사건’으로 치부한다면, 합법적 지위가 언제든 공허한 말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경고를 놓치게 될 것이다. 수정헌법 제5·6조는 적법절차와 변호인 조력을 받을 권리를 보장한다. 이 권리는 국경 검문소나 이민법정 문 앞에서 사라져선 안 된다. 유년기부터 미국에서 살아온 영주권자가 13년 전 경범죄를 이유로 4개월 동안 구금될 수 있다면, 이 나라가 약속해온 ‘법에 따른 보호’는 얼마나 믿을 수 있는가. 김 씨는 이제 가족 품으로 돌아와 중단됐던 연구를 이어갈 수 있게 됐다. 그러나 4개월간의 구금은 그와 가족, 그리고 이 나라 법치주의에 대한 신뢰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김 씨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우리 모두가 감시와 책임 추궁, 그리고 원칙 재확인에 적극 나서야 한다. 미국에서 시민이든 이민자든 누구도 명확한 법적 근거와 적법절차 없이 구금되어선 안 된다는 가장 기본적인 약속이 다시 한번 분명히 확인되어야 한다. 이무영 / 뉴스룸 에디터중앙칼럼 체류자 합법 합법적 영주권자 합법 이민자 합법 신분
2025.12.08. 19:36
들리는 고생담 이해하지만 위장결혼·돈거래 얘기 씁쓸 편법보다 정당한 길 찾아야 인턴생활과 함께 미국을 경험한 지 석 달째가 접어들었다. 그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흥미롭게도 "너 신분 해결 잘해라!"였다. 처음에는 불법체류가 아닌데 왜 저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정확히 두 달째부터 왜 그런 말들을 하는지 와 닿았다. 미국에 거주하는 많은 한인들이 기간이 정해진 비자를 갖고 임시로 와 있거나, 아니면 비자 기간 만료를 넘겨 불법체류자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런 사람들에게 합법 신분만큼 절실한 것은 없는 것 같았다. 또 나처럼 인턴 생활을 하거나 유학생들도 크게 관심 갖는 부분이 '어떻게 하면 향후 합법적으로 미국에 정착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라는 것도 알았다. 미국에서 안정적으로 살려면 합법적으로 취업할 수 있는 비자를 받거나 영주권을 획득해 '신분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최근 미국도 구인난이 확대되며 기업들은 우수한 인재를채용하는데 애를 쓰고 있지만, 영주권 없이 살고 있는 한인들은 이런 기회를 잡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러니까 ‘신분 해결 잘 하라’는 얘기는 미국 생활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면 무엇보다 '영주권 취득'에 관심을 갖고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조언이었다. 알고 보니 영주권자와 비 영주권자의 혜택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영주권자의 혜택은 크게 ▶은퇴연금, 장애연금, 유가족 연금, 메디케어, 메디케이트 혜택 ▶생활보조비, 기초생활대상자 지원금, 푸드스탬프 등 생활보조 혜택과 각종 법률·보험·세금 혜택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권리 ▶마음대로 출입국 가능한 해외여행의 자유 ▶배우자도 영주권을 받고 동일한 혜택을 받을 권리 ▶고등학교까지 자녀 학비 무료 혜택 등이다. 또 영주권은 한 번 받으면 특별한 하자가 없는한 추가 신청할 필요가 없으며 영주권 취득 후 5년이 지나면 시민권 신청도 가능하다. 이런 영주권 취득을 위해 많은 한인들이 애를 쓰지만 내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영주권 받기가 녹록하진 않아 보였다. 불안한 신분을 어렵게 이어가며 한 회사에서 몇 년째 일하고 있음에도 영주권 얘기는 꺼내지도 못했다는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1년 이후 영주권 신청이 가능하다는 약속을 믿고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회사 측에서 스폰서 지원을 계속 미루고 있어 애를 태우는 경우도 있었다. 영주권 취득이 이렇게 쉽지 않다 보니 시민권자와 결혼해 배우자로서 영주권을 받는 방법을 이용하는 사람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실제로 미국서 알게 된 분의 지인 중에 영주권 취득을 위해 서류상으로만 결혼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말로만 들었던 ‘위장결혼’이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며 눈이 동그래진 나에게 "미국에선 신분이 가장 중요하다"며 "미국 체류가 필요한데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하는 많은 사람이 선택하는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물론 이럴 경우, 다는 아니지만 돈거래가 뒤따르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 밖에도 신분 해결을 위해 다양한 경로로 정보를 접하고 실행에 옮기는 이야기들이 많이 들렸다. 하지만 20대 입장에서 봤을 때 신분 해결이라는 결과만을 위해 정당한 방법이 아닌 편법을 이용하는 것이 옳은지는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비자나 신분 해결이 중요하긴 하지만, 불법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은 결국 범죄이며, 그 과정에서 생길 있는 금전적 혹은 정신적 피해, 나아가 추후에 닥쳐올 수 있는 부정적인 결과에 대해 어떤 누구도 자신을 보호해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난 이제 겨우 석 달 살아봤지만 지낼수록 미국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을 줄로만 알았던 ‘신분’이라는 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인턴 생활이 끝난 뒤 내가 어떤 진로를 선택할지는 지금 당장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미국에서 계속 꿈을 펼쳐봐야겠다는 확신이 든다면, 불법적 방법이 아닌 당당하고 떳떳하게 신분문제 해결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미국은 노력과 정직에 대해 높은 점수를 부여하는 사회라, 조금은 불편하고 빠르지 않은 길이라도 정직한 길을 꾸준히 걷는 사람에게는 분명 그 길이 오리라고 생각한다. 김태은 인턴기자 김태은 인턴기자인턴기자 애틀랜타 신분문제 해결 신분 문제 합법 신분
2022.04.01. 2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