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골칫거리가 생겼다. 예고도 없이 들이닥치는 불청객 때문이다. 출입을 막아보려 갖은 방법을 써봤지만 녀석은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 흔적만 남기고 사라진다. 며칠 전에는 여러 마리가 몰려와 작은 파티라도 벌였는지 뒤뜰 잔디밭이 여기저기 흉하게 뒤집혀 있었다. 피해가 잔디에서 그치면 좋으련만 이젠 내가 가꾸는 텃밭까지 넘본다. 처음으로 화단 한켠에 상추, 열무, 깻잎, 고추 씨앗을 심었다. 싹이 트기를 기다리며 직접 기른 채소를 따먹는 상상을 하곤 했지만 그 꿈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침에 나가보니 텃밭은 이미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범인은 다름 아닌 다람쥐다. 산길에서 마주치던 귀여운 모습과 달리 일상에 나타난 다람쥐는 꽤나 성가신 장난꾸러기였다. 덫을 놓을까 했지만 잡히면 동물보호소에 보내거나, 산이나 공원에 풀어줘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른다. 쥐약을 쓰려 하니 남편이 펄쩍 뛰며 말린다. 자칫 죽기라도 하면 동물보호법에 저촉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점점 오기가 치밀어 올라 이대로는 물러설 수 없었다. 이번엔 절대 당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큰 화분 여러 개를 사서 씨앗을 다시 뿌렸다. 그 위에 플라스틱 덮개를 씌우고 남편의 10파운드짜리 아령 두 개를 올려놓았다. 말 그대로 완전무장한 방어 시스템으로, 누가 이기나 해보자는 심정이였다. 사흘쯤 지났을까 그 녀석이 또 다녀간 모양이다. 뚜껑을 열려고 안간힘을 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덮개는 옆으로 밀려 있었지만 결국 포기한 듯했다. 속이 다 시원하고 통쾌했다. 그러면서도 작은 녀석과 실랑이를 벌이는 내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났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발코니에 벗어둔 내 슬리퍼 한 짝이 너덜너덜하게 뜯겨 있는 게 아닌가. 성질머리가 보통이 아닌 게 분명하다. 얼마나 억울했으면 그랬을까 싶다가도 하필 여러 켤레 중 내 것만 골라 물어뜯다니 얄밉기 짝이 없었다. 평소 남편과 아이들은 다람쥐가 귀엽다며 집에서 키우고 싶어했지만 나는 “어떻게 해야 다시는 못 오게 할까” 궁리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더니 다람쥐가 내 말을 엿들은 걸까. 녀석이 파헤쳐 놓은 흙 속을 들여다보니 땅콩이 숨겨져 있었다. 우리 집 뒤뜰이 다람쥐에게는 양식 창고였던 모양이다. 생각해보니 다람쥐 입장에서는 이곳이 가장 안전한 보금자리였을지도 모른다. 도대체 누구로부터 그 소중한 먹이를 지키려 했던 걸까. 문득 내가 너무 야박하게 굴었던 건 아닌가 싶었다. 작은 몸으로 텃밭을 헤집은 것이 어쩌면 살아남기 위한 필사적인 몸짓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순간 미안함이 밀려왔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작은 생명과 화해하고 싶었다. 마음 같아선 화단 한켠에 조그만 집이라도 지어주고 싶었다. 마트에 들러 땅콩 한 봉지를 샀다. 오로지 우리 집에 찾아온 손님 다람쥐를 위해서다. 엄마는 집에 온 손님을 빈손으로 돌려보낸 적이 없었다. 아낌없이 내어주시던 정 많은 성품이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스며든 걸까. “다람쥐랑 화해했어?” 남편이 툭 한마디를 던진다. “그 녀석, 우리 집이 제일 안전하다고 생각했나 봐. 이제 가족처럼 같이 살아야겠어. 이름 하나 지어줄까?” 그 말에 입가에 번지려던 미소를 살포시 눌렀다. 맞다. 매일 실랑이를 벌이긴 했지만 다람쥐가 우리에게 해를 끼치려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소중한 양식을 숨길 곳을 찾다 보니 우리 집 뒷마당이 가장 안전해 보였을 뿐이다. 뒤뜰 잔디밭을 창고 삼아 살아가는 작은 생명을 마음에 그려보니 한때 짜증스러웠던 감정은 어느새 녀석을 받아들이는 넉넉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작은 생명을 쫓아내기보다는 이웃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에게는 소소한 텃밭일 뿐이지만, 다람쥐에게는 하루하루를 버티는 삶의 터전이다. 이제는 그 녀석의 삶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려 한다. 그나저나 다람쥐를 핑계 삼아 예쁜 슬리퍼 하나 새로 장만해야겠다. 김윤희 / 수필가이아침에 다람쥐 화해 다람쥐 입장 손님 다람쥐 뒤뜰 잔디밭
2025.09.03. 18:37
