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미술관의 스파이와 현대미술
저널리스트이며 작가인 비앙카 보스커(Bianca Bosker)가 쓴 ‘미술관에 스파이가 있다’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원서 제목은 ‘Get the Picture’다. ‘어느 문외한의 뉴욕 현대 예술계 잠입 취재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도대체 뭘 그린 거야? 이것도 예술이야? 왜 요즘 예술은 대중을 따돌리는가?” 같은 현대 예술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뉴욕 현대미술의 현장으로 뛰어들어 직접 경험한 이야기를 시니컬한 문장으로 통쾌하게 풀어나간다. 저자는 브루클린의 작은 갤러리 말단 직원부터 시작해 경험을 쌓으며, 유명 아트페어에서 그림 판매에 열을 올려 놀라운 성과를 거두기도 하고, 전시회 큐레이터와 신진 예술가 작업실 조수로 일하기도 한다. 그리고, 구겐하임 미술관의 경비원이 되어 미술작품과 그것을 감상하는 일반대중의 관계를 관찰하며 많은 것을 느끼고, 침묵 속에서 한 자리에 오랫동안 서있어야 하는 경비원의 특성상 어쩔 수 없이, 한 작품을 오래도록 바라보며 새로운 차원을 발견하는 신비로운 경험도 한다. 이처럼 작품을 제작하는 작가, 관람자, 작품을 전시하고 파는 갤러리, 그림 시장인 아트페어, 수집가, 비평가, 그리고 미술 권력의 최정점인 미술관에 걸친 입체적이고 흥미진진한 탐험기는 독자에게 신선하고 독창적인 시선을 선사한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좋은 예술이란 무엇인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되풀이하며, 지금 미술계의 현실을 비판한다. 가령 “예술을 본다는 건 무엇인가? 지금 우리는 미술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저자는 실제 현실을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예술작품을 오래 바라볼수록 그것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을까?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연구에 따르면 관객이 한 작품에 할당하는 평균 시간은 (벽의 표찰을 읽는 시간을 포함해) 17초이며, 이 또한 작품 앞에 멈춰 선 경우만을 계산한 결과이므로 실제 평균 시간은 더욱 짧을 것이다. (다른 연구에 따르면, 관객이 표찰을 읽는 시간은 8초, 작품을 바라보는 시간은 겨우 2초로 전자가 후자의 4배다.)” 과연 17초 동안에 한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고 감동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이건 모나리자를 보러 루브르 미술관에 갔는데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앞사람 뒤통수만 보고 왔다는 현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이야기다. 오래전에 현대미술의 민낯을 풍자적으로 비판한 명작은 단연 톰 울프(Tom Wolfe)의 ‘현대미술의 상실’이다. 50년 전인 1975년, 미국 현대미술 최전성기에 발표되어 커다란 파문을 던졌던 문제작이다. 저자는 현대미술의 구조를 날카롭게 풍자하면서, 아방가르드의 상징인 현대 추상미술은 소수의 ‘문화적’ 부르주아들이 다른 ‘속물’ 부르주아들과 달라 보이고 싶은 욕구를 채워 주기 위한 것이며, 현대 미술가는 한발은 예술가 동네에, 한발은 후원가들의 동네에 각각 걸쳐 놓고 있는 고도의 처세가라고 비판한다. 톰 울프가 50년 전에 비판한 미술계의 권력구조와 실상은 지금까지도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완고해지고 있다. 돈이 개입되면서 ‘예술산업’이라는 낱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미술관에 스파이가 있다’는 이런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수많은 길과 수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었다. 모든 곳에 아름다움이 있고, 이제 나는 그것들을 찾아내는 방법을 안다.”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방법을 안다고? 와, 대단하다! 나는 아직도 현대미술의 실체를 잘 모른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서글프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현대미술 미술관 뉴욕 현대미술 현대미술 최전성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2025.11.13. 1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