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me in heavy, but now I am in light” 환자 아들이 ‘Palliative Care Meeting’을 마친 후 바로 한 말이다. 갑자기 정원 일을 하다가 뇌출혈로 쓰러진 어머니가 거의 뇌사에 빠졌다. 지난 5일 동안 병상에 누워있는 어머니를 지켜보면서 그가 경험한 시간은 절망과 좌절, 무기력과 혼돈의 절정이었다. 82세의 M은 고혈압 말고는 건강한 편으로 교회와 지역 사회에 많은 봉사활동을 하며 정원 가꾸기가 취미였다고 한다. 사고가 난 그날 오전에도 정원에 새로 사 온 모종을 심다가 심한 두통을 호소하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소파에 앉자마자 구토하면서 쓰러졌다. 엠블런스에 실려 응급실에 도착, 바로 인공호흡기를 꽂고 CT Scan을 해보니 뇌의 3곳에 심한 출혈이 있었다. 조속하게 응급처치했으나 24시간 만에 뇌 탈장이 왔다. 환자는 이미 의식을 잃고 동공은 풀렸으며 팔다리 경직 증세도 보였다. 생명을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호흡과 맥박도 매우 불안정한 상태로 생명이 위독한 응급상황이 되었다. 거의 뇌사에 가까워지고 있으며 오직 한 가지 살아있는 증후로는 자가 호흡이 2~5번 정도 있었다. 의사는 가족에게 환자의 회복 가능성이 아주 희박하다고 언질을 주었다. 환자는 남편과 아들, 딸을 각각 하나씩 두고 있었다. 가족 간의 사랑이 넘치고 화목함을 첫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중환자실에서 일하다 보면 정말 다양한 질병만큼이나 다양한 가족관계(family dynamic)를 경험하게 된다. 상상을 넘어서는 아름다운 관계부터 비인간적인 냉혈한 행위들도 쉽게 만난다. 하루하루 평화롭게 일상을 이어가던 가족에게 이 환자와 같은 갑작스러운 사고는 가족을 엄청난 충격에 빠뜨린다. 가족 멤버 셋은 입원 당시부터 지금까지 5일 동안 줄 곳 환자 곁에 머물렀다. 적당히 병실에서 구겨서 자고 먹고 했다. 5일 동안 환자 상태가 호전을 보이지 않자, 의사는 Palliative Care Meeting을 주선했다. 간호사들도 그 미팅에 참석할 수 있지만 우리는 또 다른 환자도 돌보아야 하므로 보통 참석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번에는 꼭 참석하고 싶었다. 미팅은 한 시간을 훌쩍 넘었다. 먼저 의사는 자신의 역할을 설명하고 난 다음 가족 일원 개개인에게 그들이 현재 상황을 어떻게 얼마만큼 이해하고 있는지 물었다. 참 우연이지만 이 가족은 모두 고등학교 교사였다. 환자와 환자 남편은 물론 은퇴했고 아들과 딸은 현역이다. 환자는 평소에 자상하고 너그럽고 베푸는 타입이어서 많은 사람한테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지난 며칠 동안 환자를 방문한 수십 명의 지인만 보아도 그녀가 얼마나 많은 사람한테 사랑을 받고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집은 항상 열려 있었고 지역 사회 모임에 중요하고 어려운 일을 도맡아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을 받아 왔다고 한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요즘처럼 화창한 날씨, 뺨을 어루만지는 달콤한 바람, 손에 들어온 맛있는 음식에 깊은 감사를 표하며 사람과의 교류를 진심으로 즐겨왔다고 딸이 울먹이며 전한다. 또한 환자는 회생 가망성 없는 생명을 기계에 의존하며 생명을 연장하고 싶지 않다고 분명히 유서에 명시해 놓았다. 가족은 한결같이 이성적으로는 환자의 뜻을 존중해야 함을 알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이 생명 장치를 제거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결정인지 한없이 밀려오는 죄책감으로 신음하고 있었다. 의사는 지금 당장 결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니 환자와 작별 인사가 필요한 지인들에게 연락하는 것도 좋겠다고 했다. 치료책이 없는 지금은 증상 완화 방법으로 진통제, 안정제, 가래 말리는 약 등을 처방해 놓겠다고 설명한 후 미팅을 마쳤다. 그때 환자 아들이 ‘I came in heavy, but now I am in light“하며 긴장을 풀었다. 이처럼 Quality Time을 함께한 우리는 무거웠지만 가볍게, 서로 깊은 포옹을 했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heavy leave 환자 아들 환자 남편 in light
2025.08.11. 21:54