지난 23일 막을 내린 제106회 일본 전국교교야구선수권대회(고시엔)에서 한국계 민족학교인 교토국제고가 정상에 올랐다. 교토국제고는 재일동포들이 민족교육을 위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1947년에 설립한 교토조선중학교가 전신이다. 2003년 일본 정부의 정식 학교 인가를 받아 현재의 교토국제고로 이름을 바꿨다. 교토국제고 선수들은 우승을 확정 지은 뒤 “동해 바다 건너서”로 시작하는 한국어 교가를 제창했다. 이날 교가 제창 장면은 TV로 일본 전국에 생중계됐다. 재일동포뿐만 아니라 조국을 떠나 터전을 잡은 700만 해외동포에게도 감격의 순간이었다. 기원전 2333년 한반도에 고조선이 세워진 후 한반도 역사는 유구한 문화와 전통을 자랑한다. 하지만 때론 내전과 외세의 침탈로 압박과 설움의 역사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한국과 일본은 인접한 반도와 섬나라로 갈등과 충돌이 빈번했다. 그중 35년간의 일제 강점기는 우리에게는 잊을 수 없는 치욕과 수치였다. 그러나 한민족의 은근과 끈기, 그리고 지략과 용맹으로 위기를 극복해 왔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해외동포도 이러한 민족의 자긍심이 있었기에 언어와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이제는 조국의 위상을 높이는 존재로 우뚝 설 수 있었다고 자부한다. K-팝이 글로벌 문화 콘텐츠로 자리매김하며 주목받는 것도 민족 우수성의 발로이다. 일본에서 K-팝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을 보라. 두 나라 사이의 ‘문화 국경’을 무너트리는 일대 혁신이다. 한·일 젊은이들은 과거에 매몰되지 않고 문화를 공유하며 양국이 가진 앙금의 벽을 뛰어넘고 있다. 교토국제고의 위상을 보아도 알 수 있지 않은가. 한국과 일본은 문화뿐만 아니라 안보와 경제에서도 서로 협력하는 대등한 동반자의 관계로 발전했다. 각 분야에서 한국의 위상이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은 1966년에 1인당 국민소득(GDP) 1000달러를 돌파하며 아시아 최고의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했다. 한국이 1인당 GDP 1000달러를 돌파한 것은 그로부터 11년 뒤인 1977년이었다. 그런데 지난 4월 IMF(국제통화기금)이 발표한 1인당 GDP를 보면 한국은 3만4164달러로 일본의 3만3138달러에 앞섰다. 60년 전만 하더라도 감히 생각하지도 못한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뤄낸 것이다. 일본이 더는 우리에게 위협의 대상이 아니라 대등한 입장에서 협력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아직도 정치권에선 일제 강점기에 매몰되어 ‘친일파’를 소환하고 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일제 강점기를 미화하거나 친일행위를 찬양한 사람은 공직을 맡지 못하게 하는 법안을 만들겠다고 하니 흐르는 역사를 일제 강점기에 멈추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여기에 독도 영유권을 부정하고 훼손하는 행위도 엄격히 금지하고 처벌까지 할 수 있도록 법제화할 것이라고 한다. 독도는 엄연히 역사적으로, 지리적으로, 국제법상으로 우리 영토가 아닌가. 그래도 민주당하면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한 정당으로 인식되어 있지 않은가. 그런데 어떻게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제약하려는 것인지, 또 벌어지지도 않은 독도 문제를 소환하고 있으니 어처구니없다.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무너트리고, 역사를 정치화하여 권력의 도구로 삼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치 성향에 따라 자기 입맛에 맞게 역사를 해석하는 것은 국민을 양극화하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광복 후 79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이젠 한국도 역사의 진실 앞에 화해와 관용으로 포용하며 암흑기의 갈등을 승화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대담한 민족의 기상을 높여보자. 박철웅 / 일사회 회장기고 화해 관용 한국계 민족학교인 한반도 역사 일제 강점기
2024.08.27. 19:55
세계적인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은 1999년, 팔레스타인 출신의 문명 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와 함께 아랍국가와 이스라엘 젊은이들로 구성된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서동시집’이라는 이름은 독일 시인 괴테가 페르시아 시인 하피즈의 시를 읽고 감명을 받아 집필한 ‘서동시집(West-Eastern Divan)’에서 따 온 것이다. 그 전까지 서양 사람들은 동방 문화가 서양 문화보다 열등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괴테는 하피즈를 통해 동방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했고, 그 결과 동서양의 문학양식을 이상적으로 결합한 ‘서동시집’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라는 이름은 괴테가 구현하고자 했던 동서양 화합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오케스트라는 이스라엘, 시리아, 이집트, 레바논, 쿠웨이트, 팔레스타인 등 각기 다른 종교와 문화, 언어, 정치적 신념을 가진 젊은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이 하는 일은 세계 여러 지역을 돌며 음악을 통한 평화와 화합의 메시지를 전하는 일이다. 