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슬픔에도 없는 침묵
1 길을 잃은 것 같아요 소나기 쏟아져 온 몸을 적실 때 힘든 날의 어둠이 땅거미처럼 죄어올 때면 무거워진 다리로 멀리 불빛 반기는 집으로 돌아오곤 했지요 길을 잃은 것 맞아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안개 속에서는 늘 지나치던 곳마저 찾지 못할 때가 있지요 당신은 편안히 누울 나의 피난처 였어요 눈물을 닦아주는 당신의 미소가 그리워요 떠나온 길도 돌아올 길도 잃은 것 같아요 하늘의 별빛도 희미해져 가는데 숲을 벗어나 강이 흐르는 곳으로 걸어요 집으로 가는 길을 찾고 있지요 나의 집은 당신이니까요 당신이 잠들지 못한 창가로 가요 낮은 곳으로 강물처럼 스며드는 향기 당신의 나지막한 봄의 노래가 들려요 거슬러 흐르는 나를 보며 말할테지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사랑이라고 길을 잃은 것 같아요 하얀 그리움이 슬며시 발목을 덮을 때 집으로 가는 길을 찾고 있어요 소리 없이 자라나는 꽃망울을 찾고 있어요 나의 영원한 집은 당신이니까 2 색깔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없지 나만의 색깔을 갖는다는 것 너만의 향기를 가지고 산다는 것 피어나는 봄의 향기로 설명이 될까 한동안의 침묵이 지나가는데 잎은 연두에서 초록으로 짙어지고 하늘이 바다를 기억하듯 잎도 꽃을 잊지 못해 꽃의 색으로 슬프고 쓸쓸한 가을을 불렀다지 바라다보고 싶은 사람의 색, 혹은 향기는 오랜 시간을 견디며 스스로 가지게 되었다는 얼굴의 홍조가 은근히 풍겨나기도 하면서 노을이 되었다가 마지막 잎새로 떨리기도 하였다네 바라보는 시각을 뒤집어 보면 나의 색이 아닌 누군가의 색으로 변하기도 하지 슬픔에도 없는 침묵은 낙엽 모아지듯 길모퉁이에 남겨져 팽이처럼 돌다 쓰러져 버린 시간이 되었네 쓰러진 시간을 먼발치 별빛에 묶어두면 천 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 년 같은 계산에도 없는 공식이 존재한다는 무례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다는 건 무례가 아니지만 색보다 향기는 오래 남아 그 향기 봄마다 어느 낮은 울타리로 퍼져가고 꽃바람에 흔들려 피다만 꽃은 떨어지기도 하였네 향기는 종이로 스며져 다시 색으로 번져 가는 오후 개나리 꽃바람은 물결처럼 춤추어 오는데 이렇게 가슴에 오래 머문 낯선 침묵이라니 견디다 견디다 한 번에 무너져 내리는 이렇게 슬픔에도 없는 침묵이라니 사람은 향기로 혹은 색깔로 남겨지는 것 같습니다. 한순간을 만났든 오랜 세월을 살아왔던 사람들은 자기만의 독특한 색깔이 있고 자기만이 풍기는 향기가 있답니다. 짧은 시간 만나도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고 오랜 시간을 같이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잊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답니다. 내가 꼭 필요한 시간에 만날 수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언제나 내 곁에서 분신처럼 날 돕는 사람도 있답니다. 내가 좋은 날엔 내 곁에 있었는데 내가 힘들고 아플 땐 나를 떠난 사람도 있답니다. 사람의 관계란 우연히 만나 서로의 필요를 채우고 멀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서로의 관심에 공감하면서 깊어지는 경우도 있답니다. 서로의 관계가 인연이 되고 필연이 되면 다행이지만 서로에게 아픔이 되고 무거운 짐이 된다면 차라리 만나지 말아야 했을 사람이 되고 맙니다. 얼굴이 먼저 떠오르면 보고 싶은 사람이고 이름이 먼저 떠오르면 잊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어느 시인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외로움은 누군가가 채워줄 수 있지만, 그리움은 그 사람이 아니면 채울 수가 없다는 말. 당신의 향기와 색깔이 그리울 때면 나의 미래를 맡겨보기도 하였답니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향기 당신 먼발치 별빛 시인 화가
2026.04.06. 1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