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최신기사

미-이란, 불안한 휴전 합의

미국과 이란이 ‘2주 휴전’에 전격 합의했지만, 휴전 첫날부터 아슬아슬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전쟁이 39일 만에 일단 멈추긴 했지만, 휴전에 합의한 후 하루도 지나지 않아 균열이 가기 시작하는 모습이다.     미국과 이란의 휴전이 시작된 첫날인 8일, 이스라엘은 오히려 레바논의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상대로 개전 후 최대 규모의 공습을 벌였다. 전투기 50여대를 동원해 100여곳을 타격했고, 한꺼번에 수백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이스라엘은 레바논은 휴전의 대상이 아니라고 거듭 주장하면서 추가 공격을 예고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영상 성명을 내고 “아직 완수해야 할 목표가 남았다”며 전쟁을 계속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이란은 휴전 합의를 위반한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지만, 미국 측은 레바논 공격이 휴전 합의에 포함된 사안이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백악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레바논은 휴전 협정에 포함되지 않았으며, 당사국들에 전달된 내용”이라고 말했다.     네타냐후 총리도 휴전 합의에 헤즈볼라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하고, 이란에 대해서도 강경한 입장을 이어갔다. 그는 “이란 내 모든 농축우라늄을 국외로 반출해야 한다”며 “합의를 통해서든, 전투를 통해서든 반드시 관철할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으로 이란 측은 한때 재개했던 호르무즈 해협의 유조선 통행을 다시 중단했다.     이란 파르스 통신은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과 동시에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유조선 통행이 멈춰섰다”고 전했다. 이날 오전 선박 2척 통과를 허용한 이란 해군은 곧바로 태도를 바꿔 허가 없이 지나가는 선박은 모두 격침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란 타스님 통신은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이 계속되면 이란이 휴전 협정을 파기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란의 항의를 받은 중재국 파키스탄은 휴전 합의를 위반한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다며 모든 당사국에 자제할 것을 촉구했다. 파키스탄도 레바논이 휴전 대상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던 만큼, 사실상 이스라엘을 겨냥한 메시지로 풀이된다.     한편 미국과 이란의 첫 번째 종전 협상이 오는 11일(현지시간)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열린다고 백악관이 8일 밝혔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대통령이 JD 밴스 부통령과 스티브 위트코프 특사, (맏사위인) 재러드 쿠슈너가 이끄는 협상단을 이슬라마바드로 파견한다”고 밝혔다.     >> 관계기사 12·13면, 한국판 관련기사 “네타냐후 헛소리” 참모들 말려도…트럼프는 전쟁 명령했다 88분 전 극적 휴전…1등 공신은 파키스탄 총리 호르무즈 열려도 고유가 계속된다…“공급망 복구 수개월” 김은별 기자휴전 합의 휴전 합의 휴전 협정 휴전 첫날

2026.04.08. 21:27

[독자 마당] 대한민국의 미래

“전쟁을 잊은 군대는 그 존재 가치가 없습니다. 평화는 강력한 힘에 의해 지켜집니다.”   지난 2020년 군 여론조작 은폐·축소 지시 혐의로 기소됐던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2심 재판 중 최후 진술에서 한 말이다. 비록 그가 재판정에서 한 발언이었지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1950년 6월25일 새벽 4시,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은 1953년 7월27일 휴전 협정까지 1129일(3년 1개월 2일)간 지속했다. 수도 서울이 북한군 수중에 들어가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3일에 불과했다.     하지만 당시 여러 국가가 대한민국에 도움을 줬다. 미국을 포함 16개국이 군을 파견해 직접 참전했다. 6개국은 의료지원팀을 보냈고, 40개국이 물자 수송 지원에 나섰다. 전후 복구사업을 지원한 나라도 6개국이나 된다. 당시 대한민국은 존재감이 크지 않는 나라였다. 그런데도 이렇게 많은 국가가 지원에 나선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현재는 어떠한가?  남북이 휴전 협정을 맺은 지도 71년이 됐지만 북한은 여전히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도발 행위를 일삼고 있다. 반면 6·25 전쟁의 참상을 모르는 한국의 세대는 풍요로운 시대에 안주하는 모습이다.     얼마 전 신문 지상에서 너무나 반가운 뉴스 하나를 봤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3만4800 달러를 기록, 일본을 추월했다는 것이다. 6·25 전쟁 직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76달러로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였다. 단기간에 이룬 놀라운 성과였다.   대한민국의 급성장은 전쟁의 폐허를 극복한 기적이며 금자탑이다. 그러나 아직 서민들은 이런 성장을 제대로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시간은 우리 편이다. 좀 더 참고, 기다리고 인내하자. 그리고 세계 속에 우뚝 선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해 보자. 노영자·풋힐랜치독자 마당 대한민국 미래 당시 대한민국 1인당 국민소득 휴전 협정

