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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로 세상 읽기] ‘현대판 노예제’와 인간 해방의 복음

현시대에도 노예제가 존재하는가? 노예제는 인간을 객체화, 대상화, 도구화하는 행위의 잔혹한 결과물이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온갖 악행은 온라인 글로벌 네트워크라는 보이지 않는 하이웨이를 질주하면서 더욱 교묘하고 보다 조직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캄보디아 범죄 단지의 실태는 전 세계적으로 큰 충격과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 ‘온라인 스캠 단지(scam compound)’로 불리는 이들 범죄 조직은 인신매매, 감금, 강제 노동, 고문, 그리고 살인까지 자행하는 현대판 노예 현장에 다름아니다.     스캠 단지에 강제로 끌려온 피해자들은 보이스피싱, 로맨스 스캠(연애 빙자 사기), 주식 사기 등 다양한 사이버 범죄에 동원된다.     철저히 통제당하는 노예면서, 자의든 타의든 온라인을 통해 사람들의 돈과 마음을 빼앗는 사기꾼이 되어야 한다. 이는 동일인이 피해자면서 동시에 가해자로 전락하는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인간성을 잃어가는 동시에 자신이 당했던 고통을 다른 사람에게 되풀이해야만 하는 악순환에 갇히게 되는, 참혹한 지옥을 경험한다.   현대판 노예제는 과거와 달리 법적인 소유가 아닌 경제적 착취나 채무를 이용한 속박, 인신매매, 강제 노동 등 더 교묘하고 복잡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는 소유권 관계가 명확했던 고대 노예제에 비해, 합법적인 겉모습 아래 숨겨진 비인간적인 현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고대 노예는 자신의 노예 신분을 명확히 알고 있었으며, 폭력적인 지배 구조 아래서 고통의 악순환을 경험했다. 반면 현대판 노예는 ‘자신이 노예가 아니다’라는 착각 속에서 고통받고, 그 고통을 다른 이에게 전가함으로써 악순환을 확대 재생산한다. 이처럼 현대 노예의 고통은 더 교묘하고 은밀한 방식으로 작동하며, 피해자가 자신의 처지를 인지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점에서 고대 노예의 비극과는 또 다른 심각성을 지닌다.   노예제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기원전 18세기 함무라비 법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구약성경은 노예제를 확립된 제도로 언급하고 있지만 노예를 물건이나 짐승처럼 다룰 수 없도록 제한하며, 노예와 그 가족을 하나의 인격체로 예우해야 함을 촉구한다. 노예제는 수메르 문명을 비롯하여 이집트, 아카드, 아시리아, 그리스, 로마, 아랍 제국 등 거의 모든 고대 문명에서 존재했다.     로마의 공화정 말기에 노예의 수가 전체 인구의 25%를 차지한 것으로 추산된다. 출애굽기에 따르면, 모세는 이스라엘인 노예들을 데리고 이집트를 떠났다고 하는데, 이 사건은 고대 노예 해방 운동의 한 기록일 테다.   현대 노예 제도에 대한 세계적인 권위자로서 유엔 인신매매 국제 프로그램의 컨설턴트인 케빈 베일스(Kevin Bales)는 오늘날 지구상에 2700만 명의 노예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매 30초마다 휴먼 트래피킹(human trafficking)의 희생자가 발생하고 있으며, 매년 200만 명에 가까운 아이들이 글로벌 성 착취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렇듯 21세기 문명 사회에서 은밀하나 공공연한 범죄적 행위가 불특정 다수를 겨냥하고 있다. ‘인권의 나라’라고 불리는 미국의 형편은 어떠할까? 국제 인권단체 워크 프리(Walk Free)의 ‘2023 세계 노예 지수(Global Slavery Index)’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미국 내 현대판 노예는 약 110만 명으로 추정한다.   1948년 12월 20일 국제 연합 총회는 세계 인권 선언을 채택하여 노예제에서 해방되는 것은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인권이라고 공표하였다. 세계 인권 선언 제4조는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아무도 노예의 신분이나 노예의 상태에 얽매어 있지 아니한다. 노예제도와 노예매매는 어떤 형태이건 금지된다.”     이 유엔 인권선언문의 법적 근간이 된 것은 사도 바울이 세례를 베풀 때 선포한 말씀이었다.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갈라디아서 3:28, 새번역).     이는 인간을 객체화, 대상화, 도구화, 타자화하는 모든 행위를 무력화하는 선언이며 참된 인간 해방의 복음이다.     이상명 / 캘리포니아 프레스티지 대학교 총장성서로 세상 읽기 현대판 노예제 현대판 노예제 고대 노예제 현대 노예

2025.11.03.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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