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있었지만 나는 어린 시절 단체로 체벌이 있을 때면 늘 뒷전에 섰던 기억이 난다. 나이 50을 바라보는 지금도 하기 싫은 일에 당연히 게을러지고 손해보는 일에 여유를 갖지 못하고 크지도 않은 눈인데 여전히 겁도 많다. 기막히게 맞는 예를 들어서 사람들이 가슴에 오래 담도록 전달하는 우리 목사님 말씀이 생각난다.
수많은 사람들이 제각기 어깨에 십자가를 지고 가는데 무거워서 혹은 거추장스러워 편한대로 이리저리 토막내 가뿐하게 만들어 짊어지고 가는 이 머리에 이고 가는 이 혹은 이동하기 편하게 바퀴처럼 굴려가면서 가는 사람이 모두 같은 길로 가고 있었다.
융통성 없고 고지식한 사람들이 끌고 가는 길고 불편하기만 한 십자가는 약삭빠른 이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정작 목적지에 다다르기 전 건너야 하는 벼랑의 다리가 되어 줄 십자가가 없었으므로 비웃던 이들은 온 길이 헛되었다는 말씀이었다.
에스크로를 진행하다 보면 처음부터 언급해야 하는 문제들도 있고 미리부터 준비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리스에 있는 불리한 조항 플러밍의 고질적인 문제들 주변 상가의 현황 세금 납기일 매매 가격 세분화 사업장의 불미스런 사고 등 굳이 일찍 바이어에게 알려진다 해서 도움이 안된다고 믿고 싶은 셀러중에는 바이어의 융자가 승인될 때까지 기다리기도 한다.
위생국의 허가 갱신일이 다가 오기 전에 재빨리 클로징을 하고 싶어하고 배달온 거래처에 열심히 '밀린 대금' 결제를 위해 에스크로 회사를 열심히 가르쳐주는 바이어의 모양이나 닮은 꼴이긴 마찬가지이다.
약삭빠른 종업원의 정보를 듣고 혈압이 올라 에스크로를 극단으로 몰고 가는 손님도 있고 '사촌이 땅을 산' 기분인 주변의 조언에 흔들리는 분들도 있다.
지난 주에는 사업체의 매매 가격을 세금을 위해 분리해 달라는 바이어의 요청에 신중하게 대처 못한 셀러의 실수로 많은 이들이 시간과 금전적인 손해를 보고야 말았다.
리스권과 장비 권리금과 라이센스 등으로 나눠어져야 할 가격을 미리 회계사와 상의하지 않고 임의대로 통보한 셀러로 인해 클로징 과정에서 전년도 자료와 맞지 않는다는 정부 기관의 지적을 받았다.
결국 원칙대로 계산된 세금 산출 금액에 맞춰 새로운 금액이 양측에 통보됐으나 이미 합의해 지출된 세금에 책임이 없다는 바이어의 주장으로 몽땅 셀러의 몫이 되고 만 것이다.
이번 에스크로를 맡으면서 귀찮아도 미리 회계사와 상의하였더라면 불필요한 낭비가 없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라이센스 갱신 세금이 아까워 슬쩍 넘어가려던 셀러의 마음에 벌금까지 가산되어 씁쓸한 마음이 더해지는 일도 있다. 얼떨결에 맞는 매가 훨씬 낫다는 것을 깨닫기가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다.