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에 들렀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직원들을 보면서 30년 전의 일이 생각났다. 갓 이민와 직장을 찾던 참이었다. 창구에서 유니폼을 입고 친절한 미소를 짓는 미국 아저씨를 보면서 저런 일이라면 나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체국 직원 모집 공고가 났다. 분류직에 지원했다. 배달원들이 정확하고 신속하게 배달하도록 도와주는 일이라 했다. 경력이 쌓이면 창구 직원으로 일할 수 있다고 했다. 시험을 치르고 합격했지만 발령을 기다려야만 했다. 미국은 카드 문화의 나라다. 떨어져 사는 많은 사람이 카드를 통해 인사를 나누며 살아간다 거기다 미국 땅은 또 얼마나 넓은가. 그 문화는 일찍이 어마어마한 량의 우편물을 만들어 냈다. 우체국에 편지와 카드만큼 많았던 것이 청구서와 지불수표(payment check)였다. 지불 마감 시간 때문에 우체국 직원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미치다’라는 영어가 ‘going crazy’가 아니라 ‘going postal’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내가 합격할 즈음 바코드를 읽을 수 있는 기계가 개발되었다. 그로 인해 우체국은 엄청난 숫자의 직원을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불과 반세기도 안 돼 그 획기적인 기계도 퇴물 위기에 놓이게 된다. ‘Paperless’, 종이가 사라지는 시대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컬버시티의 게이트웨이 우체국에 발령이 났다. 합격한 지 2년이 지난 후였다. 미국 공무원이 된 것이다. 철밥통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이제 미국에서 내게 무슨 일이 나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었다. 든든했다. 우편물이 주소지로 나가는 오전 10시에 맞추어 새벽 3시30분부터 분류가 시작되었다. 창구 뒤는 커다란 기계들이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공장과 같았다. 기계에서 누락되는 우편물은 사람이 분류했다. 나는 기계 작동하는 곳에 배치되었다. 기계는 미국 사람 표준 키에 못 미치는 동양인에게는 꽤 높았다. 기계 위에 올려놓아야 하는 상자에는 우편물이 가득 담겨 있었다. 무거운 종이 다발 상자를 어깨 위까지 들어 빠른 속력으로 움직이는 기계 위에 얹어야 했다. 하루에 50번, 70번, 100번을 얹었다. 창구에서 본 미소는 거짓이었다. 막노동, 그 자체였다. 4년이 지나도 종이의 무게는 돌처럼 무겁기만 했다. 매일 어깨가 빠질 것 같았고 뻣뻣해진 목은 잘 돌아가지도 않았다. 집안일은 물론 애들 키우기도 힘들었다. 창구까지 가기도 전에 죽을 것 같았다. 퇴근길 차에서 혼자 울 때도 많았다. 시험 준비기간까지 합해 5년이 넘는 세월을 ‘우체국’에서 보낸 셈이었다. 나의 수고, 나의 열정이 허무와 공허로 밀려왔다. 남은 인생을 꼭 여기서 이렇게 견디어야 하나. 다른 길은 없는가. 그렇다. 이곳은 미국이다. 기회의 나라가 아닌가. 내게 또 다른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5년이면 충분하다. 나는 미련 없이 백기를 들었다. “여기서는 항복!” 그렇게 미국 생활 1막을 마무리했다. 다시, 뚜벅뚜벅 2막 인생을 걷기 시작했다. 마야 정 / 수필가이 아침에 우체국 해방 우체국 직원 게이트웨이 우체국 창구 직원
2025.03.09. 19:00
우리에게 올해는 광복 80주년이다. 1945년 8월15일 우린 빼앗긴 주권을 되찾았다. 해방의 감격은 그해 유대인들이 먼저 경험했다. 1945년 1월27일 소련 군대가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를 해방시켰다. 1941년부터 1945년까지 나치가 자행한 유대인 학살 사건 '홀로코스트'로 희생된 유대인은 대략 600만 명이다. 그중 100만 명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희생됐다. 유엔은 1월27일을 기념일로 지정해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올해 80주년 행사도 27일 세계 곳곳에서 열린다.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박물관에는 희생자들의 신발 11만 켤레와 이름이 적힌 가방 2100여 점, 안경과 수용소로 이송된 여자들에게서 잘라낸 2톤가량의 머리카락 등 유품이 보관돼 있다. [로이터]해방 신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아우슈비츠 수용소 홀로코스트 희생자들
2025.01.23. 18:18
미국 역사에서 링컨 대통령의 1863년 ‘노예 해방 선언(Emancipation Proclamation)’은 의미가 깊다. 그리고 1865년 6월19일은 텍사스주에서 마지막 노예해방이 있던 날이다. 이를 기념하는 것이 ‘흑인 노예해방 기념일(Juneteenth)’이다. 노예해방은 현재 시점에서 보면 너무도 당연한 명제지만 당시의 역사적 사회적 굴레의 무게는 무거웠다. ‘노예 해방 선언’ 100주년을 맞은 1963년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유명한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 연설을 통해 진정한 노예해방은 진행 중임을 강조했다. 21세기의 미국은 교육, 직업, 의료 등 모든 분야에서 인종, 성별, 연령에 관계없이 평등하게 대우받는 정의를 성취하기 위한 큰 비전을 안고 있다. 병원에서 활동하는 목사 입장에서 의료계의 발전하는 모습은 희망을 갖게 한다. 하지만 고정관념과 편견은 아직 많은 진전이 필요한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시니어 혹은 장애를 가진 환자를 방문하는 경우 인지적 판단 능력, 혹은 참을성이 부족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은 환자의 영혼을 치유하는 ‘스피리추얼 케어(spiritual care)’의 효과를 약화한다. 이는 임상목회 교육(CPE)시 강조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미국의 역사는 시민의 자유로운 삶이 얼마나 중요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많은 희생이 따른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나아가 인류의 역사 또한 과거의 여러 가지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자유의 발걸음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전해주고 있다. ‘영적 자유(Spiritual Liberation)’도 함께 성취하기 위한 마음이 간절하다. 돌아보면, 과연 출애굽기 430년간의 노예생활로부터의 자유, 복음서에 “주께서 온갖 질병과 병든 자를 낫게” 하심, 그리고 사도행전 사도들이 보내심의 사명을 이루어 낸 그 모든 자유함의 영적 의미는 무엇일까. 성서의 기록을 본다.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여 한마음으로 기도” 할 때 영적 자유의 마음을 경험하고 지금껏 가졌던 가치관과 바라던 것보다 오히려 인종과 언어를 넘어 소외된 자와 불우한 자, 애통해 하는 자와 병든 자를 향한 새 돌봄이 시작되었다. ‘노예 해방의 날’의 다른 한 면인 영적 자유함이 이민의 순례 여정을 가는 우리에게도 더욱 공감되어 서로의 돌봄이 확장되기를 기원한다. 김효남 / HCMA 디렉터·미주장신 교수열린광장 노예 해방 흑인 노예해방 마지막 노예해방 노예 해방
2023.06.18. 17:32
6월 20일은 연방 공휴일인 노예해방일(Juneteenth)의 대체 휴일입니다. 이로 인해 20일 뉴욕증권거래소(NYSE)가 휴장을 해 오늘자 증시 지표는 쉽니다. 노예 해방 증시 휴장 오늘자 증시
2022.06.20. 1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