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뉴욕에서 한인과 흑인들이 함께 모이는 전국 콘퍼런스가 열렸다. 2018년부터 이어져 온 ‘우리 우지마(wooriujima.org)’ 대회였다. ‘우리 우지마’는 우리말 ‘우리’와 아프리카 스와힐리어 ‘우지마’를 붙인 말로 ‘우리가 함께하는 일과 책임’이라는 뜻이다. 한인 전국 권익단체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미교협)와 흑인 이민자 단체 ‘언다큐블랙 네트워크(UBN)’가 공동 주최한 행사다. 미교협과 UBN의 인연은 2017년에 시작됐다. 1992년 LA 4·29 사태 등을 거치며 이른바 ‘한흑 갈등’의 역사를 가진 두 커뮤니티가 ‘이민자 권익’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한흑 연대’의 기틀을 10년 가까이 쌓아가고 있다. 하지만 올해 행사는 한흑 연대 그 이상의 뜻으로 뭉쳤다. 정부의 이민자 탄압이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해졌고, 미국 사회의 민주주의가 위태롭게 느껴지고 있는 까닭이다. 이에 참가자들은 풀뿌리 활동가들이 어떻게 장기적인 사회 변화를 이끌어 나갈지 토론했다. 특히 민주주의가 파괴되고, 권위주의로 나아가는 현 미국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가 참가자들의 고민이었다. 한국과 아이티 등의 민주화 운동 사례를 나누고, 미국에 온 이민자들이 어떻게 고국에서의 정의와 평화를 위한 정신을 이어가고 있는지 소개했다. 올해 들어 미국 내 이민자 수는 지난 6월까지 최소한 140만~150만 명이 줄었다. 한국 광주 또는 대구시에 사는 사람들이 통째로 반년 만에 사라진 셈이다. 이대로 계속 가면 여러 지역의 이민자 커뮤니티 경제가 무너질 뿐 아니라 미국 경제 전체가 흔들린다. 법치도 망가지고 있다. 정부의 잇따른 조치들은 법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수준이다. 한국의 비상 계엄과 같은 ‘반란법’ 선포까지 우려되고 있다. 이 와중에 정치는 실종되고 정부 ‘셧다운’이 이어지고 있다. 마침 ‘우리 우지마’가 열리던 지난 18일 전국에서 정부의 이민자 탄압과 반민주적 행태를 규탄하는 ‘노킹스데이’ 시위가 열렸다. 50개 주 2700여 지역에서 700만 명이 거리로 나섰다. 지난 6월보다 200만여 명이 더 가담했다. 하루에 펼쳐진 미국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시위였다. 그리고 시민들은 외쳤다. 권위주의 정부에 맞서 “미국에는 왕이 없다. 권력은 국민에게 있다”고. 이민자 체포와 구금, 추방에 맞서 “어떤 인간도 불법일 수 없다”고 외쳤다. 그리고 비뚤어진 정치에 맞서 “증오와 공포에 반대한다. 여기 우리는 모두를 환영한다”고. 그리고 모든 국민에게 “미국이여, 각성하라. 지금 우리는 정상이 아닌 상태”라고 호소했다. 이날 ‘우리 우지마’ 참가자들도 모두 같은 마음으로 연대의 주먹을 쥐고 흔들었다. 행사를 끝내며 참가자들은 흑인 여성 민권 운동가 아사탸샤쿠르가 남긴 말을 함께 구호로 외쳤다. 샤쿠르는 지난 9월 25일 사망했다. 흑인 해방과 저항 운동의 상징적 인물 가운데 한 명이며 그가 자서전에 남긴 글은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의 집회에서 가장 널리 외치는 대표적인 구호가 됐다. “자유를 위해 싸우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승리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지켜야 한다. 우리가 잃을 것은 오직 우리의 사슬뿐이다.” 김갑송 / 미교협 나눔터 국장커뮤니티 액션 노킹 흑인 이민자 이민자 커뮤니티 이민자 탄압
2025.10.23. 17:13
지난 10월 말 콜로라도 덴버에서 한인과 흑인 커뮤니티 활동가 20여 명이 모였다. 민권센터에서도 스태프 두 명이 함께했다.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NAKASEC)와언다큐블랙네트워크(UBN)가 마련한 전국 회의였다. NAKASEC과UBN은 지난 2018년부터 6년째 ‘우리 우지마’라고 불리는 전국 회의를 열고 있다. ‘우리 우지마’는 우리말 ‘우리’와 아프리카 스와힐리어 ‘우지마’를 붙인 말로 ‘우리가 함께하는 일과 책임’이라는 뜻이다. 팬데믹 기간에는 온라인으로 만났고, 지난해 다시 LA에서 70여 명이 얼굴을 보며 만났다. 올해는 일부러 규모를 대폭 줄여 함께하는 사람들이 보다 가깝게 다가설 기회를 만들었다. 전국 한인 권익 단체인 NAKASEC과 뉴욕 지역 가입단체인 민권센터는 언제나 다른 인종, 민족과 함께 살아가는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해 땀 흘리고 있다. UBN은 흑인 이민자 권익 단체로 NAKASEC과 민권센터가 펼치는 서류미비자 합법화 등 이민자 권익 운동에 언제나 함께하고 있다. 지난 LA 모임에서는 주로 백인우월주의 범죄와 폭력에 맞서는 토론을 벌였지만 이번 모임에서는 고국을 방문하지 못하는 서류미비자들의 처지를 극복하기 위한 대책 마련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태 대처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서류미비 청년 추방유예(DACA) 신분인 한 흑인 참가자는 자신이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동안 가족 세 명이 생을 마쳤다며 눈물을 흘렸다. 같은 처지에 있는 한인 참가자들도 모두 함께 겪고 있는 ‘이산가족’ 현실에 가슴 아파하며 서로를 위로했다. 출신국과 인종의 다름을 넘어 모두가 이민자 가정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태를 이야기하며 고통을 겪고 있을 사람들과 연대하고 그들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어가는 데 더 힘을 쓰자고 다짐했다. 우리도 어렵지만 지금 우리보다 더 많은 슬픔을 맞고 있는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지난 10월 16일 일리노이 주에서 팔레스타인계 6살 아이가 단지 무슬림이라는 까닭에 26번이나 칼에 찔려 숨졌다. 그의 어머니도 10여 차례 이상 칼에 찔려 크게 다친 탓에 아이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웨스트뱅크 출신인 이 팔레스타인 가정은 12년 전 미국에 왔으며 목숨을 잃은 아이는 미국에서 태어났다. 칼을 휘두른 사람은 이들이 사는 집 주인이었다. 수사당국에 따르면 혐오범죄 혐의를 받는 집 주인은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이 일어난 후 이 가족이 위협될 수 있으니 집에서 쫓아내야 한다는 말을 했다. 누구에게도 이와 같은 비극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민자 가정들은 이와 같은 경험을 집단으로 겪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차이니스 바이러스’라고 불리면서 반아시안 폭력 범죄가 급증한 시대를 우리도 살아오고 있다. 혐오와 폭력의 칼날은 끊임없이 이민자들을 노리고 있다. 내년엔 다시 대통령 선거가 열린다. 안타깝게도 대선을 앞두고는 표를 바라는 증오의 언어가 활개를 친다. 내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이민자들은 인종과 출신국을 넘어서 연대하고 함께 불의에 맞서야 한다. ‘우리 우지마’는 그 씨앗을 뿌리는 일이다. 김갑송 / 민권센터 국장커뮤니티 액션 한흑연대 이민자 가정들 이민자 권익 흑인 이민자
2023.11.02. 1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