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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품은 혁명가, 인간의 본질 마주하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One Battle after Another)'는 2026년 오스카 작품상 후보로 거론되는 영화다.     '햄닛(Hamnet)',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 '위키드 포 굿(Wicked: For Good)' 정도가 현재 내년 작품상 후보군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데어 윌 비 블러드(There Will be Blood)', '팬텀 스레드(Phantom Thread)' 등으로 유명한 거장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비평가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감독이다. 스탠리 큐브릭 이후 가장 위대한 감독 중 한 명이라는 평가도 있다.     앤더슨은 감각적인 미장센, 복잡하게 얽힌 인간 군상, 그리고 특유의 리얼리즘과 블랙 유머가 섞인 연출을 특징으로 하는 감독으로 동시대 감독 중에서도 비평가와 영화학자들에게 가장 높이 평가받는 인물 중 하나다. 그의 영화들은 거의 모든 메이저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아왔다. 장르마다 다른 스타일을 보여주면서도 고유한 미학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정치적 메시지와 드라마를 결합한 그의 최신작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처음으로 손잡은 작품이다. 영화는 방대한 서사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구조 속에서 다양한 인물들이 빚어내는 갈등과 유대감을 통해 한층 깊이 있는 이야기를 펼쳐낸다.   영화는 급진적 혁명 단체인 '프렌치 75'의 16년 전 반란 활동에서 시작한다. 이민자 수용소를 공격, 불법체류자들을 해방하고 극우 세력 정치인들의 사무실을 폭파하며 은행을 터는 등 과격한 행동을 수행한다. 밥 퍼거슨(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과 퍼피디아 베버리힐즈(테야나 테일러) 커플이 단체의 중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이들을 체포하기 위해 스티븐 록조 대령(숀 펜)이 출동한다. 매우 폭력적인 그는 극우적 이념의 소유자로 프렌치 75를 오랫동안 추적해 왔다.     어느 날 퍼피디아는 록조에게 체포되고 그에게 성희롱을 당한다. 얼마 후 퍼피디아는 누구의 아이인지 모를 딸을 출산한다. 이후 산후우울증을 겪고 그로 인해 과격한 행동을 벌이다 또다시 체포된다. 결국 동료 혁명가들의 정보를 제공하고 풀려나 증인 보호 프로그램 하에 멕시코로 도망한다.   16년의 세월이 흐른 뒤 밥은 신분을 바꾼 채 딸 윌라(체이스 인피니티)와 함께 은둔 생활을 이어간다. 그는 대마초 상습 흡연으로 편집증을 비롯한 정서적 불안에 시달린다. 딸을 깊이 사랑하지만 이상적인 아버지상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밥의 숙적 록조 대령이 다시 나타난다. 록조는 윌라가 자신의 딸인지를 알기 위해 윌라를 납치한다. 16년 전 퍼피디아가 체포됐을 때의 장면이 상기된다. 그는 DNA 검사로 윌라가 자신의 딸임을 확인하려 한다.     밥은 옛 혁명 동료들을 모으고 혼돈의 전장으로 다시 뛰어든다. 혁명 조직의 리더이며 윌라의 가라데 선생 세르지오 카를로스(베니시오 델 토로)가 조력자로 밥을 돕는다.     밥과 윌라는 록조의 끈질긴 추적뿐 아니라 정부 권력이 가하는 폭력과 압박에도 맞서야 한다. 그 과정에서 혁명 단체 내부의 갈등과 퍼피디아가 남긴 배신의 흔적이 드러나며 상처와 이념적 대립이 한층 깊어진다. 무엇보다 혁명의 영웅이라 믿었던 어머니가 사실은 밀고자였음을 알게 된 윌라는 극심한 정신적 혼란에 빠진다.   퍼피디아는 영화 말미 딸 윌라에게 자신의 입장을 고백하는 편지를 보낸다. 이를 기점으로 처음으로 세 가족이 감정적으로 하나가 된다.     영화는 대규모 액션물의 외형을 지니고 있지만, 그 속에는 사랑, 부성애와 보호 본능, 혁명 공동체의 유대, 동료들의 희생 같은 다층적인 테마가 어우러져 있다. 앤더슨 감독은 정치가들의 극단적 분열과 내부 모순 같은 사회적 주제에 집중하며 다양한 등장 인물들을 통해 혁명이란 단순한 이상 추구가 아니라 끊임없는 투쟁임을 강조한다. 그 과정에서 블랙 코미디적 장치가 자조적이고 풍자적인 과장으로 표현되며 서사에 또 다른 결을 더한다.   그러나 퍼피디아의 동료 고발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프렌치 75 동료들과의 갈등이나 혁명에 대한 회의 같은 내적 동기가 충분히 제시되지 않은 채 그녀의 행동이 갑작스러운 배신으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 윌라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엄마 퍼피디아의 유대감이 감동적이다. 딸은 엄마의 편지에 감화되며 엄마가 이루지 못한 혁명과 이상, 자유, 투쟁을 이어가려는 듯한 모습으로 반응한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정치적 양극화와 분열, 그로 인한 국가 권력의 폭주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고 재편하는지를 탐구하는 작품이다. 오늘의 미국, 나아가 전 세계적으로도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영화 속 록조 대령의 극우적 권력 행사는 실제 미국 내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극단주의, 인종 갈등,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과 매우 유사하다. 특히 이민자 구금시설, 무장 민병대, 언론 조작 등은 현실적인 뉴스 헤드라인과 맞닿아 있다.     영화는 권위주의적 리더십과 충돌하며 이에 저항으로 맞서는 시민들의 강렬한 투쟁을 보편적 인간의 고통으로 표현한다. 과거 이상주의와 현재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밥 퍼거슨 가족이 겪는 파괴와 재건의 스토리를 통해 정치적 결정이 가정, 사랑, 정체성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강하게 부각한다   딸을 되찾기 위해 사투에 나선 밥 퍼거슨 역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연기 결을 선보인다. 그는 혁명가의 거칠고 불안한 에너지와 아버지로서의 따뜻하고 섬세한 감정을 절묘하게 오가며 밥의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구현해낸다. 특히 대마초 상습 흡연으로 인해 프렌치 75의 비밀 코드를 기억하지 못해 벌어지는 장면은 디카프리오 특유의 표정 연기로 관객의 폭소를 자아낸다.   극렬 극우주의자의 상징적 캐릭터인 록조 대령은 영화의 핵심 갈등을 끌고 가는 인물이다. 숀 펜은 빌런의 악함에 충실한 연기를 펼친다. 위협적이지만 내면에 잠겨 있는 불안과 열등감을 깊이 있게 연기한다. 미국 사회의 극단주의와 권위주의를 풍자하는 역대급 조연 연기라는 평가와 함께 그의 세 번째 오스카 수상이 점쳐진다.     김정 영화 평론가 [email protected]혁명가 본질 동료 혁명가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메이저 영화제

2025.10.08.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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