지난주에 맡았던 환자는 나에게 많은 상념을 안겨주었다. 86세 백인 여자 환자가 넘어져서 응급실에 실려 왔다. 혈압이 너무 낮아 우리 중환자실로 옮겨왔고 진단은 방광염이었다. 너무 흔한 사례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근육의 탄력이 약해지고 위생관리가 소홀해지며 스트레스에 민감하여 일어나는 자연현상이다. 환자는 항생제에 좋은 반응을 보여 바로 회복이 되었다. 이제 일반병동에 옮겨가기 위해 병실을 기다리는 중이다. 환자는 의식이 돌아오고 컨디션이 좋아지자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듯했다. 5분마다 비상벨을 눌렀다. 몇 번은 정말 필요해서였지만 대부분은 환자 자신의 불안증세에서 오는 행동이었다. 조금 있으니 환자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녀가 방문을 왔다. 환자가 무척 반기며 행복해했다. 나는 환자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환자는 항상 화가 나 있고 불안해하고 걱정과 염려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방문객이 다 가고 난 후에 환자와 오랜 대화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환자는 객관적으로 보기에 비교적 유복한 일생을 살아온 것 같았다. 88세인 남편이 아직도 건재하고 두 아들이 모두 가정을 이루고 오는 10월에 첫 손자가 결혼한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객관적인 관점에서 아주 보기 좋은 가족이다. 그렇다면 왜 이 환자는 이토록 불안해하며 안절부절못하는 것일까. 물론 나는 심리학자도 아니고 이 환자의 가정사 내막을 알 리가 없다. 단지 이 환자만 볼 때 환자 자신이 너무 불행해 보여 안타까울 따름이다. 얼굴에 근심과 걱정이 가득하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을 추구한다.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행복이란 개념은 아주 주관적이다. 행복은 만족에 있다는 진리가 있다. 행복은 고대부터 많은 철학자의 지대한 관심사였다. 쓸데없는 상상은 행복을 방해한다. 기쁘게 일하고 해놓은 일을 기뻐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사소한 것에서 기쁨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불행한 자의 고귀한 특권이다. 행복에 있어서 가장 큰 장애물은 너무 큰 행복을 기대하는 마음이다. 유대인의 격언에는 행복에서 불행의 거리는 고작 한 발짝밖에 안 되지만, 불행에서 행복의 거리는 매우 먼 거리라는 말이 있다. 행복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을 고민하지 않는 것이다. 행복이란 일하고 사랑하고 희망을 품는 것이다. 행복한가 아닌가는 결국 자신에게 달려있다. 행복의 비밀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불행을 피할 수는 없다. 불행에 빠져 보아야 비로소 사람은 자기가 누구인가를 깨닫게 된다. 불행을 통해 행복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된다. 파스칼은 불행의 원인은 나 자신에게 있다고 했다. 불행 중에 최대의 불행은 옛날에는 행복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현명한 사람은 큰 불행도 쉽게 극복해 나가고 어리석은 사람은 조그만 불행도 확대해서 자신을 괴롭힌다. 이 환자처럼 객관적으로 다 갖추고 있는 사람도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면 불행하고 부족한 것이 많아도 만족하고 행복하다고 느끼면 행복한 것이다. 세상에는 행복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래서 오는 행복을 밀어낸다. 행복해하면 벌써 행복이 달아날까 봐 두려워한다. 염려가 많은 완벽주의자는 지금의 행복에 만족할 수 없고 행복은 항상 조금 더 노력해야 닿을 수 있다고 다가온 행복도 유예한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주위 사람들한테 불행한 일이 닥치면 자기 행복을 죄스러워하기도 한다. 얼굴에서 웃음을 지우고 어두운 그림자를 만든다. 행복을 밀어내는 사람들은 행복감만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존감과 자부심, 즐거움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억압하고 차단한다. 당연히 우울증이 따른다. 행복이란 항상 주위에 손만 뻗으면 닿는 곳에 있다. 오늘의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말고 다른 사람을 위해 내 행복을 포기하지 않고 오늘의 행복은 오늘 누리자. ‘아 나는 행복하다’라고 한번 외쳐보고 싶은 여름밤이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행복 자기 행복 환자 아들 우리 중환자실
2023.08.11. 17: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