지난 2005년,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는 팔레스타인의 임시수도 라말라에서 연주회를 가졌다. 연주 곡목은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5번과 베토벤의 ‘운명’이었다. 이때 젊은 연주자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그토록 어려운 상황에서도 음악에 깊이 감동을 받고 따뜻한 박수를 보낸다는 사실에 큰 인상을 받았다. 그 전까지 팔레스타인 사람하면 테러나 일삼는 괴물 집단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와 보니 그들도 자기들과 똑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들을 묶어 준 것은 물론 음악이었다. 바렌보임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서로 싸우지 말고 평화롭게 살아가자는 것이 연주회의 취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20여년이 흐른 지금도 두 나라간의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진회숙 / 음악평론가음악으로 읽는 세상 음악 화해 서동시집 오케스트라 팔레스타인 출신 동서양 화합
2024.02.26. 18:19
대림절이 다시 돌아왔다. 찾아오실 아기 예수를 기다리는 소중한 시간이다. 가톨릭 신자라면 누구나 고백성사를 드리고 마음을 경건하게 해야 한다. 성당에 들어서면 버릇처럼 초조하게 순서를 기다린다. 먼저 고백소에 들어가면 성호를 긋고 고백한 지 얼마나 되었는지 고한다. 그리고는 자신의 죄를 대충 이야기하고는 그 외에 알아내지 못한 죄를 신에게 용서해달라고 부탁을 한다. 그러면 보속으로 이런저런 기도문을 바치라고 하면 끝이 난다. 참으로 형식적이다. 한국어로 하면 모든 죄를 다 말하기가 참 꺼려진다. 그래서 난 집 근처 성당 미국인 사제에게 고백성사를 본다. 가슴 속 말을 할 수 있어 그렇다. 나의 잘못된 말과 행위를 뉘우치고 용서를 빌다 보면 눈물이 난다. 성당 입구에는 내가 알고 있던 Confession(고백성사) 대신 Reconciliation(화해)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단순히 잘못을 고하는 고백만이 아닌 나와 신과의 관계를 회복시켜야 한다. 신과 멀어진 사이를 예전처럼 바꾸어 놓는 일이다. 성탄절에 오는 예수의 신발 끈을 묶을 자격조차 없다던 요한은 물로 세례를 준다. 마음이 정결해진 군중들이 무엇을 해야 하냐고 묻는다. 음식이 있으면 배고픈 사람과 나누라 한다. 세금을 걷는 이들에게도 정해진 세금 이상을 걷지 말라고 한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는 연민과 긍휼함을 지니라 한다. 힘없고 가난하고 돈 없고 백 없고 소외당하고 무시당하는 사람들을 돌보라 한다. 적어도 부족함이 없는 이들과 공조해 억울하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을 핍박하지 말라고 한다. 그것이 내가 믿는 신앙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나 역시 비굴하게 살지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일 년을 마무리하면서 내 주위 사람들에게 끼쳤을 패악을 생각해본다. 술을 마시고 한 막말이 누구의 가슴을 아프게 했는지. 게으름 때문에 내가 해야 할 일을 소홀히 하였는지. 나도 모르게 가진 것 없는 이들을 멸시하고 갑질을 하였는지 반성한다. 가까운 주위의 사람들을 사랑할 수 없다면 저 위에 있는 신은 결코 사랑할 수 없다. 결국 내 이웃들에게 베푼 모든 사랑이 신과 화해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매년 같은 결심을 한다. 새해에는 더욱 많이 사랑할 수 있도록 해주십사 하고. 어쭙잖은 자만심은 떨치고 순수한 마음의 선행을 했으면 좋겠다. 가장 가난하고 낮은 곳으로 내려왔던 아기 예수의 모습을 그려본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오직 사랑과 믿음으로 극복한 요셉 성인과 마리아의 모습도 떠올린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을 다 겪으면서도 묵묵히 믿음의 길을 가신 두 분. 모든 성가정의 모범이 되신 그 거룩함을 묵상해본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성탄이 올 것이다. 2000년 전 눈 부신 빛을 따라 아기 예수를 알현했던 동방박사 삼인이 목격했던 별. 이번 성탄엔 유난히 밝은 빛의 별이 비추는 그래서 가슴 따스해지는 거룩한 밤이 되었으면 한다. 그 빛이 이 세상 모든 가련한 자들 위에 내려와 그들의 상처 입은 마음이 치유되었으면 한다. 두 손을 모아 기도한다. 신이시여! 나의 선한 마음을 일깨워 주시어 많은 소외된 이를 사랑하게 하여 나와 당신과의 뒤틀린 관계를 되돌려 놓게 하소서. 그래서 당신을 통하여 내 주위의 이웃들과 화해할 수 있게 하소서. 고성순 / 수필가살며 생각하며 화해 아기 예수 성당 입구 근처 성당
2021.12.20. 1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