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영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영국인들은 직설적인 행동과 말이 미덕이라고 하지만, 실생활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예의를 지키면서 진심을 직접 드러내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거절할 경우 특히 그렇다. ‘직설적인’ 문화를 가진 것으로 알려진 미국인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표현이 있다. 바로 “생각해볼게요(I‘ll think about it.)”라는 말이다. 얼핏 들으면 아주 합리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현실의 영어권 문화에서는 이 표현은 거절을 정중히 에둘러 말하는 방식 중 하나다. 영국에서는 이 표현이 일종의 사회생활의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 참석하고 싶지 않은 파티 초대를 받거나 마음이 내키지 않는 제안을 받았을 때, “I’ll think about it.”이라고 말하면 부드럽게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완벽한 출구가 된다. 상대방의 기분을 해치지 않으면서, 불쾌한 분위기도 만들지 않으면서, 어느 정도 거절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절묘한 표현인 것이다. 직접적으로 거절하는 어색함을 피해 예의를 지키면서 정중하게 거절하는 기술인 셈이다. 미국에서도 이 표현은 비슷하게 쓰인다. 다만, 어투나 분위기에 따라 뉘앙스가 조금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누군가 새로운 프로젝트나 아이디어를 제안했을 때, 상사가 “생각해볼게(Let me think about it.)”라고 말한다면 상사의 성향이나 상황에 따라 “흥미롭군, 좀 더 논의해보자 (Interesting, let‘s explore it further.)”는 의미일 수도 있고, “아닌 것 같아. 하지만 다른 팀원들 앞에서 당신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당신 의욕에 찬물을 끼얹고 싶진 않아 (No, but I don’t want to hurt your feelings or kill your enthusiasm in front of the team.)”일 수도 있다. 핵심은 바로 말을 전달하는 방식에 있다. 짧은 침묵, 구체적인 후속 질문, 진지한 말투가 동반된다면 실제로 생각을 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말끝을 흐리거나 그 이후 아무 말도 없다면 그것은 거절일 가능성이 크다. 영어를 배우는 사람들은 흔히 “I‘ll think about it.”을 말 그대로 고민하는 상황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상황에 따라 다른 의미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실제 영어 원어민의 일상 대화에서는 의미가 다르게 쓰이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가 “I’ll think about it.”이라고 말한 뒤 다시는 같은 주제를 언급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실제로 그 주제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눈치껏 포기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짐 불리 / 코리아중앙데일리 에디터네이티브 잉글리시 정중 거절 거절일 가능성 정도 거절 영어권 문화
2025.06.09. 21:44
얼마 전에 낯선 우편물 하나를 받았다. 캘리포니아주의 가든그로브 경찰국 발신물인데 애리조나주의 우체국 직인이 찍혀 있는 우편 증명서(Certificate of Mailing)라는 것이다. ‘정중한 통지(Courtesy Notice)’라고 되어 있는 편지 제목에 안심은 하면서도 좀 불안한 마음으로 읽어 내려갔다. 내용은 어느 날 몇 시에 어느 지점에서 번호판이 XXX인 자동차가 신호를 어기고 우회전을 해 가주 교통 규칙을 위반했다는 증거로 현장 사진을 동봉해서 보낸 일종의 내용 증명이었다. 운전석에 앉아 있는 나의 얼굴이 너무도 선명하게 보였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더 자세한 것은 인터넷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으며, 60일 후에 경찰에 출두해야 한다고 돼 있었다. 약속 날짜를 잡고 경찰서에 갔더니, 교통 위반 티켓은 발부하지 않고 벌금만 부과하는 경고 조치로 종결하겠다는 담당 경관의 말에 고무된 채 경찰서를 나섰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교통 법규에 그리 민감하지 못한 나는 걸핏하면 법규 위반으로 애를 먹는다. 지난 2014년 실비치로 이사 온 직후에도 티켓을 받아 법원에 가서 550달러를 납부한 전과(?)가 있다. 앞차를 따라 좌회전을 하다 그만 신호 위반에 적발된 것이다. 이주 신고비치고는 꽤 비싼 대가를 치렀다. 그 후 지금까지도 나는 그 길을 의식적으로 회피하고 있으며, 신호등이 파란불에서 노란불로 바뀔 때는앞차를 따라 좌회전을 시도하지 않는다는 자율 규칙을 글로 써서 운전석 앞에 붙여 놓고 다닌다. 편지 봉투에 찍힌 애리조나주 발신 도장은, 오래전의 일을 상기시킨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애리조나에서 보내오는 ‘정중한 통지서’를 받은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40여 년 전에도 받은 적이 있다. 애리조나와 캘리포니아 접경을 관할하는 애리조나 경찰은 캘리포니아 면허 판을 단 자동차는 집중적으로 단속한다는 말을 그 무렵에 들은 기억이 떠오른다. 주말을 이용하여 가족과 함께 애리조나로 나들이 가는 가주 주민들은, 애리조나 발신 ‘정중한 통지서’를 받을 기회를 스스로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속도 제한 50마일이 어느새 40마일로 바뀌고 40마일이 25마일로 변하는 장단에 맞추어 가기가 쉽지 않았다. 알게 모르게 캘리포니아의 주말 운전자들은 애리조나 경찰이 쳐놓은 거미줄에 걸려들 잠재적 먹잇감이 됐던 것이다. 정중한 형식으로 빡빡한 예산을 보충하는 기법을 활용하는 애리조나 경찰의 ‘정중한 통지서’가 지금도 유지되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그저 오래전의 기억을 더듬어 즐거운(?) 추억 삼아 떠올리게 된 것일 뿐, 다른 의도가 없음을 밝혀 둔다. 라만섭 / 전 회계사이 아침에 정중 통지 애리조나주 발신 애리조나 경찰 애리조나 발신
2023.03.12. 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