2024.07.09. 20:06

[열린 광장] 휴전 협정 직전 북한군의 기습 공격

별이 총총히 빛나는 인천의 밤하늘이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 며칠 전이었다. 저녁을 먹고 밖으로 나와 서쪽에서 불어오는 하늬바람을 즐기고 있었다. 월미도 쪽에서 휴전 결사반대를 외치는 고함이 들려왔다.     그런데 난데없이 비행기의 프로펠러 소리가 들렸다. 인천 시내 상공을 한 바퀴 맴도는 소리가 돌리더니, 내가 일하던 미군 유류 저장소가 있는 송도 쪽으로 사라졌다. 갑자기 ‘쾅’ 하는 소리가 들렸다. 불길이 솟아올랐다. 드럼통이 폭발하면서 거대한 불꽃놀이를 방불케 했다. 북한군이 인천 유류 저장소를 공습한 것이었다. 야적(野積)되었던 중유 500만 갤런이 불타버렸다.     휴전이 임박하여 곧 전투가 끝날 것이라고 모두 긴장을 풀고 있었다. 북한군 비행기는 서해를 저공으로 날아와 유류 저장소에 소이탄을 투하했다. 비행기가 사라진 다음, 유류 저장소를 에워싸고 있던 수십 개의 대공포가 불을 뿜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다음 날 밤에도 대공포 소리에 인천 시민들은 잠을 설쳤다. 휴전 조인 바로 전 유엔군은 뜻밖의 한 방을 맞은 셈이다.       나는 다음 날 아침 출근했다. 야적장이 난장판이었다. 터지고 찢어진 드럼통이 뒹굴고, 기름불에 탄 땅은 진흙밭이 되었다. 이 피습 사건 후로 송도와 문학산 기슭에 대형 유류 탱크 20여 개를 설치했다. 이 유류 탱크 청소 작업의 안전 관리가 나의 책임이었다. 주기적으로 청소하려면 탱크를 비우고 물로 몇 번 세척한 다음, 세척 팀은 핸들이 달린 공기 박스에 연결된 잠수복 같은 옷을 입고 들어가서 청소했다.     탱크가 설치된 야산의 풀을 제거하기 위해 산양을 방목했다. 하루는 청소할 탱크를 조사하기 위해 앞문으로 들여다보니 산양이 죽어있었다. 탱크를 물로 청소해도 가스가 남아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빈 기름통이 채운 기름통보다 더 위험하다(Empty fuel containers are more dangerous than full ones) ’라는 말이 있다.    유류 탱크 오작동으로 기름이 민가로 흘러내려 간 일도 있었다. 펑 하며 불이 났다. 소방차가 올라갈 수 없는 언덕이라 그 탱크의 유류가 모두 연소할 때까지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었다.   휴전 직전 북한군의 인천 유류저장소 폭격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다. 우리는 북한군이 기습의 명수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윤재현 / 전 연방정부 공무원열린 광장 북한 휴전 인천 유류저장소 휴전 협정 휴전 결사반대

2023.09.26. 19:05

썸네일

[독자마당] 휴전

휴전 협정을 해 놓고 이럴 수가 있나?  휴전 협정 이후 지난 70년간 155마일 휴전선을 지키다 희생된 군인 등이 4360명에 달한다고 한다. 하늘도 울고 땅도 울 일이다. 죄 없는 장병들이 이렇게나 많이 희생되었다니…. 아마 관련 보도가 없었다면 국민은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들은 비록 휴전 상황이긴 하지만 자식이 무사히 국민의 의무를 다 하고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소리 없는 전쟁은 계속되고 있었다.   6·25 전쟁 3년여 동안 국토는 초토화되었고 수많은 인명과 재산피해를 남겼다. 그러다 아무런 소득도 없이 한반도의 허리는 두 동강이 난 채 휴전 협정은 마무리됐다. 그런데 그 휴전협정에 정작 당사자인 한국 측은 참여도 배석도 하지 못했다. 휴전은 타의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70년의 세월이 흘렀다. 6·25 당시 대한민국은 총알 하나, 수류탄 하나 만들지 못했을 정도로 가난하고 무능한 나라였다. 아무리 이대로는 휴전할 수 없다고 외치고 반대했어도 허공에 울리는 메아리일 뿐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다.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 10대 경제 대국에 진입했고, 이젠 자동차도, 항공기도, 탱크도 만들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수많은 이산가족은 여태 소식조차 전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하나둘, 세상을 등지고 있어 애통하기만 하다.   대한민국을 지키는 군인 가운데는 경계 근무를 위해  4000개의 계단을 오르내리는 장병들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 험지를 장병들은 ‘사천리’라고 부른단다.     그곳엔 지금도 매일 수많은 계단을 오르내리는 국군 장병들이 있다.  그들이 있어 국민들은 안심하고 평안한 삶을 살 수 있다.  나라를 지키는 육해공군 장병들에게 감사와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노영자 / 풋힐랜치독자마당 휴전 휴전 협정 육해공군 장병들 국군 장병들

2023.08.29. 18:11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